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common.jpg

 

 

“왼손은 악마의 손이야!”


이 말을 들은 어린 이징은 순간 이렇게 생각한다. 왼손이 악마의 소유라면 왼손이 저지른 일은 악마의 책임일 것이다. 그렇게 이징은 자신과 자신의 왼손을 분리한다. 그리고 악마의 손에게 나쁜 일을 맡긴다. 그건 악마가 한 일이지 이징 본인이 한 일이 아니니까 괜찮다고 믿으며.


전 세계 인구의 약 10%가 왼손잡이라고 한다. 한국은 어떤가. 2013년 기준 5% 이내. 동아시아 전반으로 왼손잡이에 대한 편견과 미신이 퍼져 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왼손잡이 비율이 낮은 이유다. 지금은 아동의 왼손잡이를 강제로 교정하는 일이 드물어졌지만, 조부모 세대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왼손잡이는 고쳐야 한다’는 인식이 남아 있다.


12일에 개봉한 쩌우스칭 감독의 <왼손잡이 소녀>에도 이 오래된 미신이 등장한다.


이 영화는 ‘왼손은 악마의 손’이라는 미신이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해석되어 오히려 나쁜짓을 벌이게 되는 과정을 통해 ‘정상성’이라는 낡은 규범을 전복시키면서 사회적 하위 계층의 삶을 조명한다. 쩌우스칭 감독과 오랜 기간 협업한 션 베이커의 스타일도 곳곳에서 느껴진다. 베이커가 공동각본·제작·편집을 담당해 특유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하지만 <왼손잡이 소녀>는 쩌우스칭이 메가폰을 잡으며 조금 다른 주제와 배경을 향한다. 노동과 가난, 관광과 문화가 뒤섞인 대만 야시장이라는 다층적 공간을 탁월하게 포착했고, 아이폰으로 촬영된 화면은 현장감과 생생함을 극대화한다. 화려한 색감과 혼잡함 속에서 가족 드라마 서사가 빠르고 명랑하게 흐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되풀이되는 소수자성


 

common-_2_.jpg

 


싱글맘 쉬펀은 야시장에서 국수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첫째 딸 이안은 빈랑을 파는 작은 가게에서 빈랑걸로 일을 한다. (대만에서는 각성 효과를 가진 빈랑 혹은 베틀넛이라는 열매를 씹는 문화가 있다. 이 열매를 파는 가게에서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일하는 젊은 여성 판매원들을 빈랑걸이라 부른다.) 아직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 이징은 엄마의 국수가게 일을 도우며 하루를 보낸다.


싱글맘 쉬펀과 빈랑걸 이안은 모두 정상성의 기준에서 벗어난 존재이다. 그러나 쉬펀의 부모와 자매들은 가족의 명예와 체면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이 강하고, 특히 부모는 왼손잡이 차별과 아들 선호 같은 구시대적 사고를 버리지 못한다.


쉬펀의 가족을 통해 대만 사회의 정상성에 대한 압박이 어떻게 사회적 하층민을 외곽으로 밀어내는지가 보인다. 쉬펀은 가족들 앞에서 쉽사리 고개를 들지 못하고, 이안은 생존을 위해 선택한 직업 때문에 또래 집단에서 무시를 받는다.


심지어 이징이 왼손잡이라니!

 

 


악마의 손에서 신의 손으로


 

common-_3_.jpg

 


왼손으로 밥을 먹는 것을 불결하게 바라보는 할아버지로 인해 3대에 걸쳐 이징은 소수자성과 맞닿은 비정상성을 획득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이징이 정상성의 규범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이를 재기발랄한 놀이로 바꾼다는 점이다.


이징은 악마의 손으로 몰래 물건을 훔친다. 이안이 이를 알아채자 자신이 아니라 악마의 손이 벌인 일이라고 해명하지만, 결국 물건을 되돌리고 사과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 과정에서 이징이 우연히 할머니의 위기를 도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악마의 손은 신의 손이 된다.


이처럼 정상성은 허구적이며 쉽게 뒤집힐 수 있는 개념이다. 이어지는 할머니의 생일 파티 장면에서 이징과 이안의 관계가 밝혀지며, 정상 가족에 대한 사회적 프레임 역시 붕괴된다. 영화의 마지막이 다가올 때까지 둘의 관계를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면 그건 당신 역시 정상 가족에 대한 편견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이안이 이징의 도둑질을 훈계하는 장면이나 이징을 향한 이안의 눈빛에서 그들의 관계를 가늠해볼 수 있다.)

 

 

 

살아 있음의 기쁨


 

common-_1_.jpg

 


이로써 쉬펀, 이안, 이징 세 사람은 한층 더 바깥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영화는 그들의 삶을 불행으로 끝맺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생생한 현재다.


관객은 이들의 불행을 감정적으로 소비할 수 없다. 세 가족이 함께 웃는 장면, 이안과 이징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장면, 마마무 음악에 맞춰 이징이 춤추는 장면. 비루한 삶 속에서도 충만한 순간이 있다. 야시장의 화려함과 시끌벅적함은 오히려 삶의 생동성을 더한다.


이들은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삶이 허락하는 기쁨을 동일하게 누리고 있다.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사회가 말하는 ‘정상성’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을 억압하는 정상성의 구조가 그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왼손잡이 소녀>를 보며 지난 대만 여행이 떠올랐다. 내가 걸었던 타이베이 야시장 거리에도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었겠구나. 영화는 삶에 대한 생생한 포착이다. 그리고 나는 쩌우스칭 감독이 포착한 세계가 무척 마음에 든다.

 

 

 

이하영 (1).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