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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ending’이 아닌, Happy, End. 그리고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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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와 친구가 세계의 전부였던 시절, 나는 이 좁은 세계를 건너기 위해 음악을 들었다. 교실 창밖의 세상을 상상했고, 학교가 가리키는 이정표와 정반대 방향으로 전력 질주해 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영화 <해피엔드> 속 인물들은 낯설지 않았다. 그들은 내 친구들과 닮아 있었고, 어떤 순간에는 내 안에 혼재된 얼굴들이기도 했다. 성실하게 시스템에 순응하며 ‘착한 아이’가 되려 애쓰던 날들이 있었다. 반면, 호기심으로 금지된 자물쇠를 부수고 달리던 무모한 우리도 있었다. 부조리한 어른들의 경고음 사이로 억울함을 메시지처럼 던지던 순간, 불이익이 두려워 뒷걸음질치다 도착한 어두운 방이 있었다. 그곳에서 끝내 울음을 터뜨리던 밤들. 그렇게 각자의 속도로 도망치다 다시 마주친 친구들과의 거리감. 한 번 벌어져 버린 틈은 되돌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멀어진 친구들을 보며 내가 가장 먼저 탓한 건 나의 비겁한 도망이었다. 그다음은 친구들이었고, 마침내는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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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늘 흔들렸다. 내 성장도, 관계도, 사회도, 심지어 발 딛고 선 지구마저도. 파도처럼 밀려오는 변화와 충돌을 버티다 보면 어느새 주변 풍경은 통째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는 것 같은데 친구들은 다른 궤도로 진입하고, 가족들은 각자의 ‘중요한 것’을 찾아 흩어졌다. 세상은 나를 두고 새로운 무언가를 좇아 눈 깜짝할 사이에 방향을 틀었다.

 

그 혼란의 와중에 내게 남은 건, 습관처럼 틀어두던 플레이리스트뿐이었다. 이상하게도 음악은 늘 ‘새로운 것’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지나온 시간의 순서를 다시 붙잡아 주는 닻에 가까웠다. 같은 곡을 반복하면 마음은 잠깐 멈춘 것 같은데, 재생바는 무심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나는 더 자주 오래된 곡을 골랐는지도 모른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가 흐려지는 그 틈에서만 숨을 고르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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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음악은 안 들어요. 더 이상 새로운 음악도 없잖아요. 

이젠 옛 명곡을 발견하는 것 말고는 없어요.”

“그런 슬픈 소리 하지 마.”

 

 

나는 새로운 것을 찾아다닌다고 믿었으나, 실은 그리운 무언가를 더듬고 있었던 걸까. ‘찾는다’는 행위는 미지의 새로움을 포착하는 게 아니라, 이미 지나간 것들을 다시 꺼내 만지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손에 잡히는 건 과거뿐인데, 나는 그것을 자꾸만 미래로 착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안의 어떤 향수가 나를 오래전 어딘가에 붙들어 두고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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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안했던 건, 지금의 나를 바꾸려 드는 외부의 힘들이었다. 시간의 흐름, 친구들의 성숙, 뒤집히는 질서 같은 것들. 그래서 유타가 그 무거운 앰프를 끝내 놓지 못한 채 질질 끌고 가던 장면이 오래 남았다. 버리면 편해지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놓는 순간 정말로 ‘다른 시간’이 시작될 것 같아서 그는 끝내 놓지 못한다. 그 낡은 앰프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그가 필사적으로 지키고 싶은 세계의 무게였을 테니까.

 

특히 육교를 건너는 장면 위로, 내가 지나온 통로들이 겹쳐진다. 육교는 기묘하다. 아래쪽 도로는 현실의 무자비한 속도로 흐르고, 위쪽은 잠시 공중에 부유한다. 그 위에서 사람의 걸음은 또렷하지만, 숨소리는 흩어진다. 도시의 소음은 발 아래로 가라앉고, 남는 건 난간의 차가운 감촉과 “지금 건너고 있다”라는 감각. 누군가는 그 길을 통해 미래로 넘어가고, 누군가는 과거를 끌어안은 채 제자리를 맴돈다. 그 장면은 결국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변화는 언제나 바닥에서부터 먼저 달리고, 우리는 늘 한 발 늦게 위에서 그 진동을 감지할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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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타를 가장 자기만 생각하는 인물이라 여겼는데, 그가 지키려던 ‘자기’ 안에는 친구들과 세계가 통째로 들어 있었다. 코우는 변하지 않는 유타를 탓하며 자신의 변화를 옳다고 만들려 하지만, 그 옳고 그름이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듯 모든 것을 받아안은 건 오히려 유타였다. 그는 자기중심적이었을지는 몰라도, 끝내 이기적이진 못했던 사람이다. 어쩌면 사랑은 종종 그렇게 드러난다. 비효율적인 집착으로, 미련해 보이는 고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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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요동 속에서, 성장의 불안정함 속에서, 그리고 사회의 끝없는 정치적 소음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결국 빈손으로 남았을지라도, 지키려 했던 치열한 온기와 지키지 못해 떠나보낸 것들이 남긴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다음 걸음의 보폭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우리 안에 남는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끝을 맞이한다. 매번 그것을 ‘끝’이라고 이름 붙이진 못한다. 다만 어렴풋한 슬픔으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고 감각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또 보자”, “다음에 만나자” 같은 기약 없는 말로 이별을 덮어둔다. 마치 끝이 아닌 것처럼,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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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화 <해피엔드>가 말하는 건 ‘Happy ending’이라는 동화 같은 결말이 아니다. 행복은 서사가 매끄럽게 이어지는 결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끝을 끝으로 인정하는 태도에 있다. 우리는 어느 순간 분명한 ‘End’를 맞는다. 각자는 다른 궤도로 흘러가고, 한 번의 만남에 수억 번의 우연이 포개진 인연이었으니 같은 기적이 다시 오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End.

그렇지만 다시 각자 나아가는

 

그리고,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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