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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연극 <파린>에서는 한 가지 상황이 반복될 뿐이다.

   

두 사람이 있고, 재난에 휩쓸려 그중 한 사람이 죽는다. 그렇게 홀로 살아남은 이는 재난이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순간의 기억과 감정을 영원히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죽은 게 나일 수도 있었다는 불안감, 한편으로는 살아남은 쪽이 자신이라는 안도감, 그리고 그 안도감과 불안감으로 인한 죄책감을 계속해서 지니고 살아가게 된다.


첫 상황은 히말라야의 낭가 파르바트에서 조난한 형과 동생으로 시작된다.

 

비현실적인 높은 언덕을 형제는 등반해 내지만, 하산하던 중 기상악화로 길을 잃고 죽음의 골짜기라는 위험천만한 길을 통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극한의 상황에 동생의 의식은 점점 흐려져 가고, 눈에 가려져 시야도 확인되지 않는, 자기 감각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주변 상황은 점차 왜곡되어 간다.

 

정말 이곳이 낭가 파르바트가 맞는지, 혹시 산이 아니라 태평양에서 조난한 것은 아닌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저 거대한 새는 실존하는 것인지, 무엇이 현실이고 환각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형이 구조된다. 그리고 기자회견 장에서 형에게는 왜 동생을 그대로 두고 내려왔는지 질문에 건네진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형이 반복하는 말은 미안하다는 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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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가 파르바트의 형제에서 시작한 생존과 죽음의 상황은 점차 여러 배우에게 중첩된다. 상황은 형과 남동생의 이야기에서 오빠와 여동생의 이야기로, 언니와 여동생의 이야기로, 그리고 애인, 친구의 이야기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중첩된다.

 

그렇게 멀고 먼 히말라야에서 벌어진 일이었던 사건은 점점 태평양으로, 옥상으로, 화장실로, 그리고 언젠가 큰 사건이 있었던 어딘가의 도심으로, 거리로, 공간은 점점 불확실해지고 일상 가까이로 다가온다.

 

죽음의 상황 역시도 마찬가지다. 바로 곁에서 누군가를 잃은 상실의 경험은 극의 진행에 따라 점점 내가 옆에 있지 않았던 상황, 오래전 겪었던 상실의 상황, 그리고 자신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점점 퍼져나간다.


그렇게 분해되고 중첩되던 연극의 이야기들은 마지막에 다다르면 두 회사원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이곳은 너무나도 평화롭고, 두 사람이 커피를 마시고 있을 뿐이며, 한 사람이 단지 이유 모를 우울함을 호소하고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 이제는 죽음은 너무나도 먼 곳의 이야기이며, 단순히 두 사람의 대화에서 어딘가의 뉴스에서 들었던 이야기로만 언급된다. 하지만 이곳에 다다르기까지 중첩되어 온 이야기를 지켜봐 왔던 관객들에게 죽음은 이들과 무관한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파린>은 사건과 인물로 말하는 기존의 방식 대신, 쌓아 올려진 비극 위의 일상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일상의 균열을 폭로한다.

 

오늘도 뉴스를 켜면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부터 지구 반대편 나라의 전쟁 소식이 들려온다. 자신에게는 평온한 하루였던 오늘이 누군가에게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의 죽음이 자신의 일상이 무관하지 않다고 느낀다. 멈출 수 없는 재난임에도 어딘가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죄책감을 느껴도 삶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서로가 긴밀하게 얽혀 살아가는 현대에서 그 죄책감과 우울은 끝내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분의 깨진 금처럼, 우리의 일상에 금이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다.

 

어쩌면 죄책감과 우울이 향하는 방향을 틀어 조금이나마 세상을 바꿔 보려는 작은 노력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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