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돌을 좋아한다. 해안가에서 주워 든 돌도, 조각된 돌도, 돌을 소재로 한 그림도. 왜 좋으냐고 물으면 대답은 언제나 같다. 돌은 나보다 오래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처음 손에 쥔 도구도 돌이었고, 신에게 닿고자 쌓아 올린 것도 돌이었다. 도시를 세울 때 가장 먼저 깎아낸 것 역시 돌이었다. 그러나 돌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지구에 존재해 왔다. 인간이 돌을 발견한 것이지, 돌이 인간을 기다린 것은 아니다.
그 압도적인 시간 차 속에서 돌은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이 좋다.
그러므로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의 전시 《다시, 지구: 다른 감각으로 응답하기》에서 장한나의 작업 앞에 섰을 때, 나는 의심 없이 돌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표면에 플라스틱이 박혀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플라스틱과 돌이 하나의 물질처럼 뒤섞여 있었다.
작가는 제주 해안에서 수집한 이것에 '뉴 락(New Rock)'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뉴 락을 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질문은 단순해 보였다. 하지만 전시장을 따라 걷는 동안 그 단순함은 서서히 무게를 더했다.
뉴 락과 천연 암석이 나란히 놓여 있었고, 스케치와 사진 아카이브, 채집 과정이 담긴 영상, 입체 작품이 차례로 이어졌다. 과학적 분석과 예술적 관찰이 층층이 쌓인 구성이었다. 천연 암석이 형성되는 데에는 수억 년의 시간이 요구되지만, 뉴 락은 불과 수십 년 만에 생겨난다. 파도와 열, 자외선의 작용으로 플라스틱이 해안 암석에 스며들며 굳은 결과물이다. 전시는 그 사실을 알려주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데까지 나아간다.
나는 두 종류의 돌을 번갈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겉모습만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울퉁불퉁하고, 거칠고, 묵직하다. 그러나 오래 들여다볼수록 불편함이 커졌다. 내가 돌을 좋아했던 이유는 인간 이전의 시간을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뉴 락에는 그 전제가 없다. 지구가 홀로 빚어 온 것들 사이에 인간이 버린 것이 스며들어, 이제는 더 이상 떼어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겉모습은 닮았지만, 그것이 거기에 있게 된 경위는 전혀 다르다.
그 경위가 문제다. 나는 뉴 락을 돌이라고 부를 수 없다.
'돌'이라는 단어는 압력과 열, 그리고 긴 시간이 빚어낸 지구의 산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간의 개입 이전을 전제로 한다. 반면 뉴 락은 인간 활동의 흔적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자연이 스스로 생성한 물질이라기보다 인간의 소비와 폐기가 퇴적된 결과에 가깝다. 물론 과학적 기준으로는 다른 판단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돌'이라는 단어에서 떠올리는 시간성과 역사성은 뉴 락과 쉽게 겹쳐지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서 명명(命名)의 난제가 발생한다.
뉴 락에 돌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순간, 인간이 지구에 새긴 흔적은 자연의 일부로 흡수된다. 우리가 버린 것이 지구가 만든 것과 같은 범주에 놓인다. 그 명명이 위험한 이유는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편안한 해석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단순한 분류가 아니다. 무엇을 자연으로 인식하고, 무엇을 인간의 책임으로 남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행위다.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전시가 기획되어야 하는 이유가 드러난다.
기후위기는 대개 수치로 전달된다. 탄소 배출량, 평균기온 상승 폭, 해수면 변화 데이터. 우리는 그것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그 수치들은 몸에 닿지 않는다. 뉴 락은 다르다. 돌처럼 보이지만 돌이 아닌 것을 눈앞에서 직접 마주하는 경험은, 인류세(Anthropocene)를 인식하는 차원을 넘어 감각하게 만든다. 데이터가 설득하지 못한 자리에서 사물이 말을 건다. 이것이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전시를 보고 나온 뒤로 습관 하나가 생겼다. 바닷가 사진을 볼 때면 예전처럼 풍경만 바라보지 않는다. 해안 관련 뉴스를 접할 때도 물가의 돌들을 먼저 살펴보게 된다. 저 사이에 뉴 락이 있지는 않을까, 하고. 아마 이미 있을 것이다.
장한나의 질문이 불편한 이유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답이 너무 선명하기 때문이다. 뉴 락을 돌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지구의 암석 사이로 플라스틱이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이미 돌처럼 굳어가고 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것을 만든 존재가 우리라는 사실까지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