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몇 번 고전 미술 작품 전시를 보러 다니면서 그 재미를 알게 됐다. 이전까지만 해도 고전 작품 전시에는 모두 비슷한 작품들만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전시의 종류와 목적, 주관사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 늘 새로운 작품을 현실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게 무척 재미있었다.
특히 여러 화가의 다양한 작품을 한 공간에서 관람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나에게는 이번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와 같은 전시 스타일이 딱 맞았다.
유럽의 르네상스 시기부터 20세기 모더니즘 시대까지 거치며 총 65점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보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이번에도 그림을 좋아하는 엄마와 함께 관람하여 그림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본 전시는 2026년 개관 100주년을 앞둔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유명 컬렉션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중 25점은 미국 외 지역에서 최초 공개된 것이었다. 60명의 거장의 그림을 통해 600년의 역사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전시장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강렬한 와인색의 배경과 돌기둥 모양의 구조물이 상당히 컨셉추얼한 느낌을 주었다. 안쪽 공간으로 들어가자, 커다란 스크린에 아름다운 유럽 풍경을 담은 영상이 송출되고 있었다. 이는 장유록 감독이 제작한 영상으로, 영상과 음악이 공간 분위기와 조화롭게 어울려 전시의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전시는 ‘Ⅰ. 유럽 남부와 북부의 르네상스’ 섹션부터 시작했다. 당시 14~16세기의 유럽 미술의 핵심 키워드는 ‘사실성’과 ‘이상화’였다. 그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활동했던 시기며, 대부분의 그림은 기독교적 주제와 성경의 구절을 반영했는데, 실제 해당 섹션에 전시된 그림들의 90% 이상이 전부 기독교와 관련된 그림이었다.
특히 베르나르디노 루이니를 비롯해 여러 화가가 각자의 상상과 개성대로 표현한 마리아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종교나 신화적 스토리텔링에 등장하는 마리아는 현실의 이미지가 고정되어 있지 않기에, 각 화가가 저마다 상상한 이미지로 표현한 점이 흥미로웠다. 이 외에도 레이스나 머리카락의 결을 하나하나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낸 그림들이 대부분이라, 엄마와 나는 작품 앞에 한참을 서서 그 섬세함을 음미했다.
이어 ‘Ⅱ. 바로크‘ 섹션에서는 조금씩 일상과 자연풍경을 포착한 그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사실적인 종교 관련 그림이 많았기에, 그 사이에서 라헬 뤼스흐의 작품인 <화병의 꽃>을 보면서 조금 반갑기도 했다.
식물학자여서일까, 그녀가 표현한 꽃잎과 잎사귀의 색상이 전부 다르지만, 멀리서 보니 굉장히 조화롭게 느껴졌다.
특히 해당 섹션에서는 스피커를 통해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 흘러나와, 공간의 몰입도를 극대화했다. 해당 음악은 정예경 음악감독이 선곡 및 작곡한 음악으로, 관람객에게 청각적 자극을 함께 주어 멀티 센서리 경험을 선사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Ⅲ. 로코코에서 신고전주의로‘ 섹션에서는 왕가의 초상 등이 등장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의 종교적 색채가 감소하고 흰색과 금색 등 왕가의 고급스러움을 나타내는 색상들이 눈에 띄었다. 비교적 사실적인 풍경화를 담은 그림들도 조금씩 보이면서, 후대에 등장할 사실주의 화풍의 기조가 조금씩 꿈틀대고 있음이 느껴졌다.
왕가의 초상을 지나 ‘Ⅳ.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까지‘ 섹션으로 넘어가니, 작품에 사용된 붓 터치의 두꺼운 정도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사실주의를 거쳐 인상주의 화풍을 보며, 당대 사회에서 이 인상주의 화풍이 얼마나 반항적이고 도전적으로 느껴졌을지 공감이 되기도 했다.
특히 모네의 화풍을 좋아하는 나는, 모네가 그린 <샤이의 건초더미> 작품이 이렇게까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에서 매우 놀랐다. 마치 무지개의 일곱가지 색상을 모두 담고있는듯한 하늘의 색상과 진한 고동색으로 표현된 건초더미를 보며, 왜인지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 여담이지만, 퇴장하는 길에 이 작품의 엽서를 구매하여 내 방 벽에 붙여두었다.
마지막 ‘Ⅴ. 20세기의 모더니즘’ 섹션에서는 인상주의를 넘어 프랑스에서 최초로 시작된 모더니즘과 점묘주의, 야수파 등 신진 화풍의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리는 시대가 막을 내리고, 화가 개인의 개성을 듬뿍 담은 작품들이 줄지어 등장했다.
연신 등장하는 개성적인 색채와 자유로운 분위기의 그림들은 마치 21세기 현재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14세기 르네상스 시대부터 20세기 모더니즘 시대까지 65점의 작품들을 살펴보며, 화풍의 변화와 더불어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시대상의 변화까지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림의 대상과 주제는 계속 변화해 왔지만, 화가들은 늘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순간을 포착해 화폭에 담아냈다.
비록 화가는 아니지만, 전시장을 나오며 나 또한 지금 몸담은 이 삶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해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