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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아름답다고 말하라 


   

우리는 모두 한 번쯤 손에 넣을 수 없는 무언가를 갈망해 본 적이 있다. 사랑일 수도 있고, 성공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인정일 수도 있다. 장 지로두의 희곡 『벨락의 아폴론(L'Apollon de Bellac)』은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독특한 방식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아폴론은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과 예술, 그리고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신이다. 그러나 이 희곡 속 아폴론은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선물하는 존재라기보다, 오히려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일깨우는 존재에 가깝다. 극은 평범한 아가씨 아그네스가 취직을 하기 위해 세계 발명협회라는 회사를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긴장한 그녀에게 직원들은 냉담하게 대한다. 그때 갑자기 신화 속의 인물인 아폴론이 그녀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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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바로, 만나는 대상이 누구이든지 간에 주저하지 말고 "정말 아름답군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아름답다고 말하세요!(Tell them they're beautiful!)”

 

아폴론은 "상대방이 미처 입을 열 사이도 없이", "추남이거나 절름발이거나 홀쭉이거나 뚱뚱이거나 가릴 것 없이", 또 "바보도 똑똑한 자도 겸손한 자도 허영심 있는 자도 젊은이도 늙은이도 구별하지 말고" 아름답다고만 하라고 말한다.

 

아그네스는 의아해하면서도 마지못해 파리에게 그 주문을 시험해 본다. 이게 웬걸. 파리는 그녀에게 달라붙어 날아가질 않는다. 이번에는 샹들리에다. 샹들리에는 꺼져 있다가 갑자기 불을 환히 밝힌다. 놀라운 효과를 확인한 아그네스는 이후 부사장과 이사들, 사장에게까지 그 '마법의 주문'을 반복하게 되고, 결국 그 회사 회장과 결혼하게 된다. 관객들은 '동물원에서나 볼 법한' 온갖 추남들이 자신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린다. 남자들은 자신의 '멋진 송곳니'를 자랑하고, 어릴 적 가족에게 들었던 칭찬까지 끄집어내며 기뻐한다. 나아가 사장은 "자신을 아름답다고 봐주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며 울부짖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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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원하는 인간 


 

혹자는 이 희곡의 주제를 '말의 힘'이라고 해석한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 아그네스가 불러 준 남자들은 모두 꽃이 되어 자신의 본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 것일까. 혹은 '우리 모두는 아름답다'라는 표어가 이 희곡의 주제일까.

 

그러나 나는 이 희곡이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다룬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아름다움을 쫓는 존재이며, 나아가 자신에게도 일말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밥을 먹여 주기는 힘들기에 우리는 대개 그러한 갈망을 잊은 채 살아간다. 하지만 신비로운 벨락의 남자가 알려 준 단 하나의 감탄사, "당신 정말 아름답군요!(How beautiful you are!)"는 단 한순간에 그들이 잊고 있었던 아름다움에 대한 본질적인 욕망을 일깨운다.

 

그 말을 통해 아그네스는 자신에게 아름다움이 있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남자들이 아름다움을 원하게 만든다. 그녀의 시선 아래 놓인 그들은 그녀의 입에서 자신이 아름답다는 말이 나오기만을 바라게 되고, 아름다움은 그들에게 중요한 삶의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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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이 끝난 후, 아폴론을 찾는 추남들뿐만 아니라 남겨진 아그네스에게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마지막 장의 아폴론과 아그네스의 이별 장면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제 떠나겠다는 남자에게 아그네스는 왜 자신에게 종일 거짓 슬로건을 말하게 했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이제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남자에게 아름답다는 칭찬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이에 남자는 당신은 언제나 벨락의 아폴론을 가지고 있었으며, 오늘 아침 당신에게 미의 신이 방문했던 것이라며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신 앞에서 눈을 감을 수밖에 없는 아그네스에게 아폴론은 자신의 모습, 즉 완벽한 아름다움을 묘사하며 자신의 눈을 보지 못하는 것에 감사하라고 말한다. 아그네스의 눈은 궁극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My poor eyes are made of agate and sponge. You've played a cruel trick on them. They weren't made to see supreme beauty. It hurts them too much.”

 

아그네스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로, 신을 만나기 전 자신이 살아왔던 작고 외로운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There’s my life! It consists of shadows and oppressed flesh, just a little brui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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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와 작은 멍이 든 억압된 육체 속에 갇히듯 영위해 온 삶은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잊고 살아온 삶이기에, 아폴론 앞에서는 보잘것없어 보인다.

 

아폴론을 만난 이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갈망하게 된 아그네스는 말한다. 당신을 내 팔 안에 꽉 끌어안을 수 없다면 당신을 원하지 않겠다고.

 

“If I can’t hold you tight against me there, I don’t want you.”

 

그리고 눈을 뜨면 사라져 달라고 말한다.

 

 

 

만질 수 없는 아름다움 


 

아폴론은 눈을 감은 그녀에게 가벼운 키스를 남기고 떠난다. 그리고 눈을 뜬 아그네스 앞에는 아폴론이 스쳐 지나간 한 사내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아그네스는 그 남자를 보고 진심으로 그가 아름답다고 말하며 남아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사내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말하며 떠난다. 기적의 야채를 나중에 함께 기르자는 기약 없는 약속은 아그네스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

 

남겨진 아그네스의 처지는 아폴론을 외쳐 대는 남자들의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아니, 오히려 더욱 비참하다. 남자들과 달리 그녀는 자신이 아름답기를 바랐던 것이 아니다. 아그네스는 만질 수 있는 아름다움을 원했으며, 그것이 그녀를 잠시 스쳐 지나가기까지 했다. 그녀는 결국 완전한 아름다움을 팔 안에 꽉 껴안는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만다.

 

아폴론은 ‘벨락의 아폴론’을 그녀가 이미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You always have the Apollo of Bellac…”).

 

그러나 그것은 아그네스의 마음속에 스치듯 존재할 뿐이다. 아폴론은 남자들과 아그네스가 잊고 있던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다시 깨워 주었을 뿐,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그들의 품에 안겨 주지는 않는다.

 

 

 

아폴론이 떠난 뒤에도 


 

이제 나는 처음에 말했던 주제를 조금 수정하고 싶다. 

 

이 희곡의 주제는 인간의 ‘이루어질 수 없는’ 궁극적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아름다움을 쫓는 존재로 태어났지만, 아름다움을 잊거나 포기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벨락의 아폴론>은 남성적 미를 상징하는 신 아폴론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아름다움이 얼마나 매혹적인 것이었는지를 다시 일깨워 준다. 아폴론이 떠난 이후 인간들은 아름다움을 더욱 갈망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손에 결코 닿을 수 없는 것이므로, 우리는 더욱 결핍된 채로 아폴론을 외칠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서 남성과 여성 간의 대립보다 더욱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신과 인간의 대립이다. 아폴론의 성별이 남성으로 특정된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만을 심어 주었을 뿐,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품에 아름다움을 결코 안겨 주지 않는 신. 그리고 무지개를 좇듯 닿을 듯 닿지 않는 아름다움을 그리며 잠드는 인간. 나는 바로 이 모습이 <벨락의 아폴론>에 그려져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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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이 오래된 희곡이 지금도 이상하리만큼 현재적이라고 느낀다. 우리는 더 이상 아폴론을 믿지 않지만, 여전히 각자의 아폴론을 쫓아 살아간다. 누군가는 사랑을, 누군가는 성공을, 누군가는 인정받는 삶을 꿈꾼다. 좋아요 수와 팔로워, 스펙과 성취는 어쩌면 현대인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아폴론일지도 모른다. 그것들은 손에 닿을 듯 보이지만 완전히 만족을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그것을 갈망한다.


아폴론이 왜 아그네스에게 마법 같은 한 문장을 알려 주었는지, 왜 추남들에게 완전한 아름다움을 갈망하게 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아그네스와 같은 한 인간으로서, 나는 지금도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쉽게 답하지 못한다. 다만 『벨락의 아폴론』은 내가 지난 삶에서 좇아 왔던 수많은 욕망들을 떠올리게 한다. 어쩌면 그 시도들 대부분은 실패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만의 아폴론을 향해 손을 뻗는 일을 멈추지 못한다.

 

극이 끝나기 직전 아폴론을 간절히 외치는 남자들의 심정으로, 나는 완전한 아름다움이 내 삶을 한 번쯤 스쳐 지나가기를 바란다. 동시에 그것이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다.

 

어쩌면 아름다움은 손에 넣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을 끝내 움직이게 하는 결핍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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