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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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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고기를 먹어야만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고기가 간절한 사람들이 있다. 구워먹든, 끓여먹든 입으로 들어가는 고기 한 점이 간절해지는 때가 있다. 처음에는 고기를 먹기 위해 노인 3명이 사기극 혹은 도둑질이라고 말할 수 있는 행위들을 하는 걸 보며 ‘와 걸리면 어떡하지?’ ‘안 걸렸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는 모순적인 내가 있지만 영화가 흘러갈수록 그들이 고기를 먹으러 가는 길, 먹으며 나누는 대화, 돌아오는 길 까지 모두 포함된 그 시간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형준과 우식, 화진은 같은 동네에 사는 독거노인들이다. 폐지를 팔거나 길에서 채소를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가족이 있기는 하지만 떨어져 살거나 연락이 잘 되지 않고, 그래서 법적인 지원을 받기도 힘들다. 훔친 소고기로 소고기뭇국을 끓여 먹은 세 명의 노인은 구워 먹는 소고기를 먹자는 우식의 말에 의심없이 그를 따라 나가고, 양껏 고기를 먹은 후에 사실은 돈이 없으니 이 가게를 몰래 빠져나가자는 말을 듣게 된다. 무사히 가게를 빠져나온 세명은 정신없이 달려나오고 화진은 우식에게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냐며 화를 내지만 ‘재미있지 않았냐’는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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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먹는 것도, 나쁜 짓을 저지르고 헐레벌떡 도망을 치는 것도 모두 아주 오랜만의 일이었을 그들에게 ‘소고기 무전취식’은 점점 대담해진다. 형준의 집에 있던 고급스러운 옷을 벗어두고 화장실을 가는 척, 담배를 피우는 척, 부부인 척하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한다. 무전취식이 익숙해지며 그들은 술을 곁들이고, 가족들에 대해, 자신이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게 된다.

 

고기를 공짜로 먹는 것에서 시작한 일이 어느새 그들에게 묘한 소속감을 심어줬을 무렵, 결국 꼬리를 잡힌 그들은 셋이 함께 다니며 조금은 뒤로 미뤄두었던 원래의 일상을 맞닥뜨린다. 교재값으로 돈을 받아간 화진의 손자가 휴학 후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것, 우식이 암 판정을 받은 환자였던 것. 즐겁게 고기를 먹으러 다니느라 잠깐 미뤄두고 있던 일들.

 

구워먹는 고기는 늘 2인분부터 주문이 가능하고, 옆테이블들은 모두 혼자가 아니고, 그 위에는 세상 사는 이야기들이 떠다닌다. 각자의 가족, 친구, 직장 이야기들. 대화를 나누며 구워먹는 고기에는 고기 자체의 영양가 말고도 소속감이 주는 따듯함이 섞여 있다.


이들의 범죄행위를 지켜보며 들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던 건 일종의 동정이기도, 일종의 두려움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외된 노인에 대한 안타까움,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동정심, 독거노인을 지원하지 못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분노, 그리고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데에서 오는 두려움. 돌봄이 부재한 노인들을 보고 있으면 나의 노년에 대한 막막함이 들기도 한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볼 때 흔히 느껴지는 감정들이다. 무전취식이 점차 대담해지며 결국은 덜미를 잡힌 세명은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서로를 향한 시선들과 빚을 잔뜩 진 채로. 이들은 서로 더이상 타인이 아니고, 그래서 서로의 일상을 걱정하고 궁금해한다. 남으로 남겨질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는 고기가 없이도 따듯함이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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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다른 노인들이 사는 것처럼 조용히, 찌그러져서 그렇게 살기를 저버린다. 사회는 노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데스크 앞에서 담당자에게 화를 내는 노인들, 키오스크 앞에서 큰 소리로 난장을 부리는 노인들, 불편 부당함을 소리치는 노인들. 노인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까닭은 우리에게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필터가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무시하는 시선과 또 저러네, 라고 지나치는 순간들이 쌓여 노인들의 욕구와 욕망은 점차 흐려진다. 그렇게 살기를 거부하고 꽤나 떠들썩한 달리기를 하는 이 3명의 웃음은 무척 해맑다.

 

무전취식이 덜미를 잡히고, 우식이 보증금을 빼서 벌금을 갚고, 키우던 고양이를 맡아주고, 찾아오는 사람 없는 우식의 장례식에서 함께 자리를 지켜주며 일상은 똑같이 흘러간다.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에게는 이제 시선과 시간이 남아있다. 서로를 향한 시선과 인간으로서 잊어가던 존엄함을 다시 느끼고 새롭게 부여받은 시간들. 손주와 포옹을 하고, 둘이 남아서도 안부를 물을 온기가 더해진 시선과 시간들. 슬프지만 따듯하고, 먹먹하지만 산뜻하다.

 

이 영화를 세계의 주인을 관람한 다음 날 보았다. 이틀간의 영화가 ‘극장을 좋아하는 나’를 잊지 않게 해주었다. 사람과 고기는 현재 누적관객수 2.9만명을 기록했다. 아트하우스 영화의 미래가 어둡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스크린이 올라가는 시간이 아쉬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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