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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책을 좋아하지만 많이 읽지는 않고, 을유문화사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여 신간도 파악하지만 정작 읽은 책은 별로 없는, 그런 예비의 예비의 예비 독자입니다. 제가 갑자기 어느 이름 모를 을유문화사 직원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이유는 선생님께 감사와 사과의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많이 당황스러우시겠지만 사연이 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2025년 6월 22일 일요일, 출판계에 몸담으신 분께는 익숙한 숫자이겠지요. 이날은 바로 서울국제도서전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저도 이날 1시 반쯤, 도서전에 방문했고요. 반쯤은 인파를 피해, 반쯤은 인파에 휩쓸려 처음 도착한 곳이 을유문화사 부스였습니다. 시간이 꽤 지나 가물가물합니다만 무제 출판사의 대표이자 배우이신 박정민 님이 관심을 가지셨다는 책이 그 입구에서 인기몰이를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줄 서서 책을 구경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 책을 보다가 말고 결제 데스크 옆에 있는 책장 앞으로 이동했습니다. 절대 홍대병 때문이 아닙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등장하셨습니다. 옷이나 화장품을 파는 곳에서 말을 걸어오는 직원은 저에게 부담을 안겨줄 뿐이지만, 서점이나 도서전에서의 직원은 어쩐지 반가움이 더 큽니다. 부담이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에게 부담과 반가움과 인사를 한 번에 건네신 선생님은 제게 다른 책을 들어 보이셨습니다. 새빨간 표지를 가진 그 책은, 마틴 맥도나의 <필로우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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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제게 ‘영업’을 하셨습니다. 영업의 본디 뜻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 또는 그런 행위’라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영업은 다른 의미입니다. 아시겠지만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자고 설득하는 행위 또한 영업이라고 부르죠. 재화나 서비스가 아닌 ‘덕심’을 파는 행위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선생님의 영업은 후자처럼 느껴졌습니다. 물론 선생님이 출판사의 직원이신 만큼 그 본디 뜻에 따른 영업도 맞겠지만 말입니다. 요지는, 출판사 직원의 영업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덕심이라고 느껴질 만큼, 그만큼 <필로우맨>이 얼마나 재밌는지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눈이 반짝였다는 것입니다.


영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옷이나 화장품 가게에서 말을 걸어오는 이들과, 책 가게에서 말을 걸어오는 이들이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를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저는 전자의 경우에는 영업을 당하지 않기 위해 방어적으로 굴지만, 후자의 경우에서는 영업을 당하겠다는 마음으로, 영업 사원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갑니다. 오히려 성공적인 영업을 당하지 않으면 아쉬운 마음이 들 정도로요. 그래서 선생님의 영업에도 저는 당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실 것 같지는 않지만, 저는 그날 책을 사지 않았습니다. 진심으로 유감입니다.


변명하자면 그때 저도 분명 책이 흥미로웠습니다. 다만, <필로우맨>이 일반적인 소설이 아니라 희곡이었다는 점이 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어떤 아동 희곡을 통해, 제가 희곡을 감당할 그릇이 아님을 일찌감치 깨달았습니다. 제가 일반 소설이 아닌 대본 형식의 글, 그러니까 희곡 같은 것들은 집중이 안 돼 읽지 못한다고 하자, 선생님은 당신도 원래는 그러한데, 이 책은 너무 재밌어서 후루룩 읽고 말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조금 더 흥미가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 <이니셰린의 밴시>가 작가 설명에 적힌 것도 한몫했습니다. 그 영화를 본 것은 아니지만 국내 개봉한 것은 알고 있었고, 그 이름을 보자 이것이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희곡이라는 점이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감상과 합쳐져, 궁금증이 조금 커졌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저는 그날 책을 사지 않았습니다. 다시 한번, 유감입니다.


두 번째 변명을 하자면, 당시 을유문화사는 제가 도서전에 입장하자마자 처음으로 방문한 부스라는 점입니다. 도서전에 입장한 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지갑을 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도서전에서 쓸 금액을 정해놓았고, 앞으로 어떤 유혹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벌써 굴복할 수 없었습니다. 이 마음은 선생님께서도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도서전 구경을 한바탕 한 뒤 다시 을유문화사에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서전의 마지막 날은 다른 날보다 일찍 마감한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언제나처럼 7시까지인 줄 알고 있었는데, 4시 30분부터 어수선해지는 장내를 지켜보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온몸으로 느끼다가, 45분이 넘어서야 일요일에는 도서전이 5시에 마무리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못 본 부스를 방문하고, 을유문화사에는 다시 돌아가지 못한 채, 도서전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책을 사지 않았습니다. 또 한 번 더, 유감입니다.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마감 시간을 제대로 알고 있었어도, 책이 희곡 형식이 아니었어도, 그 책을 도서전에서 사지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하면 이번 도서전에서 저는 독립출판물 위주로 돈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리했기 때문에 제가 정한 한도액은 책마을 부스에서 이미 초과한 상태였기 때문이지요.


이대로 글을 마친다면 이것은 선생님께 닿을 수 없는, 닿아서는 안 되는 편지가 되었을 겁니다. 그저 선생님을 약 올리는 편지가 되었을 테니까요. 애초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편지입니다. 쓸 이유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편지는 선생님께 닿을지 안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모두 <필로우맨>과의 두 번째 조우 덕입니다.

 

***


도서전으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7월의 어느 날, 한 도서관에서 그 책을 다시 만났습니다. 강렬한 붉은색이긴 하지만 두께가 얇은 친구입니다. 그러다 보니 책장에 꽂혀 있었다면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을 텐데, 그 책은 북 카트에 정면으로 누워 저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에덴동산의 사과처럼… 그래서 저는 못 이기는 척 그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독서 모임의 책을 읽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다른 책이 더 탐스러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서 모임 책도 분명 제가 읽고 싶어서 고른 것인데 왜 항상 이 모양일까요?


책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야기는 취조실에서 영문 모를 소리를 하며 급하게 시작합니다. 본인이 왜 잡혀 왔는지 모르는 주인공의 혼란을 관객 또는 독자도 그대로 느끼게 하려는 목적이겠지만, 저는 집중력이 부족해 이런 장치가 장애물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과의 몇 초 남짓한 추억을 쥐어짜 내며 조금 더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왜 가장 중요한 말을 해주지 않으셨나요? 이 희곡은 잔혹동화 같은 거라고 한 마디만 해주셨더라면 저는 을유문화사 부스에 더 오래 머물렀을 텐데 말입니다. 물론 주인공이 잔혹동화 작가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는 흥미롭다고만 생각했지, 대단한 호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그런, 자극적이기만 한 잔혹동화는 인터넷에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도서관 책을 완독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 책을 내 책장에 꽂아놓고 싶다 생각하게 된 것은 이야기가 더 진행된 후입니다.


책을 읽으며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느낀 적도 많고, ‘만화의 한 컷이 상상된다’고 느낀 적도 많습니다. 하지만 ‘연극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고 느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물론 연극 형식의 글을 읽었으니 연극이 그려지는 것도 맞겠지요. 그래도 연극 매체 특유의 제한성, 그리고 그 제한성을 극복하기 위한 특유의 유머가 특히나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다 읽고 나서도요. 특히 액자식 구성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무대에 오르는 부분을 읽을 때는 이걸 진짜 연극으로 보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지요.


액자 속에 남아 있어야 할 이야기가 밖으로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납작해졌다가 불룩해졌다가 하는 동안, 차원의 벽이 자꾸만 흐려지고 필로우맨도 덩달아 그 벽을 하나씩 하나씩 넘어왔습니다. 어쩌면 필로우맨이 우리의 차원에도 존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필로우맨의 달콤함, 아니 포근함에 홀리지 않기 위해, 혹은 모른 척 홀리더라도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명확히 인지하고 그 각오를 해두기 위해, <필로우맨>을 집에 한 권 두기로 했습니다. 성경을 집에 구비해두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우리 집에는 성경이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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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통에 지쳐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필로우맨. 이 고통을 겪기 전, 더 어렸을 때로 돌아가 죽자고 부추기는 필로우맨.


또 '영업'이 떠오릅니다. 필로우맨도 실은 영업을 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요. 심지어는 영리적 목적을 위한 영업도 아닙니다. 몬스터 주식 회사의 몬스터들과 달리 필로우맨은 굳이 실적을 신경 쓰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덕심을 파는 영업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렵긴 합니다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난 진심으로 움직인다는 사실만큼은 필로우맨도 다른 덕후들에 뒤지지 않는 듯합니다. 마치 선생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필로우맨과 선생님의 차이라면, 선생님은 ‘내가 해봤는데 좋더라’를 어필하는 반면 필로우맨은 본인이 하지 못한 것을 영업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해봤는데 좋더라’를 강조하는 것은 사실 모든 영업직과 덕후의 필수 덕목이겠지요. 다만 필로우맨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지 못합니다. 본인이 직접 경험했다면 필로우맨은 필로우맨이 아니라 필로우보이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텐데 그렇지 않잖습니까. 결국에는 필로우보이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여하튼 영업을 직접 하고 다닌 사람은 필로우맨입니다.


굳이 필로우맨을 악역 취급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안타깝습니다. 사기꾼이라고 부르기에는 그 본인은 거짓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좋은 것을 추천하고 싶다는 그 마음만은 진심이었습니다. 그 ‘좋은 것’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아 진짜 좋은지 아닌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지만,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더 진심으로 영업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기도 합니다. 때로는 사실보다 상상이 더 예쁘니까요. 아, 때로가 아니라 대부분일지도?


그런데 여기까지 쓰고 나니 필로우맨은 사기꾼이 맞는 것 같군요… 그것도 '정말 사기를 치려면 자기자신까지 속일 줄 알아야 한다' 따위의 말을 명언이라고 남길 것 같은 재능 있는 사기꾼. 이것도 유감입니다.


여하튼 저는 그날 도서관에서 책을 다 읽었습니다. 재독하고 싶은 마음, 소장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선생님께 감사하는 마음, 사과하는 마음까지 합치니 만 육천 원이 나와서 책을 샀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영업이 실패로 끝나지 않았음을, 나름 성공적이었음을 알리는 편지를 씁니다. 이 책은 제 상상보다 훨씬 더 재밌었습니다. 상상보다 사실이 더 예쁜, 예외적인 경우를 선생님 덕분에 만났고, 덕분에 좋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니 만약 그날 제가 영업을 당하지 않아 혹여 실망이나 노여움을 느끼셨다면 이제는 모두 풀어주시길 바라며,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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