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내게 남긴 것이 있다면, 락 페스티벌은 시원할 때 가야 한다는 거였다. 주말 양일을 갔던 나와 친구는 쏟아지는 물줄기에도 더워 쓰러질 것 같았고, 습해 죽을 것 같았고, 집에 와서는 인파와 맞물린 코로나바이러스의 활개로 일주일을 앓았다. 봄 아니면 가을. 봄은 락을 즐기긴 영 산뜻하므로 가을. 가을에 좋은 페스티벌이 있다면 가자. 그렇게 4년이 지났더니 꼭 가야 하는 페스티벌이 드디어 눈앞에 나타났다. 낫벗띠Nothing But Thieves를 데리고!
10월 3일 토요일은 춥지도 않고 비도 내리지 않았다. 조금 더 선선했다면 감성을 더했겠지만, 그렇다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기엔 서늘했을 것이다. 딱 적당한 초가을의 날씨에 난지한강공원에서 도심형 최대 뮤직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다. 그간 갔던 페스티벌이 모두 서울의 외곽에서 진행되었던지라, 이토록 이동이 편한 페스티벌을 만남에 감격스러웠다. 때마침 각지에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답답하진 않을 만큼 적당한 인파가 몰린 한강공원은 기분 좋은 에너지가 가득했다. 공연장의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기에 혹여나 불상사가 발생할지 않을지 걱정했던 것이 무색했다. 적당한 개수가 배치되어 줄이 길지 않던 간이 화장실이나, 할랄푸드까지 준비가 되어있던 푸드존은 서울시가 이 페스티벌을 지켜보고 있다고 느끼게 했다. 그러니까, 매우 잘 관리되었다는 칭찬이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기 전까지 체력 비축을 위해 멀리서 감상하기를 택했다. 피크닉 존에서 돗자리를 펴고 누워 음악을 감상하다 졸거나,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간식을 먹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작정하고 육신과 혼을 탈곡시키는 투지의 팬들 한참 뒤에 앉아 있는 이들은 어쩐지 차림부터 달랐다. 나이도 조금 달라 보였다. 우리는 그저 늙은 것인가, 아니면 가을 나들이를 즐기려던 가벼운 행인들인가. 비슷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어쨌거나 집에 돌아가기가 참 쉽겠다는 안도를 느꼈다. 서울의 락 페스티벌이란 가벼운 마음과 참 잘 맞는 것이다.

헤드라이너였던 Nothing But Thieves의 무대 전, 넬의 공연이 시작되었다. 막 어두워지려던 즘 시작했던 넬의 공연은 하늘에 끼었던 거대한 구름과 지는 해가 만나 믿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무대가 되었다. 대한민국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밴드의 노련한 실력과, 그들이 이 순간을 위해 짠 셋리스트가 완벽한 조합을 이루어 관객들이 연신 감탄을 흘렸다. 나 또한 돗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스탠딩 존의 끝자락에서 음악에 몸을 맡기면서, 이 나른한 여유가 영원하길 바랐다. 내가 모르는 앨범의 또 다른 곡들은 또 얼마나 좋을까!
어둑해질 즘 넬의 공연이 마무리가 되고, 마지막 무대까진 약 1시간의 여유가 있었는데 이 또한 다른 페스티벌과는 다른 점이었다. 여러 스테이지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어 음악 소리가 섞이는 큰 페스티벌들과 달리, 한 팀 한 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렛츠락의 큰 무대 하나는 저녁을 먹을 수 있는 여유를 줬다! 컴컴한 밤이 되어 간이 테이블 하나 마련하지 않은 돗자리에 음식을 펴놓고 먹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단체로 이상한 피크닉에 온 듯싶었기 때문이라.
그토록 기다렸던 Nothing But Thieves의 공연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차력 쇼를 보는 것 같았다. 매 무대가 힘이 넘쳤고, 매 무대가 음원보다 신이 났다. 한국 관객들에게 다시 한번 돌아왔다는 순수한 기쁨과 열정이 잔뜩 묻어나는 멘트를 들으면서 나마저 뿌듯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넬이 지는 해와 함께하는 감성 충만한 무대를 보여줬다면, 이들은 이미 없는 해 대신 폭죽처럼 밤을 밝혀주었다. 특히 OH NO:: HE SAID WHAT은 음원도 신이 났지만, 라이브에서 거의 기관총으로 공기층을 부수는 것 같은 시원함이 느껴졌다. 동행인과 함께 충격을 공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총 맞은 줄 알았어. 나도. 내한을 자주 오는 밴드였지만 한 번도 단독 콘서트를 가본 적이 없었기에 후회가 밀려왔다. 한 번이라도 가봤다면 아마 꼭 출석 체크를 하는 팬이 되지 않았을까.
Lover, Please Stay를 듣는데 그만큼 이 밤이 낭만적일 수는 없었다. 피곤하던 밤에 자주 듣던 그 노래는 음원이 아름다웠고, 라이브는 날 것의 쓸쓸함이 느껴졌다. 오랫동안 잊었던 곡이었던 만큼, 과거의 향수가 밀려 들어왔다. 다시 이들을 처음 알았던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 그러나 그들을 직접 보게 된 나는 어엿한 사회인이었고 그때 함께 하던 친구들은 저 멀리에 있다. 문득 궁금했다. 코너 메이슨은 무슨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불렀을까? 과거를 추억했을까, 아니면 이 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을까?
불러주리라 기대하지 않았던 Amsterdam을 마지막 곡으로 토요일 자 페스티벌이 종료되었다. 기다란 버스 줄에 서서 가을 밤공기를 만끽했다. 여태 춥지 않은 가을, 아직 낭만이 손끝에 남아 있는 밤! 한 시간짜리 기다림을 그다지 짜증스럽지 않게 만드는 것이 음악 공연의 힘이다. 긍정적인 사람이 되도록 사는 동안 부지런히 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