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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살아있는 것과 같아서 매번 달라진다.”

 

뮤지컬 <파가니니> 첫 공연이 끝난 뒤, 파가니니 역의 KoN(콘) 배우가 남긴 소감이다. 그 말은 이날 무대 전체를 설명하는 문장처럼 들렸다. 같은 작품이라도 무대 위의 호흡, 배우의 에너지, 관객의 반응에 따라 공연은 매번 다른 생명력을 얻는다. <파가니니> 역시 그랬다. 악보 위의 음악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살아 움직이는 예술가의 고통과 열망이 무대 위에서 다시 태어났다.

 

뮤지컬 <파가니니>는 1840년 니콜로 파가니니 사망 직후, 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오명 때문에 교회 공동묘지 매장을 거부당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아버지의 명예와 안식을 위해 긴 세월 법정 싸움을 이어가는 아들 아킬레의 여정을 따라가며, 작품은 천재 음악가의 화려한 기교 뒤에 가려진 고독과 진실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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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내가 만난 파가니니는 KoN(콘)이었다. 초연부터 작품의 상징으로 자리한 배우이자 바이올리니스트 답게, 그는 파가니니의 광기와 순수함, 재능과 피로를 모두 바이올린 위에 실어냈다.

 

 

 

사람을 홀린 것은 악마인가, 음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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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파가니니>는 서글픈 정서의 작품이다. 무대 위에는 화려한 음악이 흐르고, 파가니니의 연주는 눈부시게 빛난다. 그러나 그 빛 아래에는 마음 깊은 곳부터 잔잔하게 깔리는 슬픔이 있다. 이 작품은 천재 음악가의 화려한 생애가 아니라, 시대보다 앞선 재능을 가졌다는 이유로 끝내 이해받지 못한 비극적인 한 남자의 이야기에 가깝다. 그래서 그의 음악이 아름다울수록 마음이 아팠다.

 

파가니니는 사람들을 홀리는 연주로 ‘악마’라 불렸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 정말 악마의 일일까. 음악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흔드는 일은 죄가 아니라 재능에 가깝지 않은가. 작품 속 파가니니는 밤마다 연주한다는 이유로 의심받지만, 그가 향한 곳은 아픈 사람들의 곁이었다. 그는 음악으로 병든 이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려 했다. 따뜻한 마음으로 향한 연주가, 시대의 편견 속에서는 의심의 증거가 됐다.

 

 

 

눈부신 재능이 오명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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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파가니니는 도박에 빠진 아버지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바이올린을 켰다. 쉴 시간도, 밥을 먹을 시간도 없이 연주해야 했다. 아버지는 그를 지켜주기보다 돈을 위해 공연장으로 밀어 넣었다. 파가니니에게는 재능이 있었지만, 그 재능을 지켜줄 어른은 없었다.


그러나 그런 삶도 그를 단순히 무대 위에서 소모되는 연주자로만 남겨두지는 못했다. 파가니니는 자신만의 연주법을 만들고,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음악 세계를 구축해갔다. 고된 삶은 그를 꺾지 못했고, 오히려 그는 그 시간을 통과해 경이로운 예술가가 되었다. 문제는 그 경이로움이 시대의 이해를 앞질렀다는 데 있었다. 파가니니의 음악은 눈부셨지만, 사람들은 그 눈부심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보다 두려워했고, 끝내 그는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이름으로 몰렸다.


작품이 날카롭게 짚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군가 퍼뜨린 거짓은 반복되는 순간 진실처럼 굳어진다. 가짜가 진실이 되고, 소문이 증거가 된다. 파가니니를 향한 악마의 소문 역시 그렇게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지만, 어느 순간 그 음악 자체보다 ‘정말 악마의 연주인가’를 확인하려는 호기심으로 그를 바라본다.


파가니니는 돈을 벌기 위해 쉬지 않고 공연했다. 그러나 무대가 계속될수록 그는 조금씩 무력해지고 지쳐간다. 그럼에도 그는 말한다. 자신의 음악을 단 한 사람이라도 들어준다면 상관없다고. 아니, 한 사람도 없어도 괜찮다고. 자신은 알고 있으니까. 이 말은 체념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예술가의 마지막 자존심처럼 들린다. 세상이 그의 음악을 오해해도, 그는 끝까지 진심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사제의 가면을 쓴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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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오 아모스와의 대립은 작품의 긴장을 끌어올린다. 악마에게 현혹된 자를 처벌하려는 사제 루치오는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파가니니를 몰아붙인다. 그는 파가니니에게 악마와의 계약을 인정하라는 서명을 요구한다. 그러나 참다못한 파가니니는 되묻는다. “당신이야말로 사제의 가면을 쓴 악마가 아닌지!” 이 장면은 작품의 핵심 질문을 정면으로 던진다. 진짜 악마는 누구인가. 이상한 재능을 가진 사람인가, 아니면 그 재능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처단하려는 권위인가.

 

파가니니는 끝내 악마 서명에 응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오명은 아들에게 남겨진다. 아킬레는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고, 아버지를 성당 묘지에 안장하기 위해 오랜 세월 싸운다. 죽은 뒤 30 여년이 지나서야, 아킬레가 아버지의 재산을 교황청에 환원하겠다고 말하자 상황은 달라진다.

 

돈이 오가자 닫혀 있던 문이 열린다. 결국 파가니니는 36년 만에 고향에 묻힐 수 있게 된다. 이 대목은 씁쓸하다. 신념의 문제라던 일이 돈 앞에서 해결되는 순간, 작품은 종교적 권위와 제도적 위선을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찌른다.

 

 

 

악마의 재능이라 불린 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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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라 캄파넬라’가 있다.

 

이 장면을 보고 나면 왜 이 작품이 이 7분을 향해 달려왔는지 알게 된다. 배우 콘의 미친 듯한 바이올린 연주가 한순간에 무대를 장악한다. 빠르게 쏟아지는 음, 숨 가쁘게 전환되는 코드, 점점 붉게 물드는 조명은 파가니니의 재능을 정말 ‘악마의 재능’처럼 보이게 만든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듯한 경이로운 연주 앞에서 나는 결국 홀린다는 게 뭔지 체감하게 됐다.

 

그 연주는 마음을 조이고, 쫄리고, 점점 옥죄어 오는 한 인간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파가니니가 평생 짊어졌던 오해, 고독, 분노, 체념, 그리고 끝내 놓지 못한 음악에 대한 사랑이 그 7분 안에 몰려든다. 극의 최고점이자 작품의 명장면이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가 이렇게 사람을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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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파가니니>는 천재 음악가의 재능을 의심으로 바꾸는 사회,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언론,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몰아붙이는 권위, 그리고 그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음악을 놓지 않는 예술가의 이야기다.

 

서사 속 음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다면 뮤지컬 <파가니니>를 현장에서 꼭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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