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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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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리는 무늬, 최진석


 

‘자신을 위한 삶을 살자.’, ‘스스로가 하고싶은 걸 하며 살자.’ 수십번 마음 속에 외쳐봐도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고있다. 사소한 변명을 하자면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어서 혹은 튀는 개개인을 그닥 선호하지 않는 사회에 거닐고 있어서 등등 무수한 구실을 뇌에 꽂고 방어적인 태도만 보였던 내게 건강한 사회란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튼실한 개인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은 충격적이었다. ‘문화적 발전’에 초점을 둔다면 문화란 한 나라의 산업, 경제력, 정치 모든 분야와 연결되기에 이들을 보며 지금 우리가 무엇이 부족한가, 옳고 그름의 문명의 방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연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삶은 ‘자기’가 사는 것이다. 내가 다른 것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꾸준한 질문을 던져주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바람직함, 해야함, 좋음이 뚜렷한 사회는 폭력적이다. 이는 단순한 교육과정을 거쳐온 사람에게는 대게 모순적이라고 느껴질 법한 문장이다. 하지만 그 내면에는 개인의 개성을 전혀 중요시하지 않는 사회라는 의미가 존재한다. 바람직한 것보다는 바라는 것을 하는 사람으로, 해야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으로, 좋은 일을 하는 사람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타인을 사랑하고 인정해주는 것, 그것은 자기애의 연장선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타인의 장점을 상기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부정의 흠이 없어 모든 만물에서 안 될 이유보다 될 이유를 먼저 찾아낸다. 누군가의 단점만을 보고 비난할 구멍을 찾으려 애쓰는 사람은 스스로 자처하여 흙수저 인생을 살아간다. 결국 행복은 자신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못나고 추한 것도 ‘나’이며 일그러진 추레한 나 조차도 나, 자신이다. 완벽한 이념만을 바라보니 나 자신이 못나고 추함을 느끼며 ‘잘못됨’을 의식하는 것이다. 못나고 추한 모습이 존재할 뿐, 결코 자기 자신은 못나고 추한 ‘나’가 아니다. 그러한 나 마저 사랑한다는 것은 만물의 이치를 깨닫고 세상을 짊어질 인재의 가능성이 있는 사랑스러운 인간임이 분명하다. 못났던 나를 사랑해주고 보듬어주며 살아가는 사람은 진정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깨어 있는 것은 예민함을 유지한다는 문장이 인상 깊었다. 예민함을 유지하며 깨어있는 사람은 눈 앞에 있는 것들의 ‘현전’을 깨닫는다. 낯섦이 발생하는 예민한 상태의 관찰력을 갖지 못한다면, 이 세계는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익숙함과 결별하여 세계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을 때 철학은 비로소 시작된다. 예민함은 나에게 쥐약과도 같았다. 항상 곤두서있고 안정된 시간을 갖는 것 조차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무던한 사람을 닮아가고 싶고 세상에 대한 회의감이 감정을 둘러쌀 때 나의 뇌 구조를 뜯고 재배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갉아먹는 나의 예민함이 때로는 철학에 입문할 수 있는 기제가 되어준다는 것이, 깨어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 나를 사랑하고 긍정할 수 있게 한다. 적어도 다른 생명체가 아닌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인간으로 누릴 수 있는 건 모두 누리고 싶다. 고통스러움을 느끼며 스스로를 갉아먹기 보다 내일 찾아올 사소한 행복을 오랫동안 곱씹고, 이를 감사하며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자연을 사랑하며 풀냄새를 맡고 꽃내음을 느끼고 힘겨움이 들 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가을이 찾아왔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조금씩 달라진 풀내음을 가슴 속까지 품어내며 시간이 지남을 느낀다.

 

글자는 영혼이 세상에 직접 강림하기 어려워 머릿속에서 몇 번 저마한 후, 팔뚝을 거쳐 팔목을 타고 흐르다가 하얀 종이 위에 떨어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응고된 것이다. 영혼의 세속화. 글쓰기를 통해 사람은 자신을 대면한다. 글쓰기는 인문적 통찰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글쓰기의 중요성을 넌지시 알고는 있었지만, 그나마 나도 일상에서 인문적 통찰을 조금씩 실천하고 있었다는 위로를 받았다. 적어도 나는 글을 쓰면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생명력을 느낀다. 감정을 실어내는 나의 글, 때로는 벅차올라 때로는 의문이 들어 막무가내로 한 글자씩 퍼붓듯 써 내려가지 못해 마침내 완성이 되면 '아, 비로소 나의 글이구나... 나는 나와 대면할 수 있구나.' 최진석 교수님이 말하는 인문적 통찰이 이런 것이라면, 더욱 더 많은 글을 쓰고 이를 통해 내면의 수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깊은 자신과 대면할 수 있도록 전진해야겠다.


 

내일 아침에 할 산책이 그리워서 잠을 설치지 못하고,

파랑새 우는 소리에 전율을 느끼지 못하거든,

깨달아라.

너의 봄 날이 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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