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어떤 노래는 삶을 설명해주기보다, 삶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 그 멈춤의 순간에 비로소 나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오월오일의 정규 1집과 그 안의 in the foreest는 내게 그런 작품이었다.

 

오월오일은 "매일 소중한 오늘을 노래한다"는 인삿말처럼, 거창한 사건보다 일상의 순간순간들을 담아내는 밴드다. 그들의 앨범 중 정규 1집 campo는 그들의 세계관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는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campo’는 감정을 느꼈던 공간을 의미한다. 놀이터처럼 웃음이 맴돌던 자리도, 무덤처럼 슬픔이 눌러앉은 자리도 모두 하나의 campo가 될 수 있다. 결국 이 앨범은 특정한 장소를 말하기보다는 우리가 지나온 시간 속 감정의 좌표들을 더듬는 작업에 가깝다. 첫 트랙에서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기차”에 오르는 순간, 청자는 이미 자신의 campo로 향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여정의 한복판에서 만나는 노래가 in the forest다.

 

다섯 번째 트랙인 이 노래는 비교적 잔잔학 편곡 위에 자기성찰의 서사를 얹은 곡이다. 외부 세계를 노래하던 시선이 내면으로 향하는 지점. 숲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배경으로 화자는 스스로의 부끄러운 면을 마주하게 된다.

 

 

 

숲에서 발견한 것은 ‘이기적인 나’였다


 

이 노래의 이야기는 화자가 어딘지 모를 숲에 도착하며 시작된다. 숲은 길이 분명하지 않고, 방향 감각을 읽기 쉬운 장소인 동시에 가장 본능적인 상태로 돌아가게 만드는 장소이다.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공간에서 그는 자신의 흔적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 조각들을 한데 모아보니, 불빛 아래 드러난 것은 아름답지만은 않은 나 자신이다.

 

"넌 참 이기적이라 네가 바라왔던 거 아니라면 도망가지."

 

이 가사는 이상하게도 처음 들은 순간부터 내 가슴을 쿡쿡 찔렀다. 어쩌면 이때의 내가 실제로 도망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채 괜찮은 척하며,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 생각하며 나를 마주하기를 포기했었다. 내 안에는 이기심과 불만이 가득했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노래가 무서웠다. 마치 누군가 내 그림자를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히 노래를 들어보면 이 노래는 화자를 비난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대신 반복해서 말할 뿐이다.

 

“Turn off the light, be there yourself. Close your eyes, look at yourself.”


 

불을 끄고, 그대로 있어보라고.

 

눈을 감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라고.

 

이 말은 구박이 아니라 더 큰 세상으로의 초대에 가깝다. 도망치는 나를 밀어내기보다 그 자리에 잠시 멈춰보라고 말하는 목소리였던 것이다. 어쩌면 그 순간 나에게 가장 필요했지만, 내가 스스로에게는 끝내 하지 못했던 말을 이 노래가 대신 건네준 셈이다.

 

내가 일상의 흐름을 멈추고, 내 안의 모순을 응시하게 만든 장면. 나는 이 가사를 마주한 후 내가 도망쳐온 자리들을 조금씩 돌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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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구조, 아주조그마한 성장


 

흥미롭게도 이 노래는 처음과 같은 가사로 끝난다. 화자는 끝내 자신의 모순과 완전한 화해에 이르지 못한 채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래서 얼핏 보면 이 서사는 제자리걸음처럼 보인다. 숲에 들어섰다가, 조금 흔들렸다가,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돌아온 인물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구조가 영원한 정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1절과 2절의 가사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생각이 많았어”는 “생각이 없어졌어”로, “잘못을 몰랐어”는 “잘못이 밀려왔어”로 바뀐다.

 

아주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을 잘 들여다보면 인식의 이동이 담겨 있다. 몰랐던 상태에서 밀려오는 것을 느끼는 상태로. 생각이 복잡했던 자리에서 오히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 자리로.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저 이전과 동일한 지점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 반복은 무의미한 순환이 아니다. 오히려 나선형에 가깝다. 겉보기에는 같은 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보여도, 미세하게 다른 층위에 서 있다. 어리숙한 나에게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을지라도 그 경계를 자각하는 순간 이미 다른 국면에 들어선 것이다.


나는 이 구조가 인간의 성장과 닮아 있다고 느꼈다. 우리는 단번에 변하지 않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같은 자리에서 머뭇거리며, 이미 다짐했던 것들을 다시 잊는다. 그러나 그 반복 속에서도 이전과 완전히 동일한 상태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는 또 도망치고 있구나’를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 나 역시 이 노래를 통해 내 모순을 직면하며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었다.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은 척 외면하지는 않게 되었다. 화자가 노래 안에서 끝내 숲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서 그 과정이 실패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복 속에서도 인간은 조금씩 이동한다. 그리고 그 미세한 이동들이 쌓이다보면 우리는 예상하지 못했던 자리에 도달하게 된다.

 

어쩌면 이 노래가 같은 가사로 끝나는 이유는, 변화가 완료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변화가 아직 진행중임을 말하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모순적이기에 아름답다


 

이 노래는 결국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왜 자신의 그림자를 그렇게 두려워하는가."

 

숲 속에 남은 흔적들은 모두 나의 일부다. 이기심도, 회피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태도도. 그것들을 없애야 할 결함으로만 보지 않고, 안고 살아가야 할 일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진다. 우리는 흔히 ‘변화된 완벽한 나’를 용기라고 부르지만 어쩌면 진짜 용기는 여전히 모순적인 나를 안고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자기 내면의 숲을 마주하는 일은 취약하다. 불을 끄고 조용히 서 있는 시간은 불안하다. 그래서 우리는 늘 밝은 곳에 서 있으려 한다. 스스로를 설명하기 쉬운 말들로만 정의하고 이해받기 좋은 면모들만을 전면에 내세운다. 어쩌면 그것을 생존의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조명이 켜진 자리에서는 내 그림자를 제대로 볼 수 없다. 그래서 이 노래는 잠시 어둠 속에 서보라고 말한다.

 

이 노래에서 반복해서 말하는 “Turn off the light”는 단순한 분위기 연출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보호하던 빛을 잠시 거두라는 요청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내가 아니라,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나를 마주하라는 제안이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발견한 나를 섣불리 밀어내지 말라고 속삭인다. 그 불편한 직면은 우리를 조금 더 입체적인 존재로 만들어줄 수 있다. 평면적이었던 자아가 균열을 얻고 그 균열 사이로 빛이 들어오게 되면 우리는 아주 조금씩 성장하며 부족한 나를 안아줄 수 있게 된다.

 

우리는 흔히 예술이 위로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이 노래처럼 어떤 작품은 구원을 주기보다는 아픈 질문으로 우리를 찌르기도 한다. 오월오일의 in the forest는 완벽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반복되는 구조 속에 가능성을 남겨둔다. 언젠가는 화자가, 그리고 우리가, 그 숲을 끝까지 걸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 나에게 이 노래는 그 가능성을 믿게 한 작품이다. 나는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 여전히 도망치고, 여전히 잊고, 여전히 모순 속에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순까지도 나라는 사실을 안다. 모순적이기에 우리는 불완전하고, 불완전하기에 우리는 여전히 변화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노래를, 오월오일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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