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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유대인이면서 독일어를 쓰고, 프라하에 살았던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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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당시 프라하의 기득권층인 독일인에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핍박받고, 같은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국가건설 운동(시온주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배척받았다.

 

게다가 아버지에 의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독일어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그가 어떠한 집단적 정체성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두 개의 정체성 사이의 조화와 안정감은커녕 불안과 혼란만을 느꼈을 것을 추정하게 한다.

 

그의 존재는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그리고 어느 곳 하나 선택하지 못하게 된 소외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러나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지 못한 것은 오직 타인과 외부에 의해서만이 아닌 카프카 자신의 신념과 신조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는 점(시온주의 반대)과, 아버지에 대한 복종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으나 일말의 반항을 이루었다는 점을 미루어보아 그는 ‘그의 존재 확립’을 향해 열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카프카의 존재를 향한 열망은 카프카가 고질적으로 가지고 있던 ‘소외’와 ‘존재의 비확실성’, ‘부조리한 사회’를 배경으로 등장하게 되며, 따라서 작품 전체의 분위기는 그가 겪었던 인간 내면의 불안과 혼란, 개인의 소외, 존재의 희미함이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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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관람한 카프카의 ‘소송’ 또한 현대인의 불안과 삶의 부조리를 바탕으로 하여 그것들을 극복하려는 존재에 대한 카프카의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특별히 그 매체가 ‘연극’이라는 점에서 글과는 색다른 더욱 감각적이고 실제적인 묘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책상 몇 개, 의자 몇 개로 이루어진 단출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동작과 마임 하나하나, 빛과 어둠, 그림자, 음악, 얽히고설킨 듯한 대화 방식 등을 통해 ‘소송’을 입체적이고 상징적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계속해서 반복되는 배우들의 동작은 매번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각박하고 틀에 갇힌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하였고, 법 안에 들어가는 문을 흰 색의 빛이 비추는 것을 통해 법 안의 존재에 대한 신성성이나 위엄을 시각적이고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무대장치와 배우들을 통해 인물들이 처한 기괴한 상황들의 창조적 표현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연극 ‘카프카의 소송’은 단순히 무대장치와 배우들의 연기가 주는 감화에서 나아가 원작 못지않은 작품성까지 띠고 있다. 연극은 일반적으로 이야기가 있는 다른 연극과 큰 차이를 보이는데 먼저 대화보다는 동작이 많고, 구체적 표현보다는 상징적 표현을 사용한다. 이야기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연극이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카프카의 소송’은 괴짜같으면서도 천재적인 작품이라고 느껴진다.

 

특히 ‘카프카의 소송’은 특별한 서사구조나 확실한 해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존재, 법과 죄, 권력, 욕망, 신념 등 A부터 Z까지에 대해 사색하게 하며 작품에 몰입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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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의 소송’은 파편의 연속처럼 느껴진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한 장면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야기의 흐름을 읽어내기 어렵다. 무엇보다 인물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K가 문지기에게 질문을 하면 문지기는 대답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질문에 대한 속 시원한 답변이 아니다. 재담이나 경고와 같은 겉돌기만 하는 말들일 뿐이다. 이러한 겉돌기만 하는 대화 방식이 이야기의 서사 파악에 장애물로 작용한다. 그래서 새로운 등장인물이 출현해도, 사건의 큰 흐름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들의 대화는 크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소송’의 서사는 온통 ‘소송 중’인 것일 뿐이다. 등장인물의 순서를 바꿔도 이야기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연극관람 후 ‘카프카의 소송’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분 부분의 기억만이 존재한다. 어떠한 큰 그림이라던가, 큰 흐름은 처음 - 중간 - 결말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꿈과 비슷하다. 꿈을 꾸고 나면, 우리의 기억은 파편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실 꿈속에서 등장인물은 자주 바뀌는데 눈치채지 못할 때도 있다. 꿈속에서는 전혀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꿈속에서 ‘나’는 K처럼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내 삶을 살아갈 뿐이다. 상황이 얼마나 이상한지는 알아채지 못한다. K가 문지기와 대화를 나누고 이상한 변호사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처럼 말이다. 대화도 희미하게 간간이 기억날 뿐이다.

 

그렇다. ‘카프카의 소송’은 꿈과 비슷하다. 실제로, 카프카의 작품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전문가들은 카프카의 작품이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무엇보다 현실처럼 느껴지지만 비현실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설정한다는 것이 가장 꿈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소송’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사회에서 수많은 소송이 일어나고 있고, 우리는 소송에 익숙하다. 그러나, 원고를 모르는 소송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폭력적으로 피고를 대하는 소송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존재할 수 없다. 문지기도 없다.

 

그런데 그렇게 비현실적이고 무식한, 말도 안 되는 테마를 통해 우리는 사색에 잠기게 된다. 그것은 비현실 속의 현실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상징체계이고, 이 상징체계가 ‘카프카의 소송’이 진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카프카의 소송’의 이야기는 K가 소송을 끝낼 수 있기까지의 과정이 아니다. 문지기가 하나의 이야기이고, 문이 또 하나의 이야기, 법원을 청소하는 여자가 또 하나의 이야기이다. 문지기가 지키고 있는 법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법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K를 구속하고 억압하는 보이지 않는 권력은 무엇인가? 실체는 없는 것인가?

 

바로 이러한 사색들이 ‘카프카의 소송’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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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사색한 결과, 나만의 ‘카프카의 소송’은 이러하다.

 

법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고, 모두의 이익을 위해 이용되어야 할 것이지만, 사실 법에 평등은 없다.

 

‘사각지대’라는 말이 있듯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법을 잘 마주치지 않는다.

 

요제프K는 너무나 평범하기 때문에, 그는 기득권층이 보기에 법을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그리고 K는 현대사회에 잘 적응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은 평민대표였으나, 그는 아무 죄 없이 공적 권력, 국가권력에 의해 구속되었다. 카프카는 절대 그 이유를 설명하지도, 언급하지도 않았다.

 

내 생각에, 그가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평민 한 명의 권리 주장은 파리 한 마리가 윙윙거리는 것과 똑같이 들릴 수도 있다. 감히 자신들만이 누릴 수 있는 법의 문 앞에 K라는 평범하고 또 평범한 시민이 서 있다는 것이 불쾌할 뿐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 뿐만으로 K를 소송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소송 당한 K가 자신의 신념을 버려가며 끝을 희망하고 결국 원고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끝나 버리는 것은 권력 있는 자들에 의해 짜인 판, 권력가들 사이의 게임에 감히 참여하겠다고 한 시민에 대한 응징이다. 어느 누구와도 팀이 아닌 시민이 애걸복걸하여도 받아 주지 않는 힘 있는 자들의 무자비함이다.

 

결국 프란츠 카프카는 '소송'을 통하여 죄 없는 시민이 희생되는 이 세계의 부조리, 그래도 이 세계를 살아가야 하는 아이러니한 삶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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