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의도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는 64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지구를 향해 카메라를 돌렸다. 그렇게 전송된 사진 속 지구는 햇빛 속 먼지 한 톨보다 작은, 창백한 푸른 점이었다. 칼 세이건은 그 점을 두고 말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 우리가 알거나 소문으로 들었던 모든 이가 바로 저 위에 있다고. 그 찰나의 사진 한 장이 이번 전시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의 출발점이다. 전시는 총 다섯 공간으로 이어진다. 망각의 신전, 시간의 초상, 테마 공간을 거쳐 기억의 창, 그리고 야외로 나서면 마침내 사랑에 닿는다.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 당신이 아는 모든 이가 하나의 점 위에 있습니다.”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는 64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진 한 장을 보내왔습니다.
사진 속 지구는 햇빛 속 먼지처럼 작은 창백한 푸른 점이었습니다.그 작은 점 위에서 인류는 태어나고 사랑하고, 갈등하며 미워하다 결국 사라집니다.
우리는 때로 눈앞의 현실이 너무도 절대적으로 느껴져 일상에 압도된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광활한 우주와 비교하면, 인간의 삶은 찰나보다도 짧고,먼지처럼 미미한 존재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 겸허한 인식에서 출발했습니다.
13명의 작가가 참여한 이 여정에서 우리는 작은 존재로서 인간을 마주합니다.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잊은 채 증오와 갈등을 반복하는 우리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 쌓이는 기억, 생명의 리듬이 우주의 흐름과 맞닿는 순간이 차례로 펼쳐집니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관한 기록과 반복되는 일상의 흔적 속에서 서로의 공통된 연약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술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면 분절 사이에서도 연결의 가능성이 보입니다.
광활한 우주 속 작은 별들이 모여 은하를 이루듯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은 개별의 존재가어떻게 서로를 비추고 위로할 수 있는지 사유 해 보는 시간입니다.
지금 우리는 모두, 그 창백한 점 위에 있습니다.
- 기획 의도 전문, 포도뮤지엄 제공
보이저 1호가 촬영한 '창백한 푸른 점'. 원 안이 지구다. NASA/JPL-Caltech
“다시 이 빛나는 점을 보라. 그것은 바로 여기, 우리 집,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아는 사람, 소문으로 들었던 사람, 그 모든 사람은 그 위에 있거나 또는 있었다.
우리의 기쁨과 슬픔, 숭상되는 수천의 종교, 이데올로기, 경제이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겁쟁이,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민, 서로 사랑하는 남녀, 어머니와 아버지,
앞날이 촉망되는 아이들, 발명가와 개척자, 윤리 도덕의 교사들, 부패한 정치가들, <수퍼스타>, <초인적 지도자>,
성자와 죄인 등 인류 역사에서 그 모든 것의 총합이 여기에
이 햇빛 속에 떠도는 먼지와 같은 작은 천체에 살았다.“
- 칼 세이건, <창백한 푸른 점>
진행 순서
제1 전시실: 망각의 신전
제2 전시실: 시간의 초상
테마 공간: 유리 코스모스, 우리는 별의 먼지다
제3 전시실: 기억의 창
야외 공간: 결국은 사랑
작품 소개
제1 전시실: 망각의 신전
첫 번째 전시실 '망각의 신전'에서는 제니 홀저의 Crused가 관람객을 맞는다. 낡고 녹슨 금속판 296개에는 2020~2021년 미국 소셜미디어에서 수집한 정치적 언어들이 고대 저주판의 형식으로 새겨져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 가볍게 배설된 분노와 조롱이 영구적인 물질로 고착된 아이러니. 말은 휘발되지 않는다. 그것은 듣는 이의 마음으로 건너가 부적이 되기도, 예리한 칼날이 되기도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언어의 힘이 얼마나 커다란 책임인지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
제2 전시실: 시간의 초상
두 번째 전시실 '시간의 초상'으로 들어서면 수미 카나자와의 <신문지 위의 드로잉>이 거대한 커튼처럼 벽을 따라 펼쳐진다. 멀리서 보면 밤하늘의 은하수 같다. 가까이 다가서면 수백 장의 신문지를 이어 붙인 것이고, 그 위를 빼곡히 덮은 것은 10B 연필 선이다. 작가는 팬데믹 기간 내내 매일 밤 신문지를 검게 칠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그 명상 같은 행위가 쌓이고 쌓여 하나의 공간을 채울 만큼 거대해졌다. 그야말로 시간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같은 전시실의 마르텐 바스 <리얼 타임 컨베이어 벨트 클락>은 노동자들이 시계를 조립하고 분해하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영상이다.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그 장면이 묘하게 씁쓸한 건, 그것이 시간에 얽매여 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닮아있기 때문이다. 이어 다른 공간과 이어지는 커튼(아래 두 번째 사진부터)을 젖히는 순간 새하얀 벽을 빼곡히 채운 560개의 시계가 저마다 다른 속도로 째깍거린다. 각 시계에는 이름, 출생 연도, 직업, 국적이 적혀 있고, 스피커에서는 그 주인공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같은 퇴직자라도 누군가에게 억겁 같은 하루가 누군가에겐 쏜살같다. 마음가짐과 삶의 방식에 따라 시간은 고무줄처럼 좁혀지기도, 끝없이 늘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빠르든 느리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만은 모두에게 동일하다.
사진 출처: 포도뮤지엄
한편, 공간을 잇는 통로에는 영화, 책 등에서 발췌한 문장들이 복잡했던 생각과 마음을 환기시켜 주었다.
테마 공간(1): 유리 코스모스
테마 공간 <유리 코스모스>에서는 관람객의 숨이 작품이 된다. 다양한 폭력의 생존자와 치유자들이 50도가 넘는 유리 공방에서 입김을 불어넣어 만든 전구 248개가 어두운 공간을 떠돌다, 센서에 숨을 불어넣는 순간 일제히 빛을 발한다. 숨은 가장 연약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가장 강한 것. 상처 입은 이들의 호흡이 낯선 이의 어둠을 밝히는 장면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사진 출처: 포도뮤지엄
숨은 가장 연약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가장 강한 것.
트라우마를 겪고 고통받은 생존자들이 “상처 입는 치유자”로서 다른 이들에게 응원을 보내는 것.
그들로부터 힘를 전해 받아 내뿜은 숨으로 큰 공간을빛으로 채우는 것.
테마 공간(2): 우리는 별의 먼지다
두 번째 테마 공간 '우리는 별의 먼지다'는 자궁을 연상시키는 붉은 공간에서 시작해 자연과 도시를 거쳐 전 세계 사람들의 얼굴을 비추다 우주로 뻗어나가는 영상으로 채워져 있다. LED 디스플레이와 거울이 공간을 둘러싸고,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기도 한 보이저 1호의 골든 레코드 소리가 울려 퍼진다. 55개 언어로 전하는 인류의 인사말, 지구의 바람과 파도 소리, 새소리가 하나의 교향곡을 이루며 흐른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라지는 순간까지, 우리는 모두 같은 별의 먼지로 만들어진 존재임을 온몸으로 느끼는 공간이다.
사진 출처: 포도뮤지엄
제3 전시실: 기억의 창
2층으로 이어진 마지막 전시실에선 과거와 현재, 개인과 집단의 기억이 서로를 비추고 반영하는 거울과 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그 중에서도 소개해보고 싶은 작품은 쇼 시부야의 MANHATTANHENGE. 공간에 들어섰을 때 좌측, 신문을 스크랩한 액자가 줄지어 걸려있는 작품이 그것이다. 액자 앞면은 신문 위에 그림을 그려넣은 모습이, 뒷면엔 그림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신문 기사가 있다. 양면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인 것이다. 액자 앞면엔 뉴욕 타임즈 1면 위로 그날 아침 마주한 하늘이 고요하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뒷면을 보니 그림에 가려져 있던 기사가 드러난다. 이태원과 무안공항 참사 보도였다. 나란히 두고 보니 허탈하고 공허했다. 아름다운 풍경 뒤로 애써 비극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날이 과연 오게 될까.
마침내 전시관 문을 열고 나서면, 처음 입장할 때부터 저 멀리 보였던 문장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로버트 몽고메리의 Love is The Revolutionary Energy. 누구나 아는 뻔한 말처럼 보이지만, 망각의 신전과 시간의 초상과 기억의 창을 모두 통과한 뒤 다시 읽으면 무게가 다르다. 끝내 사랑으로 귀결되는 이야기. 가장 오래되고 가장 확고한 진리에 다시 한번 도달하는 것이다.우주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먼지 한 톨 위의 존재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서로를 향한 사랑이 더욱 귀하고, 혁명적인 게 아닐까.
사랑은 어두움을 소멸시키고
우리 사이의 거리를 무너뜨리는 혁명적인 에너지다.
참여 작가
모나 하툼 Mona Hatoum
제니 홀저 Jenny Holzer
라이자 루 Liza Lou
애나벨 다우 Annabel Daou
수미 카나자와 Sumi Kanazawa
마르텐 바스 Maarten Baas
사라 제 Sarah Sze
이완 Lee Wan
부지현 Boo Jihyun
김한영 Kim Hanyoung
송동 Song Dong
쇼 시부야 Sho Shibuya
로버트 몽고메리 Robert Montgom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