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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음악 취향은 언제나 불가해하다.

 

처음에는 가사도 모르고 단순히 좋아서 듣던 노래들이 돌아보면 비슷한 질문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아마도 사람의 마음은, 이해보다 먼저 공명하는 주파수를 알고 있는 것 같다.

 

아래에 소개할 세 곡은 이질적일 수 있지만, 그 결속에서 음악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한 인간의 좌절과 우울함에 대해, 자아의 태동에 대해 말한다. 무기력함을 이겨내고자 하는 억척스러운 자아의 폭력적인 순환이 음악으로 변환된다.

 

 

 

秋山黄色 (Kiro Akiyama), Caffeine


 

 

 

‘Caffeine’은 불면의 리듬으로 시작한다. 몸은 지쳐가지만 의식은 꺼지지 않는다.

 

첫 기타 리프부터 내면을 건드리듯 촘촘하게 이어지고, 그 위로 투명하고 담백한 보컬이 천천히 얹힌다. 꾹꾹 눌러 담다가 이내 쏟아버린 레모네이드처럼, 그의 목소리는 체념 같기도 애원 같기도 하다.

 

シンクにレモネード 流したはずの夜が (싱크대에 레모네이드를 흘렸던 밤이)

空っぽの僕を笑うような疼きで瞳が冷える (텅 빈 나를 비웃는 듯한 아픔에 눈이 시리고)

 

깨어 있으려는 의지가 아니라, 잠들 수 없는 절망을 말한다.

 

싱크대에 흘린 레모네이드는 단맛의 잔재다. 텅 빈 마음속에 남은 신맛이 다시 입안으로 치밀어 오른다. ‘카페인’은 깨어 있음의 상징이지만, 그건 잠들 수 없는 절망의 상태이기도 하다. 어두운 방 안에서 아키야마를 둘러싼 노란색 조각들이 춤을 춘다. 감정이 소음처럼 울리는 도시의 밤을 닮았다.

 

그래서 화자는 스스로 자아를 통제하지 못한 채 각성 상태에 머문다. 세상은 멀리 흐르고, 감정은 점점 탁해진다. 도망치고 싶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밤, 애꿎은 감정을 흘려버리는 막막함이 이상하게 위로된다. “그래, 나도 아직 깨어 있구나”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Alexandros], Coffee Float (feat. hard life)


 


 

 

‘Coffee Float’는 낮의 리듬을 닮았다. 일상적인 날에, 우산을 들고 바람을 맞는다.

 

기타는 따뜻하고 베이스는 묵직하다. 드럼이 일정하게 청각을 두드리고, 리듬은 묘하게 권태롭다. 마치 현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한 착각을 준다. 커피 위에 녹아드는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달지만, 어딘가 쓸쓸하다.

 

Why spend more days in this town? (왜 이 도시에 더 머물러야 하지?)

Crown, you always talking like a know-it-all (너는 늘 모든 걸 아는 척하잖아)

The question is "what i want" (질문은 결국 ‘내가 뭘 원하는가’야)

Lets get out of here to fix the shit upon (여길 떠나자, 엉망이 된 걸 고치기 위해)

 

질문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멈춰있던 자아는 이제야 흘러가기 시작한다. 그 흐름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지만, 염원을 담는다.

 

It's just the way I choose to live, love (그냥 내가 살아가고 사랑을 택하는 방식일 뿐이야)

I don't let anybody touch my art (누구에게도 내 예술을 건드리게 하지 않아)

僕らの時間は獨創 (우리의 시간은 우리만의 것이니)

他と一緒にしないで (다른 사람과 섞이지 마)

 

무엇이 옳은지 몰라도, 일단은 살아 있다는 일 자체로 하루를 버텨낸다. 불안의 진폭이 잦아들고, 현실과 타협하는 순간의 온도가 느껴진다.

 

버스 창밖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내릴 곳이 정해지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 오후가 된다. 무기력한 자유를 느낀다.

 

 

 

優里(Yuuri), 花鳥風月


 

 

 

스트링이 ‘가을’이라는 계절에 못을 박는다. 힘 있는 유우리의 보컬이 위로 올라간다.

 

人をかき分け前に進み (사람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

奪い合うのに疲れる日々 (쟁취하며 지쳐가는 나날들)

椅子取りゲーム残されてる (의자 뺐기 게임에 남겨져 있어)

 

경쟁은 지금을 사는 우리의 초상이다. 쟁취와 피로, 그 끝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사람을 위한 노래다. 제목의 화조풍월(꽃과 새, 바람과 달)은 인간의 욕망이나 상처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 안에서 오히려 존재의 본질을 비춘다.

 

嗚呼, 息苦しいよな 呼吸を我慢して (아아, 버거운 호흡을 참고)

嗚呼, せめて叫ばせて このままじゃいられない (아아, 소리 지를 수 있게 해줘,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共に叫べよ (함께 외치자)

選んできた自分で (우리가 스스로 선택해 온 길 위에서)

 

구간마다 멈춰서 함께 소리친다. 문득 이대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방황과 혼란에 대해서 털어놓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자아를 잃었다고 말하는 것도, 갈림길에서 망설이는 너도, 결국은 본인의 모습을 겹겹이 쌓아 올린 것임을 일깨운다.

 

세 곡의 리듬은 다르지만 결국 같은 맥박 위에서 뛴다. 불면의 밤에서 시작된 불안이, 낮의 부유를 지나, 저녁의 하늘로 스며들 듯 잦아드는 과정이다. 그건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반복되는 리듬이자,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계속 이어 나가는 박동 같다.

 

가을은 도망치고 싶은 계절이다. 차곡차곡 담아 둔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돌아본다. 어쩌면 난 줄곧 무언가로부터 도망쳐 나를 찾고 싶었을지 모른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늦은 것 같고, 끝내기엔 아직 남은 것 같은 시간. 그사이의 공기 속에서 자꾸만 ‘나’라는 존재를 찾는다.

 

언어는 몰라도, 음악은 마음의 방향을 안다. 사랑이나 위로보다, 삶이나 자아에 대해서 묻는 노래들이 있다. 노래는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주지 않지만, 그 질문을 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조금 더 살아 있게 된다.

 

결국 취향이란, 자신이 가장 오래 붙잡고 있는 질문의 흔적이다.

 

그리고 이 세 곡은 그 질문을, 도망치고 싶은 마음마저 살아 있음의 증거로 바꿔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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