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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오래된 것을 새롭게 말하는 법 - 현금제: 이중번역 / 수림뉴웨이브 2026

기본을 아는 사람의 ‘엇’

by 이수진 에디터
2026.10.1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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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적인 소리라고 하면 당연히 익숙할 것 같지만, 생각해보면 내게 국악은 오히려 클래식보다 낯선 음악이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플루트의 음색은 어렵지 않게 구별하면서도 거문고와 해금이 각각 어떤 소리를 내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다. 꽹과리나 장구 같은 전통 악기 역시 축제나 행렬에서 스쳐 들었던 기억이 대부분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왔다는 사실과 한국의 음악을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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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림뉴웨이브 2026의 공연 〈현금제: 이중번역〉은 그런 내게 '새로운 음악'이라기보다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오래된 소리의 발견에 가까웠다. 거문고 연주자 이재하를 중심으로 해금 김승태, 타악과 메탈로폰의 신원섭이 함께한 무대에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단순했다. "거문고가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었구나. 해금은 또 이런 소리를 내는 악기였구나." 그런데 공연이 끝날 즈음에는 관심이 악기의 소리를 넘어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오래된 것을 물려받은 사람은 그것을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새로운 창작을 시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가득 찼다.

       

       

       

      알지 못했기 때문에 더 크게 들린 소리

       

      공연은 세 개의 장(무엇, 어긋, 명금)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거문고와 해금, 메탈로폰과 타악의 소리가 만나고 갈라졌다. 그런데 국악의 문법을 거의 모르는 나에게 그 음악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가 정해진 박이고 어디서부터 변주가 시작되는지, 연주자들이 어떤 음악적 신호를 주고받고 있는지조차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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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은 흔히 '옛날부터 전해진 음악을 그대로 연주하는 것'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전통음악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전승된 장단과 선율, 연주법이라는 문법이 존재하는 동시에 연주자의 해석과 시김새, 호흡과 변화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특히 장단은 서양음악의 박자처럼 시간을 나누는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고 음악 전체의 흐름을 밀고 당기는 틀이 된다. 정해진 형식이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소리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변한다. 밀고 당기는 틀 전체가 나에게는 굉장히 새롭게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모른다는 사실이 공연을 흥미롭게 만들기도 했다. 클래식 악기를 들을 때는 다음에 어떤 종류의 소리가 이어질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의 소리는 좀처럼 붙잡히지 않았다. 해금의 가늘고 팽팽한 소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거문고의 줄을 뜯고 밀어 만들어내는 묵직한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익숙한 음악을 들을 때의 안정감 대신 다음 소리를 예측할 수 없다는 긴장감이 있었다. 새로운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새로운 소리를 만나는 것뿐 아니라, 내가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듣는 방식'을 바꾸는 것 같다.

       

       

       

      전통은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번역되는 것

       

      공연 후 연출가 정종임과 함께한 대화에서 〈이중번역〉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이재하는 물려받은 음악을 먼저 자신의 언어로 옮기고, 그것을 다시 지금 시대의 요구에 맞게 옮기는 과정을 이야기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이 과정이 단순한 '전통 대 창작'의 대립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전통음악을 배운다는 것은 과거의 결과물을 복제하는 일만을 뜻하지 않는다. 스승에게서 음악의 형식과 장단, 연주법과 호흡을 배우고 그것을 몸에 익히는 전승의 과정이 있다. 하지만 같은 음악도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결국 전통은 사람의 몸을 통과하면서 계속 조금씩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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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의미에서 '번역'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느껴졌다. 언어를 번역할 때 원문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옮길 수 없듯, 음악 역시 과거의 어느 순간을 그대로 복원할 수는 없다. 지금의 연주자가 자신의 몸과 감각으로 옮기는 순간 이미 새로운 해석이 개입한다. 그리고 창작자는 거기에서 한 번 더 움직인다. 지금 시대의 관객에게 어떤 소리를 들려줄 것인지 질문하며 다시 음악을 옮긴다.

       

      그렇다면 전통을 지킨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상태로 보관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오히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 것인지 계속 판단하는 일이 전통을 이어가는 방식에 가깝다.

       

       

       

      엇나가기 위해서는 돌아갈 곳이 필요하다

       

      수림뉴웨이브 2026의 주제는 '엇'에 관한 것이었다. '엇'은 어긋나고 엇갈린다는 의미를 가진다. 음악에서는 정해진 박을 비껴가는 엇박자라는 말에서도 쓰이고, 국악에는 2박과 3박의 느낌이 교차하며 독특하게 흐르는 엇모리장단도 있다. 수림뉴웨이브가 말하는 '엇' 역시 단순히 규칙을 깨뜨리는 파격보다는, 이미 익숙한 질서를 알고 있는 사람이 그 틈을 비껴가며 만들어내는 유희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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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었던 것은 정작 이재하 연주자님은 대화 중 웃으며 "아마 이번 수림뉴웨이브에서 나만 엇모리장단을 안 했을 것 같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점이다. '엇'이라는 주제의 공연이라고 해서 반드시 엇모리장단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농담 때문에 '엇'이라는 말이 하나의 음악적 형식을 가리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잘 드러났다. 그가 이야기한 '엇'은 기본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살짝 벗어날 수 있고, 벗어난 뒤에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힘에 가까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음악 바깥의 일들이 함께 떠올랐다. 우리는 창의적인 사람을 이야기할 때 흔히 '틀을 깨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것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무엇에서 벗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있는가일지도 모른다. 기본이 없다면 어긋남과 실수의 경계를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다. 반대로 기본을 깊이 익힌 사람에게 규칙은 자신을 가두는 울타리가 아니라 필요할 때 돌아올 수 있는 기준점이 된다. 30년 동안 거문고를 연주해온 사람이 전통의 문법을 익힌 뒤 새로운 소리를 시도하는 것과, 아무런 문법 없이 낯선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같은 '새로움'이라 부르기 어렵다.

       

      그래서 이날 내가 이해한 '엇'은 파격보다 노련함의 다른 이름에 가까웠다. 마음껏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정확하게 돌아오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나의 악기와 함께 산다는 것

       

      그런데 공연을 보고 가장 깊게 남은 것은 음악적인 지식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분야와 맺어온 시간이었다. 이재하는 약 30년을 거문고와 함께해왔다고 했다. 전통음악을 익히고 연주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만들며, 거문고라는 오래된 악기로 지금의 음악을 계속 고민한다. 공연 중에는 연주와 함께 직접 구음도 들려주었다. 이후 대화에서 그것이 자신에게는 조금 부끄럽고 낯선 모습을 일부러 무대 위에 드러내보는 시도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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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을 듣고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30년을 한 악기와 함께한 사람에게도 여전히 부끄러운 일이 있고, 해보지 않은 일이 있고, 시도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우리는 전문성을 흔히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한 일을 해온 사람이라면 무엇이든 능숙하고 확신에 차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이날 본 전문성은 조금 달랐다. 오랫동안 쌓은 것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불편함을 시험해볼 수 있는 상태였다. 노련함의 끝에 안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낯섦이 있다는 것. 그것 역시 '엇'이라는 주제와 닮아 있었다.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

       

      나는 내가 세상에 무언가를 '남기고 가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대단한 작품을 만들거나 하나의 분야를 개척하는 일은 예술가나 연구자처럼 특별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일을 하고 일상을 살아가다가 그렇게 지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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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한 사람이 한 악기를 붙들고 수십 년 동안 자신의 힘을 쌓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남긴다'는 말의 의미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반드시 거대한 업적이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물려받은 것을 충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 거기에 자신의 해석을 조금 더한 뒤 다음으로 건네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한 사람의 생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일보다 이미 존재하던 것에 자기 몫의 차이를 보태는 과정에 가까울 수도 있다.

       

      전통음악은 그런 시간의 축적을 눈앞에서 보여주는 예술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무대에서 울리는 한 음에는 오늘의 연주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배운 사람과 그 사람에게 음악을 전한 사람, 수많은 연주자를 지나며 변해온 연주법과 감각이 함께 들어 있다. 그리고 이재하는 그 긴 흐름에 자신의 음악을 다시 얹는다. '이중번역'은 결국 음악의 방식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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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장을 나서며 처음 품었던 생각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한국인인데도 한국음악을 잘 몰랐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는 모른다는 사실 자체보다, 모르면서도 익숙하다고 생각해왔던 것이 더 아쉽게 느껴진다. 가까이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많은 것을 이미 안다고 착각한다. 전통도, 사람도, 때로는 자기 자신도 그렇다. 〈현금제: 이중번역〉에서 발견한 것은 거문고와 해금의 낯선 음색만은 아니었다. 오래된 것을 지킨다는 것과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이 반드시 반대편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충분히 물려받은 사람만이 자기 방식으로 번역할 수 있고, 기본을 오래 다진 사람일수록 조금 더 멀리 엇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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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면 삶에서도 필요한 것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정확함이 아닐지 모른다. 때로는 박자를 놓치고, 익숙한 길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낯선 모습을 시험해보면서도 결국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 마음껏 엇나갈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돌아갈 곳을 가장 분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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