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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다들 어떻게 견디며 살까? 요즘 들어 자주 드는 의문이었다.

   

수치스러운 순간들, 잊을 수 없다면 차라리 아예 사라져 버리고 싶은 심정, 살면서 저지르는 크고 작은 죄와 오만을, 이렇게 복잡한 세계에서 알면 알수록 무겁게 느껴지는 삶의 책임과 무게, 그리고 나의 무지와 게으름, 부족함과 끔찍함을, 다들 어떻게 견디며 살까?


바람 한 올마저 황홀하게 느껴지는 좋은 날이 있다가도, 이런 자기파괴적인 생각들이 온 정신을 범람해 올 때가 있다. 나는 그럴 때 비겁하지만 훨씬 더 못난 일, 훨씬 더 나쁜 사람, 훨씬 더 최악인 상황을 떠올리면서 위안 삼곤 한다.


여기, 선택 앞에서 족족 오답만을 골라 늘 상황을 최악으로 만드는 데 일가견이 있는 말이 있다. 맥주병을 들고 배가 불룩 나와서는 예민한 눈으로 째려보는 이 자태를 보면, 재생 버튼을 누르고 싶게 호감 가는 비주얼은 확실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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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보잭 홀스맨>의 여섯 개 시즌을 웃다 울다 반복하며 다 보고 나니, 이 지긋지긋한 구제 불능의 말을 무한한 애정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듯 조금은 누그러진 마음으로, “그래도 잘살아 봐야겠지” 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아직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애니메이션이라, 아쉬운 마음에 팬심 가득한 이 글을 쓴다. 가끔 자기 자신을 견디기가 버거운 당신에게. 여전히 방법은 없더라도 이걸 보면 몇 번은 웃어넘길 수 있을 테니까!

 

 

 

1. 동물, 성인, (블랙) 코미디 애니메이션


 

넷플릭스의 첫 자체 제작 애니메이션인 <보잭 홀스맨>은 2014년 첫 시즌을 공개했다. 이야기의 배경은 미국의 할리우드이다. 동물과 인간이 구분 없이 함께 살아가는 세계관으로, 거의 인종과 비슷한 정도의 차이로 여겨진다. 주인공인 ‘보잭’도 말이며, 젊은 시절 ‘Horsing around’라는 시트콤 쇼로 큰 인기를 끌어 부유한 할리우드 유명인의 삶을 살고 있다.


보잭을 둘러싼 인물들로 스토리는 진행되고, 캐릭터들 간의 관계성이 특히 흥미롭다.


직장, 집, 돈이 있든 없든 자기 행복 속에 느긋하게 살아가는 인간 ‘토드’. 친구 사귀기를 너무 좋아해서 만나면 꼬리치며 반가워하다가도 3초 안에 돌아서는 강아지 ‘피넛버터’. 일중독의 딜레마에 늘 지쳐있지만 똑똑함과 다정함을 겸비한 고양이 ‘캐럴린’. 그리고 보잭과 많은 부분을 닮아 있는 베트남계 미국인 ‘다이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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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들이 어떻게 보잭의 결핍을 채워주고, 그의 성장과 갈등 서사에 개입하는지를 중심적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는 오히려 이들 각자의 이야기가 완성되어 가며 보잭과의 관계를 어떻게 지워내는지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이 이 시리즈의 한 가지 묘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보잭 홀스맨>은 할리우드 생태계를 비롯해 매우 다양한 사회 문제를 건드리면서 블랙 코미디의 성격을 갖는다. 젠더, 정치, 노동, 인권, 정신질환 등을 둘러싼 주제가 가볍거나 무겁게 녹아들어 사건을 구성한다.


가령, 스키 대회를 통해 주지사를 선출하게 되는 등 황당한 일들이 일어나는데, 그것에 대한 첫 반응으로 우리는 웃고, 다음으로 현실과 얼마나 다른가를 생각하게 된다. 많이 다르다면 안심이지만, 비슷하다면 절망이다. 특히 사회 문제는 한 가지 면으로만 판단할 수 있는 경우가 없기에, 여러 관점이 논의되는 과정을 점입가경으로 풀어내는 재치가 <보잭 홀스맨>에서 두드러지는 강점이다.

 

 


2. Divertissement


 

여기까지가 전반적인 개요였다면, 지금부터는 주인공 ‘보잭’의 전 시즌에 거친 ‘자기 구원’의 여정에 집중해 보려 한다. 보잭은 자신에 대한 실망과 죄책감을 어떻게 마주하는가?


- 마주하지 못한다. 내내.


시청자들은 이 점 때문에 화나고, 답답하고, 안쓰럽고, 그러나 공감되는 탓에 슬퍼한다. 그리고 마주하기에 실패한 보잭이 매번 택하는 길이 바로 향락이다. 그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이자 섹스 중독, 약물 중독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문제를 회피하려 이런 것들과 함께 삭제해 버린 시간이 아마 보잭의 인생에서 절반은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또 다른 문제가 수레바퀴처럼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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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이자 철학가 블레즈 파스칼은 이러한 ‘divertissement’의 모습이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프랑스어 ‘divertissement’은 기분전환, 오락, 즐거움 등으로 정의되지만, ‘divertere’라는 라틴어 어원에는 ‘방향을 바꾸다’, ‘돌리다’ 등의 뜻이 있다. 즉, 어둡고 비극적인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주의를 돌리는 모든 행위가 이것에 해당한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오직 한 가지, 즉 방 안에 조용히 머무르는 법을 모르는 데서 온다.“ 

 

Blaise Pascal, < Pensées >


 

인간이 생의 유한성, 고독함, 허무, 권태 등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비이성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파스칼에 의하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렇게 타락한 인간은 ‘모든 것의 중심인 나’를 형성하여, 기저에 다른 사람을 증오하는 자기애를 갖게 되고, 따라서 사회적 관계 맺기가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문제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 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파스칼의 결론에는 무신론자로서 동의하기 어렵지만, 보잭의 심리를 이해하는 도구로서는 충분히 흥미롭다. 마찬가지로 보잭은 특유의 유아독존 태도로 곁에 사람이 남기가 매우 힘든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곁에 남아주는 존재들, 문제해결을 도와주는 동시에 보잭에게 필요한 지적을 해주는 인물들 덕분에 시청자는 보잭에게 마음을 열 수 있다.

 

 

 

3. 혼자 남겨지다


 

그러나 인생은 결국 스스로 나아가야 한다. 정말 공포스러운 사실이다. 무한한 자유가 내 앞에 놓였을 때, 내가 나를 다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 이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보잭은 자꾸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이용하곤 한다.


특히 다이앤은 보잭과 심연의 우울감을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자아를 투영하고 심적으로 의지하는 관계이다. 그리고 이 둘은 자주 자신의 이름 앞에 ‘클래식’을 붙인다. ‘클래식 다이앤’. ‘클래식 보잭’. 늘 그렇듯이 일을 그르치고 모두를 실망하게 했다는 자조적인 말이다. 그리고 희망은, 이런 식의 부정적인 자기규정과 자기기만의 습관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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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폴 사르트르가 실존(l’existence)이 본질(l’essence)에 앞선다고 말했던 것처럼, <보잭 홀스맨>을 관통하는 메시지 중 하나는 ‘내가 하는 행동이 곧 나’라는 점이다. ‘진짜 나’ 혹은 ‘원래 나’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자유 속에서 내린 선택 하나하나에 책임을 지면서 자신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보잭은 본인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사과하기도 하지만, 이후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좀처럼 이르지 못한다. 물론 반성과 사과는 좋은 시작이 되지만,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만큼 나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 번은, 아침 조깅을 시작한 보잭이 숨이 벅차 누워있을 때, 지나가던 원숭이가 말을 건넨다.

 

 

“쉬워져요. 매일 조금씩 쉬워져요. 하지만 매일 해야 하죠. 그게 힘든 부분이에요. 그래도 정말 쉬워져요.” (It gets easier. everyday it gets a little easier, but you gotta do it everyday. That’s the hard part. But it does get easier.)

 

 

<보잭 홀스맨>의 메시지는 이렇게 강하게 다가왔지만, 정작 ‘내 행동을 직면하고, 인정하고, 책임지고, 나아간다’는 말은 너무도 추상적이어서 실천적으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더 추상적일지 모르지만, 이 대사만큼은 기억하고 싶다: “가끔은 자기 행복에 대해 책임져야 해. (Sometimes you need to take responsibility for your own happiness)” - 불행으로부터 나를 구원하기 위해, 그리고 남의 기준에 맞출 필요 없는 나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할 책임이 나에게 있다.


정신적 고통은 존재 본연의 탓이면서 세상의 탓이기도 하고 내 탓이기도 한 복잡함이다. 그렇지만 별수 없다. 부디 도망가지 말고 살아서, 웃어넘길 수 있을 때까지 견디는 거다. 최악의 실수를 반복하는 보잭에게도 그의 행복을 응원하는 타인이 여전히 있다. 내가 나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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