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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음을 음표로 쓰고, 글로 쓰고, 목소리로 씁니다." - 최유리

 

최유리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그녀의 노래를 통해 '위로'를 받고 힘든 일을 '극복' 해냈다는 따뜻한 말. 최유리의 노래가 많은 사람들을 달래고 울리는 이유는 단순히 그녀의 포근한 음색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노래 가사엔 누구보다 따뜻하고 단단한 마음씨가 가득하다.

 

'숲'이라는 노래가 사람들의 입을 통해 흔히 말하는 '히트곡'이 되었을 때, 나는 차가운 이어폰으로 전해 듣는 것이 아닌 따뜻한 그녀의 눈빛과 목소리로 귀에 담고 싶다 생각했다.

 

어느덧 데뷔 5년 차인 최유리의 콘서트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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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물들이는 목소리


 

최유리의 콘서트를 처음 다녀온 건 2024년 '우리의 언어' 콘서트 때였다. 2025년과 비슷한 11월 초에 진행되었고, 위치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었다. 당시에는 더운 날씨 덕인지 가을이 꽤나 오래 지속되었다. 쾌청한 하늘 아래 종로구 일대가 노랗게 물든 길을 걸으며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기억에 담았다.

 

한복을 입고 광화문 앞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 야외 카페에서 여유로운 주말을 보내는 평안한 사람들, 은행나무 아래서 바람 부는 타이밍에 맞춰 사진을 찍는 커플들까지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콘서트 날이였다.

 

그래서인지 그날의 콘서트를 생각하면 '가을'이 바로 생각났는데, 이번 콘서트도 그랬다. 2025년 콘서트는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평화의 전당에서 진행되었다. 아쉽게도 단풍이나 은행이 만연히 물들지는 않았지만, 쾌청한 가을 공기 아래 오랜만에 캠퍼스 언덕을 오르고 있으니 종아리는 당겨도 기분 좋은 대학 시절의 기분으로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신기하게도 언덕을 오르니, 평화의 전당 앞은 따스한 햇살 아래 노란 은행잎들이 관객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여행을 갈 때 여행지 특유의 향을 뿌리면 그 향을 맡을 때마다 여행의 기억이 떠오른다고 했던가, 나에겐 매년 돌아올 가을의 공기와 은행과 단풍의 색들이 최유리의 따뜻한 음색을 떠올리게 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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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곁을 내어주는 노래


 

콘서트 중간에 나온 VCR 영상에선 남녀노소 상관없이 각 나이대 별 인터뷰 내용이 인상 깊었다. 약 4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인터뷰했다 하는데 인생에 있어 후회하는 점, 바라는 점 등은 모두 가족이나 지인을 향한 사랑을 대상으로 한 대답이 공통적으로 나왔다. 기억에 남는 대답 중 하나는 "사랑한다는 표현을 어떻게 하고 싶냐"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이에 최유리가 "그냥 옆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을 것 같다."라고 하는 말이었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나의 시간을 너와 함께 쓰고 싶다는 행동의 표현만으로도 함께 있는 공간의 온도가 달라짐을 느끼는 게 최유리의 사랑은 아니었을까. 그래서일까, 10월에 발매한 앨범 이름과 이번 콘서트의 이름은 '머무름' 이었다. 앨범 글 중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다.


"여전히 머물러 있는, 혹은 어떠한 위치에 머물렀던 때를 회상하는 앨범이 될 것 같습니다.

...

두려움, 사랑, 이별, 자유, 그리고 기억.

이것들이 만들어 낸 수많은 감정이 이번 앨범에 담겨 있을 거라 믿습니다.

훗날 만들어질 두 번째 머무름도 비슷하려나요?"

- 최유리 <머무름, 하나> 앨범 소개글 중


감정을 기억하고 머물러 있다는 것. 그 행동은 어쩌면 최유리에게 사랑을 기억하려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사랑은 관객들을 만날 때 더욱 빛이 난다. 노래도 '쓴다'라고 표현할 만큼 한자 한자 눌러 최선을 다해 노래하고, 관객들이 그 노래에 듬뿍 빠져있을 수 있도록 콘서트가 진행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오프닝 부분인데, 콘서트 시작 전 마치 숲에서 들리는 듯한 새소리들이 은은하게 깔려있었다. 그 뒤에 나온 첫 노래는 <머무름, 하나>의 첫 곡인 <언덕너머>였고, 마치 최유리가 언덕을 올라 관객들을 만나러 오는 듯하게 무대 장치가 되어 있었다.


"누가 보이네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나는 언덕을 다 지나가

거긴 뭐가 있어?"

- 최유리 <언덕너머> 노래 중


언덕 너머에 자신의 노래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 꽤나 감동적인 오프닝 무대였다.

 

또, 이번 앨범 타이틀곡인 <땅과 하늘 사이> 가사 중엔 이런 구절이 있다.


"날자 뭣 모르고 뛰던 때처럼

날자 무서운 게 없었던 때처럼

...

이제야 숨 쉬는 듯해"

- 최유리 <땅과 하늘 사이> 노래 중


노래에 맞춰 새장 안에만 있던 새가 날아오르는 일러스트 영상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크레파스로 그린 것 같은 따뜻한 색감의 분홍색 새가 파란 하늘을 가로질러 갈수록 영상을 보는 내가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콘서트에서 눈물을 흘리곤 한다.(그중 하나는 필자이기도 하다.) 감정이 메말라 있는 요즘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럴까 고민을 하다 보니, 온전히 관객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사를 계속 화면 띄우거나, 관객들이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 "떼창"을 유도하는 형식의 콘서트들은 하나의 감정을 공유하고 가수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반대로 최유리의 콘서트는 간접적인 이미지나 영상들, 조명들로 담담하게 노래의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관객들은 자신의 이야기로 노래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몰입을 잘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유리식의 공감은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통하는 힘이 있다. 그게 그녀가 말하는 곁에 머묾으로써의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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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마무리될 때쯤 최유리는 오래 보는 사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유난히 내성적인 그녀지만 작년 콘서트에 비해 조금은 여유로워지고, 무대 위에서 편안해진 모습에 음악사는 사람으로서의 사랑에 대한 욕심이 보였다. 최유리의 팬으로서 욕심 많은 사랑은 언제나 환영이다. 앞으로도 그녀만의 사랑 표현이 기대되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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