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틀에 앉아 내성적이고 말 잘 안 하고... 내가 걷고 있고 옆에 여자들이 많은데, 나는 몰라”.
밈 ‘하하 유니버스’의 유래가 된 무한도전의 한 장면이다. 이 밈을 활용해서 ‘하루키 남자 주인공 유니버스’라는 말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루키의 소설 속 남자 주인공들에게 발견되는 공통적인 특징을 살펴보면서, 이 소설의 주인공 쓰쿠루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하루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분명 호감을 사기 쉬운 매력 있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그것에 대해 잘 모른다. 그리고 그들에겐 아픈 과거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내면 어딘가에 깊은 어둠이 자리 잡고 있다. 주변 인물들이 기꺼이 조력자가 되어 이야기 전개를 돕는 와중에도, 주인공은 그러한 자신의 매력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오히려 주인공들은 주변 인물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졌다. 또한 하루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작가 하루키처럼 음악에 조예가 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쓰쿠루도 전형적인 ‘하루키 남자 주인공 유니버스’ 속의 인물이다. 스스로를 색채가 없다고 생각하는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라는 인물은, 독자의 입장인 내가 보아도, 소설 속 다른 인물들의 의견에서도, 색채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색채가 뚜렷한 타입이라고 느꼈다. 작중에서 쓰쿠루는 ’기차역‘에 대해 순수한 열정을 보이지만, 그 밖의 것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며, 고독한 생활을 한다. 이것을 통해 내가 느낀 쓰쿠루의 색채를 표현하자면 ‘지고 있는 태양의 강렬한 주황빛’이 떠오르기도 했다. 쓰쿠루의 열정은 뜨겁게 타오르지만, 그 빛에서 지고 있는 태양이 가진 고독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쓰쿠루에게 큰 상처가 된 사건
쓰쿠루와 학창 시절 친하게 지냈던 무리의 친구들의 이름에는, 쓰쿠루를 제외하고 모두 ’색’과 관련된 한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친구들이 고유한 색을 이름에 가지고 있는 만큼, 쓰쿠루는 친구들에겐 뚜렷한 개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이름에 색과 관련된 한자가 없는 쓰쿠루는, 마치 자신의 이름처럼 본인을 색채가 없고 텅 빈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쓰쿠루가 학창 시절 친구들과 ‘축복 받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한 순간 속에서도, 유일하게 색채가 없는 자신은 이 무리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무 살의 어느 날, 쓰쿠루는 친구들에게 이유를 모른 채 절교를 당하게 된다. 그것은 그에게 큰 충격과 아픔이었고, 소중한 친구들에게 절교를 당한 이유까지 직접 마주하게 된다면 자신이 더 무너질까 두려워, 적극적으로 그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쓰쿠루의 기저에 깔려 있던, ‘나는 이 무리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그가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후 쓰쿠루는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마음을 잘 열지 않는다. 인간관계에서 비슷한 상처를 받는 상황이 올 때마다, 이전에 친구들에게 버림받았던 일을 상기하며, 자신이 태생적으로 ‘색채가 없고, 텅 빈, 어딘가가 뒤틀린 사람’이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
진실과 마주하는 쓰쿠루
색채가 없는 삶을 살아가던 쓰쿠루는 서른 중반 쯤,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하는 ‘사라’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동안 애인들에게까지도 무관심한 태도로 살아오던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감정이었다.
쓰쿠루는 사라에게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라는 쓰쿠루에게 그의 마음 속 어딘가에 걸리는 부분이 느껴지고, 그건 아마 그가 어렸을 적 친구들에게 이유도 모른 채 버림받았던 일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녀는 쓰쿠루에게 자신과 앞으로 더 보고 싶다면, 그 사건의 진실을 마주할 것을 조언한다.
쓰쿠루는 계속 사라와 함께하고 싶기에, 용기를 내어 자신이 절교 당한 이유를 밝혀내기로 한다. 그렇게 16년 만에 학창 시절의 친구들을 찾아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사라는 쓰쿠루의 친구들의 현재 직업이나 주소지,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 위한 교통편 등을 알아봐주는 현실적인 조력자 역할을 한다.
쓰쿠루는 자신을 친구들에 비하면 부족한 사람이고, 그래서 무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예전부터 줄곧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속에서 꺼내 이야기해보거나 친구들의 의견을 직접 물어본 적은 없었다. 쓰쿠루는 흔히 말하는 ‘회피형 인간’의 삶을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이고 어두운 생각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물론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로부터 16년이란 세월이 흘렀어. 하지만 그때 입은 상처는 아직도 내 가슴에 남은 것 같아. 아무래도 아직도 계속 피를 흘리는 모양이야. 얼마 전에 사소한 일을 계기로 그걸 깨달았어. 나에게는 꽤 큰 의미가 있는 일이었던 거야. 그래서 이렇게 나고야까지 만나러 왔어. 갑작스럽게, 민폐였는지는 몰라도.”
- 쓰쿠루가 16년 만에 만나게 된 친구에게 건넨 말
쓰쿠루가 무리에서 버림받았던 이유는, 알고보니 무리 중의 한 친구의 거짓말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심지어 쓰쿠루에 대한 거짓말을 들은 친구들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쓰쿠루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그저 당시에 여러 상황이 맞물려 있었고, 해당 사건을 기점으로 절교 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친구들은 쓰쿠루가 미워서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었으며, 쓰쿠루를 버렸던 과거의 자신들의 선택을 성숙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생각하며 후회하고 있었다. 친구들 중 한 명은 오히려 쓰쿠루를 무리의 중심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심지어 또 다른 친구는 쓰쿠루를 이성적으로 좋아했었음을 고백한다.
자기 자신을 색채 없는 사람, 무리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던 쓰쿠루의 생각과 진실은 일치하지 않았다. 사건의 진실은 쓰쿠루가 그동안 두려워했던 것,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쓰쿠루는 이렇게 진실을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자신만의 색채를 찾아간다.
기차역을 만드는 쓰쿠루
쓰쿠루는 자신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어떠한 것을 소중히 여겼던 적이 있는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온 마음을 다했던 적이 있는가를 회고해본다.
첫 번째는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소중한 관계를 지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바로 ‘기차역’에 대한 그의 강렬한 애정이었다. 그는 기차역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기 위해, 관련 학과가 있는 명문 대학에 가고 싶어했었고, 열심히 공부하여 결국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만큼 ‘기차역’은 그에게 소중한 존재였다.
현재 쓰쿠루에게 소중한 것은, 그의 애인인 사라라는 것을 깨닫는다. 과거에는 진실을 마주하지 않고 회피했던 것으로 인해 소중한 친구들을 잃었었지만, 마치 ‘기차역‘을 위해 온 힘을 다했던 것처럼, 이젠 자신의 마음을 회피하지 않고 사라와의 관계를 지키려 한다.
“역을 만드는 일하고 마찬가지야. 그게, 예를 들어 아주 중요한 의미나 목적이 있는 것이라면 약간의 잘못으로 전부 망쳐져 버리거나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는 일은 절대로 없어. 설령 완전하지 않다 하더라도 어떻게든 역은 완성되어야 해. 그렇지? 역이 없으면 전차는 거기 멈출 수 없으니까.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맞이할 수도 없으니까. 만일 뭔가 잘못된 부분이 발견되면 필요에 따라 나중에 고치면 되는 거야. 먼저 역을 만들어. 그 여자를 위한 특별한 역을. 볼일이 없어도 전차가 저도 모르게 멈추고 싶어 할 만한 역을. 그런 역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거기에 구체적인 색과 형태를 주는 거야. 그리고 못으로 네 이름을 토대에 새기고 생명을 불어넣는 거야. 너한테는 그런 힘이 있어. 생각해 봐. 차가운 밤바다를 혼자서 헤엄쳐 건넜잖아.”
- 쓰쿠루를 향한 친구의 조언
사라는 그런 그의 성장을 도와준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변화는 단순히 사라 덕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결국 쓰쿠루가 스스로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라의 조언을 받아들였다는 점 자체가 그를 성장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결국 사라에 대한 그의 ‘사랑‘ 덕분에 가능했다는 점이 참 로맨틱하다고 느껴졌다.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나는 이 소설을 “자기 자신을 색채가 없는 사람이라고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자신에게 이미 색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받아들이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쓰쿠루는 누군가의 사랑을 통해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사랑을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인해, '자기 자신'과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낸다. 그래서 이 소설은 성장 소설이면서 동시에 연애 소설이라고 느꼈다. 사랑은 쓰쿠루를 대신 구원해주는 힘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었기 때문이다.
쓰쿠루가 마주한 진실은 그가 오랫동안 믿어온 부정적인 자기 인식과는 달랐다. 그는 무리에서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고, 색채가 없는 사람도 아니었다. 사실은 오히려 누군가에게는 중심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대상이었으며, 누군가에게는 뒤늦은 후회로 남은 사람이었다. 결국 쓰쿠루가 통과해야 했던 것은 과거의 진실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오랜 오해였다.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동안 쓰쿠루는 상처를 피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려했지만, 그 방식은 동시에 그를 멈춰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라를 향한 마음을 깨닫고, 과거로 직접 걸어간다. 그리고 순례 끝에서 깨닫는다. 자신은 색채가 없고, 어딘가 텅 빈 사람이 아니라, 그저 오랫동안 자신 안의 색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하루키의 세계는 인간의 마음을 복잡한 악보처럼 펼쳐보인다. 그 악보를 해독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설령 올바르게 해독했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올바르게 이해하고 평가하리란 보장은 없다. 또한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리란 보장도 없다.
그러나 복잡하게 엉킨 이야기 속에서도, 우리는 사랑을 발견할 것이며, 결국 그 끝에 나 자신을 마주하고 나만의 색을 발견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쓰쿠루이다. 부디 모두 그 길이 너무 지치지 않았으면 한다.
인생은 복잡한 악보 같다고 쓰쿠루는 생각했다.
16분 음표와 32분 음표, 기묘한 수많은 기호,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시들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을 올바르게 해독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고, 설령 올바르게 해독했다 하더라도, 또한 그것을 올바른 음으로 바꿔 냈다 하더라도 거기에 내포된 의미를 사람들이 올바르게 이해하고 평가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리란 보장도 없다.
사람의 행위는 왜 그렇게 복잡하게 엉켜야만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