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극장의 시간들>은 대한민국 대표 예술 영화관 씨네큐브가 개관 25주년을 맞아 제작한 작품으로 언제나 변치 않는 친구처럼 곁에 있어준 극장과 영화에게 보내는 시네마 러브 레터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3인의 감독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감독의 3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엔솔로지 영화이며 ‘영화관에 대한 기억’, ’영화 제작 환경에 대한 이야기‘, ’극장 산업 종사자에 대한 헌사‘를 주제로 하고 있다. 세 편의 영화가 시작되기 전 실제로 씨네큐브에서 근무하고 계신 영사기사님과 새로 영사일을 배우는 젊은 청년의 모습이 비친다. 씨네큐브를 자주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1관을 입장할 때 마주쳤을 영사기사님이 1관 화면에 가득 차 있는 장면을 보니 기분이 묘하면서도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솜털이 보일 것 같이 뽀송한 모습으로 기사님에게 인수인계를 받는 청년의 모습을 보니, 영화 <시네마 천국>의 알프레도와 토토가 떠올랐다. 진중하게 인수인계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새로운 세대로 넘어가게 되는 영화 산업에 대한 씨네큐브의 뚝심과 새로운 도전에 대한 포부를 나타내는 듯하다.

침팬지 - 영화는 오랜 친구와 같은 것이다
’이종필‘ 감독의 영화 ‘침팬지’로 시작하는 극장의 시간들은 영화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 그 사랑은 첫 장면부터 진하게 느껴졌는데, 우렁찬 기차 소리는 전 세계 최초의 영화로 알려진 <열차의 도착>을 상징하는 듯하다. 사실 최초의 영화는 46초짜리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을 촬영한 단편 무성영화이지만,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열차의 도착이 최초의 영화로 알려져 있다. 그 뒤에 오는 프랑스어 독백 또한 영화의 역사적 시작에 대한 상징을 나타내고 있는데 ‘공장의 나서는 노동자들’과 ‘열차의 도착’의 감독이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영화에는 등장하는 고도, 모모, 제제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통해 영화와 사랑에 빠지며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2000년대의 모습을 흠뻑 담고 있는 이 단 편작은 어쩌면 2000년대에 왕성하게 영화 산업에서 활동한 이종필 감독의 향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인공 고도는 오래된 책방에서 우연히 ‘침팬지’에 대한 설명을 보게 되는데, 다른 동물들에 대한 설명은 사실을 기반으로 크기, 먹이, 생존환경에 대해 기재되어 있는 반면, 침팬지는 오래된 설화처럼 한국에 있는 침팬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들은 창경궁에 살고 있던 침팬지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게 되고, 우연처럼 침팬지를 오래된 동물원에서 만나게 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고도는 예전에 봤던 그 책을 다시 만나게 되지만, 침팬지에 대한 설명은 다른 동물들처럼 사실을 기반으로만 작성되어 있는 걸 발견한다. 어쩌면, 세 친구가 침팬지를 만나게 되는 장면은 꿈일지도 모른다. 침팬지에 대한 설화를 통해 친구들과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마치 책에 나온 듯한 침팬지를 만나는 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 꿈처럼 만질 수는 없지만 황홀한 경험을 안겨주는 영화에 대한 그 시절 감독의 열정과 사랑을 보여주는 듯하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세 친구와도 멀어지고, 침팬지에 대한 설명이 자신의 망상이었던 것도 알게 되듯 사실만을 기반으로 살아가게 되지만, 영화를 사랑했던 그때의 추억은 영원히 잊히지 않는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게 된다.

자연스럽게 - 카메라 앞인데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어?
’윤가은’ 감독의 <자연스럽게>는 대한민국에서 아동 영화를 가장 잘 찍는 영화인답게 아이들이 영화를 찍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영화 속에 나오는 감독(고아성)은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해달라고 요청하지만 아이들은 ‘대체 뭐가 부자연스럽다는 거야?‘라고 말하며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영화라는 건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도 허구의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때문에 감독들은 배우들에게 최대한 자연스럽고 현실 기반의 모습들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때가 많다. 그럴 때 배우와 감독 사이에 이견들이 발생하곤 하는데, 서로의 경험과 기억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 자연스럽게의 모습도 처음엔 아이들이 굽이굽이 펼쳐있는 산골을 걸으며 노는 모습이 펼쳐진다. 하지만 점심시간에 감독이 아이들에게 평소 친구들과 어떻게 노는지 물어봤을 땐 요즘 10대들과 다를 바 없이 마라탕을 먹고 카페에 가서 친구와 핸드폰을 하고 코인노래방을 간다 한다. 그때부터 감독은 자연스럽게 보이기 위한 절충안을 찾은 듯해 보인다. 오래된 도심의 골목길을 걸으며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기 위해 함께 공놀이를 하기도 하고, 카페에 가 시원한 음료를 마시기도 한다. 또, 아이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귀를 기울여 듣고, 함께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모습이 꽤나 감동적으로 다가왔는데, 영화라는 작업은 감독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시키기 위해, 감독과 스태프 그리고 배우들이 모두 한 몸처럼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다 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아 보였다.

카메라 앞인데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왜 행동해야 할까? 그것은 영화가 ’나‘의 이야기도 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의 이야기’ 도 되기 때문 아닐까? 문화는 결국 공감의 이야기로 사람들 곁에 항상 자리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의 마지막 장면에는 진짜 감독이 등장한다. 극장에 앉아 첫 시사를 기다리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모습을 찍는 모습은 액자식 구성으로 실제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로 하여금 반전을 느끼게 한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연기를 하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아이들은 아이들이고, 영화는 결국 가짜의 이야기 임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에 나온 모든 이야기와 배우들의 모습은 마음에 오래 각인되어 남아 있다. 윤가은 감독이 말하고 싶던 그 여운이 영화를 찍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건 아닐까?

영화의 시간 - 너야말로 안 변했네, 그 시절 얼굴이 그대로야
춘천에 사는 ‘영화’는 생각에 잠긴 채 서울의 낮을 배회한다. 자신의 학창 시절 추억이 담긴 ‘이화 여자고등학교’를 지나 발길이 가는 대로 걷다 보니 영화관에 도착해있다. 영화는 우연하게 그곳에서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인 ‘우연’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 변하지 않았음을 이야기하며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여고생처럼 수줍은 미소를 띤다. 영화관에서 청소 노동자로 근무 중에 있던 ‘우연’은 친한 극장 매니저에게 티켓을 받아 ‘영화’에게 자신의 근무가 끝날 때 가지 영화 한 편 볼 것을 권유한다. 오랜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듯한 영화는 너무 오랜만에 서울을 걸었던 탓일까 금세 잠이 들어 버린다. 꿈에선 궂은 장대비에 사람들이 비를 피하고 있는데 누군가를 애타게 부른다. 고등학생의 모습을 한 영화가 사람들이 있는 처마 밑으로 들어가자 다들 영화를 보며 일제히 박수를 친다. 이 장면이 꽤나 감동적으로 다가왔는데 어딘가 아픈 듯, 피곤한 듯 보이는 ‘영화’가 비라는 슬픔 혹은 힘든 일을 피해 처마에 들어갔을 때 바로 그 처마가 영화관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론 슬픈 일이 있을 때 영화라는 간접 경험으로 위로를 받는다. 현실에서 잠시 피하게 해주고, 생각할 시간을 주는 처마 같은 역할이 장건재 감독이 영화를 통해 느낀 느낌이었을까?

잠들어 있는 ‘영화’를 업무가 끝난 ‘우연’이 깨우고, 두 사람은 햇살이 환히 비추는 바깥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이 단편 영화는 그야말로 영화관, 즉 극장에 대한 헌사이다. 극장은 영화가 우연처럼 다가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기도 하고, 슬픔에서 잠시 피하게 해주기도 하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게 도와준다. 또 그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영사기사, 극장 매니저, 청소 노동자 등의 모습을 주인공으로 하여 극장은 영화도 있어야 하지만 사람 또한 존재해야 오래도록 남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3년째 투병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나의 어머니는 정말 오랜만에 컨디션을 회복하여 마스크를 꽁꽁 싸매고 극장에 다녀오신 적이 있다. 나에겐 일상이던 영화관에서의 영화 관람이 아픈 어머니에겐 기적과 같은 일이었고, 그날 어머니는 오랜만에 너무 즐겁고, 기쁘다며 눈물까지 흘리셨다. 언젠가 나도 극장에 가는 일이 뜸해지는 날이 있을까 싶다. 그런 날이 오더라도 마음 한편에선 극장이 오래도록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이 클 것 같다. 함께 나이 들어가는 친구 같은 모습으로 영원히 남길 바라는 마음을 가득 담은 영화 ‘영화의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