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에 깊은 조예가 없어도 '모네'라는 이름과 '빛의 화가'라는 수식어, 그가 말년을 보냈던 곳이자 예술적 명소가 된 '지베르니 정원' 정도는 들어봤을 테다. 사진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연의 풍경을 어떻게 생생하게 화폭에 옮길 수 있었을까. 수채화처럼 맑고 깨끗하면서도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듯한 섬세한 재현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평생 대중의 마음을 각인시킨 수천 장의 작품 속에는, 자신이 마주한 아름다움을 구현하고자 온 삶을 내던진 한 인간의 몰두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모네의 그림에 눈을 뜬 계기는 미디어 아트 전시에서다. 빛과 자연을 담은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광활한 스크린 위로 상영될 때, 팔레트 너머의 웅장함이 온몸으로 달려왔다. 특히 시간마다 변화하는 연못의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던 <수련> 연작의 감동은 선연하다. 이후 일본 여행 중, 우연히 전시에서 본 <양산을 쓴 여인>의 원화에선 대중이 그림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왜 감동하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모네, 빛의 순간들』은 모네 대표작 100점을 그의 일대기 속에 유기적으로 녹여낸다. 삶의 굴곡마다 탄생한 작품의 후일담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모네의 후손들이 집필한 자서전을 읽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아마도 그의 곁을 지킨 가족들의 이야기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아내이자 영원한 뮤즈였던 '카미유'와 정서적 지지자가 되어준 두 번째 아내 '알리스' 그리고 사랑하는 자식들까지.
부르주아라는 정체성과 예술적 고집 탓에 가족을 경제적 궁핍으로 몰아넣은 가장이었지만, 모네는 누구보다 가족을 끔찍이 사랑한 인물이었다. 혈연관계가 아닌 자식들까지 품으며 정서적 교류를 아끼지 않았던 그의 삶은, 버팀목이 되어준 가족이 있었기에 모진 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들을 연달아 죽음으로 잃고 피폐해진 마음으로 붓을 놓아야 했던 말년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모네에게 '색'이란 대상의 고유한 것이 아니었다. 대상에 닿은 빛이 산란하며 만들어내는 찰나의 인상이었다. (p. 38)
젊은 날의 모네가 원초적인 영감과 시선을 구현하기 위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던 모험가였다면, 방황의 끝에 도달한 곳은 자신의 미적 감각이 집약된 정원과 가족이 있는 집이었다. 시력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화폭에 담고 싶은 '지금 이 순간'을 고집해던 노년 화가의 순정은 어쩌면 삶의 영원한 안정을 찾아가는 치열한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예술이 칭송받는 고귀한 대상에 머물지 않고 생활의 영역에 편입해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p. 77)
그림을 받들어야 할 고귀한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았기에, 그의 그림에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감각이 오래 머문다. 시대 저항적인,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강렬한 작품들도 의미 있지만, 결국 현실에서 마주하는 일상을 재발견하는 태도야말로 가장 예술적인 삶이 아닐까. 지베르니에서 부를 축적하며 얻은 찰나의 안정 속에서, 남들이 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확신하며 밀어붙인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준다. 모든 인간이 평온한 말년을 꿈꾸듯 삶이란 결국 꿈을 실현해가는 과정임을 깨닫게 한다.
<해빙>은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죽음 같은 추위 뒤에도 강물이 다시 흐르듯, 슬픔을 딛고 다시 일어서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임을 스스로 말하고 싶었던 모네 자신을 위한 그림이었을 것이다. (p. 124)
오직 자신을 위한 행위,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내어 욕망을 실현했을 때의 희열. 어떤 도파민보다 짜릿한 예술적 성취 속에서 모네의 그림은 은은한 고양감을 전한다. 붙잡을 수 없는 찰나를 어떻게 살아해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