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단어를 떠올렸을 때, 그것이 살아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단순히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게 [예술은 죽었다]라는 이 책의 제목은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예술은 왜 멀어졌는가?
오래 전부터 화가 반고흐의 작품을 좋아했다. 그의 작품에는 묘한 생동감이 있었고, 그래서 미술관에서 반고흐의 그림을 보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미술관을 '예술이 죽으러 가는 곳'이라고 말한다. 내가 생각하는 미술관은 예술을 보고 느끼기 위한 장소였기에, 이 대목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책에서는 미술관의 공간이 지나치게 정제되고 보편화된 미적 경험을 강조한다고 설명한다. 예술은 본디 인간의 삶과 연결된 채로 탄생하는데, 그러한 창작물이 사방을 벽으로 가둔 미술관에 들어가 이내 '기록물'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이 그 이유였다.
돌이켜 보면, 미술관에서 본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나올 때가 많았다. 늘 작품에 대한 묘한 궁금증을 남긴 채로 그저 시각적으로만 보이는 기술과 표현력에 감탄했다. 책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쩌면 반고흐의 작품을 미술관에 전시된 값비싼 작품이 아닌 대충 프린트 된 그림 자체로 보았기 때문에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작품들과 함께 있을 때보다는 주관적인 시각으로 해당 그림을 관찰하고, 무언가에 쫓기지 않으며 작품 자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본디 예술은 삶이었다.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예술을 가까이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감정을 통제하면, 타인과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며 유연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특별하거나 사소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고, 해당 경험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겪는다. 책에서는 오늘날의 인간이 분석과 효율을 추구하는 데 집중하면서 몸의 감각을 소홀히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극도로 효율적인 삶을 살면서도 우리의 경험이 빈곤한 이유라고 설명한다.
최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은 공감보다는 예측에 가까워진 듯하다. 소수의 사람들이 공감을 통해 타인과 교류하기도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저 사람은 저럴 것이다'라는 추측을 바탕으로 타인을 대한다. 요즘 자기소개를 할 때 빠질 수 없는 MBTI가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빅데이터의 활용과 분석은 점차 중시되고 있다. 이를 통해 무언가를 만들고 실행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받지만, 오로지 화면 속 데이터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만 지금을 살아가기에는 약간의 공허함이 존재하는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술과 예술의 균형을 올바르게 잡는 것이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숙제처럼 느껴졌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머리로 해결하려는 습관을 버리고, 직접 몸을 부딪히며 겪는 과정을 통해 몸의 감각을 익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
예술은 늘 나와 다른 세계에만 존재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특정 작품을 보고 그럴듯한 감상평을 남기는 사람들이 신기했고, 그들을 따라 멋들어진 감상과 비평을 흉내내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예술이 존재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비로소 예술을 이해하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수 있었다.
예술이란 결코 어려운 분야가 아니다. 지금도 우리 삶에 스며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예술은,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