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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0. 양동이


 

중세 시대에는 인간이 자살할 때 목에 밧줄을 감고 양동이를 차버렸다고 한다. 버킷 리스트의 버킷은 이 양동이를 의미한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 전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 그게 버킷리스트.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목에 밧줄을 감은 중세인. 그의 발밑에서 힘겹게 그를 받치고 있는 녹슨 양동이 하나. 고통스러운 얼굴로, 혹은 평안에 이른 얼굴로 양동이를 걷어차는 사람. 그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이었을까.

 

 

 

1. 총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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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이를 걷어차기 직전. 돌연 9년 전 제주로 돌아간다. 하늘이 맑고 공기가 유난히도 깨끗했던 제주. 그런 풍경과 사뭇 다른 분위기의 엄숙한 실내에서 실탄이 든 권총을 손에 쥔 앳된 얼굴의 학생. 귀에는 방음 헤드셋을 끼고 다소 긴장한 얼굴로 서 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는지, 옆에 서서 가이드를 전달해주던 강사의 목소리가 작게나마 들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그렇게 서 있다가 열 발의 총을 쏜 것이 전부. 첫발의 총성이 울린다.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 안에서 강렬하게 폭발하는 듯한 소음. 방음 헤드셋을 착용한 게 무색하리만치 머리에 가득 울려 퍼지는 굉음. 떨어지는 탄피 소리마저 들은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약간의 어지럼증과 강렬한 쾌감을 동시에 느낀다.


다섯 발, 여섯 발이 넘어가면 조금씩 아쉬워진다. 더 천천히 쏘고 싶어. 더 거대한 감각을 느끼고 싶어. 이 시간이 끝나지 않으면 좋겠어. 잘 쏜 걸까? 다시 쏠 순 없나?


양동이를 걷어차기 직전으로 돌아온다. 다시 그 총을 손에 쥐고 싶어진다. 좀 더 정교하게, 대담하게, 짜릿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쏘고 싶어진다.

 

 

 

2. 살생이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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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총알은 다행히 생명을 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총알이 향하는 건 아주 커다랗고 네모난 종이일 뿐. 힘이 닿는 선에서 살생은 하지 않으려 한다. 응. 힘이 닿는 선에서.


2년 전부턴가. 살생이 없는 그곳, 겨울이면 대지에 눈이 소복이 내려앉는 소리만 들리는 그곳. 항상 그곳을 생각했다. 쥐새끼 하나 없는, 정확히 말하면 살아있는 쥐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겠다마는 여하튼 눈에 보이는 생명체란 회색 옷을 입고 절을 올리시는 그분들 뿐이지만, 거꾸로 모든 생명체가 그 자체로 살아 숨 쉬는 생명의 장. 바로 그 곳을 생각했다.

 

나를 찌르는 게 없는 곳이 하얀 곳이 필요하다. 눈을 감으면 까맣고, 눈을 뜨면 하얀 세상. 갓 구워낸 빵 같은 색깔의 폭신폭신한 고양이와 새카만 털로 뒤덮인 고양이가 그 바닥에 발자국을 찍는 세상. 거기에 가면 나는 평안에 이를 수 있는가. 양동이를 걷어차지 않아도 나는 평안에 이를 수 있는가.


 


3. 검증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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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평안. 그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건 양동이가 아닌 회고와 나아감, 약간의 순진함.


그러니 내게 버킷리스트는 희망의 실현이 아닌 가설의 검증 과정이다. 2026년에는 부디 평안에 이르길. 열 발의 총성과 눈 덮인 숲속 마을이 부디 나에게 평안을 안겨다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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