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 연극을 보고 마음속에 박힌 말이 있었다. 연극을 만드는 것에 관한 연극이었는데, 어린 극작가가 쓴 희곡을 읽은 누군가 말한다. ‘네 극 속에는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게 최대 사건’이라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건’이 되지 않는다고. 그 후로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생각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사건이 되는가.’ 그리고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관객 워크숍 <모르기 연습>에 참여하며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투티 랩(Tutti Lab)의 미학
<모르기 연습>은 접근성 드라마투르기를 연구하는 프로젝트 그룹 투티 랩(Tutti Lab)이 기획한 관객 참여 워크숍이다. 투티 랩은 장애인, 어린이, 노인, ADHD가 있는 관객 등 서로 다른 조건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공연을 경험할 수 있는 극장을 연구하며, 접근성을 공연의 보완 장치가 아닌 새로운 관람 방식과 미학으로 탐구한다. 워크숍은 몸짓과 필담, 촉각 등 다양한 소통 방식을 통해 극장의 관람 규범을 새롭게 감각하고, 서로 다른 몸들이 함께 존재하는 방법을 실험하도록 이끈다.
투티 랩이 말하는 접근성은 공연에 자막이나 음성 해설 같은 서비스를 덧붙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공연을 보는 방식 자체를 다시 상상하는 것이다. <모르기 연습>은 그 상상에서 출발한다. ‘소리를 내면 안 된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 같은 극장의 규칙을 잠시 내려놓는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과 만나 어떤 새로운 목소리를 내게 될까.
극장이라는 실험실
극장의 내부로 들어섰을 때, 참여자들은 로비에 캠핑 의자를 두고 곳곳에 앉아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로비 중앙의 인형이 잔뜩 쌓인 테이블이었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극장 안에 들고 들어갈 수 있는 인형이었다.
나도 모르게 다리를 덜덜 떨며 구석에 앉아 있을 때, 참여자 한 명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인형 하나 안 가져가세요?”
나는 괜찮아요, 하며 어색하게 웃다가 퍼뜩 물었다.
“제가 불안해 보이나요?”
“약간? 다소?”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고는 이어, “저도 불안해서”라는 말도.
우리는 나란히 인형을 고르러 갔고, 조금은 마음이 놓인 채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참여자들이 어느 정도 모이자, 우리는 극장 안으로 안내받았다. 한 사람씩 안내를 받고 들어갔는데, 로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인형을 계속 만지작거리게 됐다.
텅 빈 무대, 그러니까 휑한 블랙박스 안에는 듬성듬성 사람이 앉아 있는 객석이 있었다. 로비에서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면, 극장에서는 한마디도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극장의 공기에 얼어붙은 건 다른 참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활동에 대한 기대나 불안이라기보다, 극장이라는 공간이 형성하는 긴장이었다.
참여자들이 다 도착하자, 참여자인 것처럼 객석에 앉아 있던 투티 랩의 진행자들이 웃으며 무대 앞으로 나갔다. 그 웃음에 분위기가 한 번 풀어졌고, 활동이 진행되며 극장은 이전의 정적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다양한 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대화 연습]
1부인 ‘대화 연습’은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서로의 극장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단,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극장 곳곳에는 ‘팔꿈치와 손가락으로 말하기’, ‘어깨를 맞대고 누워 이야기하기’, ‘필담’ 등 각기 다른 소통법이 적혀 있었다. 나는 가장 쉬워 보이는 필담을 택하려 했지만 이미 자리가 꽉 차 있었고, 결국 가장 피하고 싶었던 ‘팔꿈치와 손가락’ 코너로 향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두 명의 참여자와 마주 섰지만, 우리는 한동안 서로의 얼굴만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행자의 시범을 따라 손가락으로 팔뚝에 글씨를 쓰고 몸짓과 표정을 더해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고, 그렇게 어렵게 대화의 문이 열렸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7년을 만난 전 애인을 바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마주쳤다는 한 참여자의 경험이었다.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두의 입이 동시에 벌어지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어진 ‘어깨를 맞대고 누워 이야기하기’ 코너에서 우리가 처음 꺼낸 말은 이것이었다.
“그래서 공연 끝까지 보셨어요?”
“끝까지 보긴 했는데. 도저히 집중이 안 되더라고요.”
그렇게 그날 처음 본 사람들과 극장 바닥에 누워 한참을 웃었다. 어깨를 맞댄 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이 공간이 어느새 침대처럼 편안하게 느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합창 연습]
2부인 ‘합창 연습’은 공연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참여자들은 각기 다른 미션을 부여받았다. 다른 참여자들의 미션을 모른 채, 미션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종이 치기를 기다렸다.
나의 미션이었던 ‘모두의 티켓 점검하기’를 수행하려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본을 읽는 이도, 과자를 먹는 이도,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는 이도, 손뼉을 치는 이도, 춤을 추는 이도 있었다. 나는 어디로 튈지 종잡을 수 없는 사람들을 따라 극장 곳곳을 누볐다.
한동안 극장은 원래대로라면 절대 들을 수 없는 소리와 볼 수 없는 모습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활동의 이름인 ‘합창’처럼 이상한 조화를 이루는 듯했다.
티켓 점검을 다 마치고 지쳐 자리에 앉았을 때, 누군가가 나에게 과자를 가져다주었고, 나는 이곳이 극장이라는 것을 잊은 채 과자를 먹으며 소란스러운 평화 속에 앉아 있었다. 다시 한번, 내가 알던 극장과는 너무도 다르다는 감각이 편안하게 나를 감쌌다.
가능성의 극장을 향하여
자,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사건이 되는가. 아니, 다시. 극장에서 사건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극장은 누구나 무엇이든 되어볼 가능성을 품은 공간이다. 그리고 그것은 배우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의 극장은 너무 많은 규칙과 규범 속에서 오히려 그 가능성을 잊어버린 듯 보인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움직이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서로를 의식하고, 때로는 서로를 감시하며 몸을 한껏 경직시킨다. 그런 극장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좀처럼 사건이 되지 못한다.
<모르기 연습>은 경직된 극장을 잠시 실험의 공간으로 되돌려 놓는다. 극장을 내 몸과 소리로 채우고, 나의 몸과 소리가 다른 사람의 몸과 소리와 마찰하며 조금씩 변형되는 경험. 누군가를 바꾸려 애쓰지 않아도, 함께 존재하는 것만으로 서로가 아주 조금씩 달라지는 경험. 나는 그날 극장에서 그런 부드러운 변형을 경험했다. 그러니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사건이 된다는 말은 결국 내가 누군가와 함께 존재함으로써 바뀔 수 있는지를 묻는 말인지도 모른다.
접근성에 대해 배우러 갔다고 생각했던 나는 돌아오는 길에는 극장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었다. 극장을 잠재적인 사건의 장소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무대 위뿐 아니라 무대 아래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에 대한 설렘을 품은 채 극장을 찾게 될지 모른다. 그때 극장은 조금 더 너그러우면서도, 조금 더 흥미로운 공간이 된다. 그 순간, 극장은 다시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