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티벌을 찾는 이유
페스티벌을 광적으로 찾아다니는 편은 아니지만, 스물두 살에 처음 그 맛을 알아버린 뒤로는 매년 한 번쯤은 가고 있다. 특히 락 음악을 좋아하고, 평소에는 내 안의 광기를 숨긴 채 살아가는 내향인에게 락 페스티벌은 그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내가 락 페스티벌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곳에서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자기 자신으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Unapologetically themselves’라고 하던가. 누군가의 눈치를 보거나 자신의 모습을 굳이 해명하지 않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 본래 락의 정신에는 그런 반항기가 서려 있지 않은가.
나는 내 안에 어떤 ‘꿈틀거림’이 잠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마음껏 춤추는 사람들을 보면 늘 부러웠다. 방구석에서는 나도 남부럽지 않게 격렬한 댄서이건만, 왜 밖에 나오면 춤을 추지 못하는가. 아마 남의 시선을 부단히도 신경 쓰기 때문일 테다. 그런 의미에서 락 페스티벌은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때로는 춤을 추지 않는 쪽이 오히려 이상해 보이는 엉뚱한 세상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같은 맥락에서 이번 페스티벌의 라인업은 나에게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물론 넬이나 Nothing But Thieves(NBT) 같은 헤드라이너들에 대한 기대는 있었지만, 그들의 음악만을 듣기 위해 가는 건 아니었다. 그저 잠시 탈출하고 싶었다. 머리가 터질 듯 쿵쿵 울려대는 베이스음과 가사도 제대로 모르는 노래들, 그럼에도 흔들리고 부딪히는 몸들과 어떻게든 따라 불러보는 후렴구에 나를 내맡기고 싶었다. 렛츠락 페스티벌에 다녀와서 새삼 느꼈다. 사람들 틈에서 이토록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나는 페스티벌에 갈 때마다 속으로 간절히 빈다. “오늘도 나를 춤추게 만들어줄 음악이 있게 해주세요!”

하나 되어 흔들거리자
렛츠락 페스티벌이 신선했던 이유 중 하나는 도심에서 열린다는 점이었다. 평소 찾아가던 락 페스티벌은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지방의 허허벌판까지 이동해야 했는데, 집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페스티벌이라니.
친구와 함께 난지한강공원에 도착해 공원 한쪽 끝에서 페스티벌 장소로 표시된 곳을 향해 걸었다. 처음에는 정말 이곳에서 페스티벌이 열리는 게 맞는지 의아했다. 여기저기 뛰노는 아이들과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들, 산책 중인 개들 말고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오후였기 때문이다.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는 흔적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들려온 음악 소리에 안심한 것도 잠시, 가까이서 들어보니 웬 동요였다. 여전히 반신반의하며 공원 안쪽으로 걸어가자, 드디어 표지판과 페스티벌 안팎을 가르는 펜스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서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여전히 평온했다. 무대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이전에 갔던 페스티벌보다 사람들이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고 해야 할까. 반드시 저 가수의 음악을 가까이서 들어야겠다는 마음도, 미친 듯이 즐겨야겠다는 조급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메인 스테이지 앞에는 스탠딩 존이, 그 뒤와 양옆에는 피크닉 존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누워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뭐랄까, 사람들이 페스티벌을 보러 온 게 아니라 페스티벌이 그 사람들을 보러 온 듯한 느낌이었달까. 덩달아 나도 조금 여유로워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락 페스티벌은 역시 락 페스티벌이었다. 쏜애플 때부터 차츰 달아오른 분위기는 뒤이어 펼쳐진 넬과 NBT의 공연으로 더욱 뜨거워졌다. 한껏 여유를 부리던 사람들도 돗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앞으로 몰려들었고, 무대를 바라보는 환한 얼굴들에는 열기 어린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그때까지 설렁설렁 몸을 흔들던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 피부가 따끔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아, 그리고 넬을 마주했을 때의 그 전율이란. 진정한 록스타는 말을 아낀다. 진정한 록스타는 음악으로 대신한다. 어느덧 어슴푸레해진 하늘 아래 무대는 검정과 초록, 빨강으로 강렬하게 물들었고, 연주는 그간의 평온함에 칼집이라도 내듯 날카롭게 두 귀에 내려앉았다. 조금 일찍 찾아온 핼러윈 같기도 했다. 넬의 강렬한 모습과 연주에서 왠지 모르게 ‘프랑켄슈타인’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분홍과 자줏빛으로 물든 고요한 하늘에 반기를 들듯, 어딘가에 숨어 있던 이상하고 아름다운 괴물들을 모두 불러 모으는 듯한 무대였다. 특히 김종완이 노래 중간에 갑자기 그로울링(Growling) 창법으로 전환했을 때 넋이 나가 같이 부르짖게 된 걸 생각하면 진짜 무언가에 홀리긴 했었나보다.

넬의 무대가 끝날 때쯤 보았던 하늘
깜빡이는 불빛 아래, 앞뒤로 사람들이 흥분에 젖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함께 흔들리는 시야 속으로 곳곳의 깃발과 저녁 하늘, 무대의 불빛, 옆에 있는 친구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눈을 감으면 스피커에서 쿵쿵 울려 나오는 음악이 더욱 선명해져, 내 심장 박동과 하나가 되는 듯했다. 록 페스티벌 말고 또 어디서 이렇게 최면에 걸린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도, 내가 이토록 오롯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넬의 무대가 끝나고, 잠시 친구와 함께 페스티벌 현장 밖으로 나왔다. 편의점에서 맥주 몇 캔을 사서 나눠 마시며 앉을 곳을 찾아다니다가 근처 스케이트보드 파크에 다다랐다. 꽤 짙게 내려앉은 어둠 속에서 자전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사람 몇 명이 설치물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경사면을 쓰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우리는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가 가볍게 달려 경사면을 올라갔다. 왠지 불량 청소년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그 위에 앉아 맥주를 홀짝거렸다. 오늘의 대미를 장식할 NBT를 즐기기 위한 잠깐의 휴식이었다.
NBT의 팬이라면 분노할 말일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들의 노래를 잘 몰라서 신나는 곡들은 어떤 노래였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몸을 흔들기 바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나는 곡들로 채워진 셋리스트 사이에서 한껏 들뜬 호흡을 가다듬어준 노래가 하나 있었다. 바로 ‘Lover Please Stay’였다.
Lover, I feel your sorrow pouring out of your skin
그대의 슬픔이 살갗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게 느껴져요
And I don't wanna be alone
나는 혼자이고 싶지 않아요
If I am tonight, I'll always be
오늘 밤 혼자가 된다면, 영원히 그럴 거예요
So take from me what you want, what you need
그러니 내게서 원하는 걸 가져가요, 그대에게 필요한 걸
Take from me whatever you want, whatever you need
그대가 원하는 것 무엇이든, 필요한 것 무엇이든
But lover, please stay with me, oh
하지만 내 사랑, 제발 내 곁에 있어줘요
몰아치던 밴드 사운드가 일순간 멈추고, 보컬의 목소리와 잔잔한 기타 소리만이 남는다. 사람들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이번에는 서로의 어깨와 허리에 팔을 두르고, 가만히 좌우로 몸을 흔들며. 각자 떠난 사랑을 생각하는 건지, 떠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랑을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이 소리에 몸을 맡기는 건지. 나도 그 사람들 중 하나가 되어 흔들리고 있다.
신기하다, 페스티벌이라는 것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렇게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페스티벌이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쯤 입꼬리가 저려왔다. 나도 모르게 하루 종일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하하. 내년에도 또 가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