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사라사테는 집시의 선율을 기반으로 명곡을 만들었다. 지고이네르바이젠은 정처 없이 떠도는 집시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듯하다. 잡음과 함께 등장한 집시의 역마살은 영화가 의미에서 벗어나 떠도는 이유를 간접적으로 설명한다. 바닷가에 한 여자의 시체가 떠밀려 내려오고, 어부들은 옥수수를 먹는 수상한 자를 의심한다. 카메라는 군중에게 밀려, 시신 맡에서 떨어지는 타인을 따라서 이동한다. 나아가 여인의 시체와 게의 이미지가 합일된다. 게는 점점 화면 바깥으로 튀어나올 듯 확대된다. 아오치가 나카사고을 도와준 이후, 게의 의미가 화면 내부로 종속된다. 만약 나카사고의 대사가 아니었더라면, 무의식적인 이미지를 보여줄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이준은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내레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결코 프레임 바깥의 관객에게 건네는 보이스 오버가 아니다. 오히려 세이준에게 독백은 초현실적인 극의 서사에서 어느 정도 길이 있음을 알려준다. 내레이션은 장단점이 명확하다. 영화 내 현실을 설명할 때 효과적이지만, 몰입의 측면에서는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다. 다만 세이준의 영화에서는 관객에게 설명을 전제해야만 한다. 그의 이미지는 쇼트와 쇼트 사이의 생략부터, 의도적으로 생략하지 않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나아가 갑자기 끼어든 인물들에게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선택지로 사용된다.

 

 

[꾸미기]eee20240402212333_mcaopngy[크기변환].jpg

 

 

완벽한 타인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은 세이준의 영화를 더욱 기이하게 만드는 원인일 것이다. <지고이네르바이젠>에서는 곡을 연주하며 구걸하는 시각장애인들이 그 역할을 맡는다. 아오치는 동료 교수였던 나카사고의 살인 용의자 혐의를 풀어주고, 같이 여관에 머무른다. 아오치와 나카사고는 게이샤인 코이네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 바닷가에서부터 동행한 구걸은 극의 초반 내내 주요 인물들을 따라다녔다. 바닷가에서도, 여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오치는 그들을 아버지와 두 자녀라고 말하지만, 코이네는 곧 그들이 부부이며, 젊은 여자와 남자는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넌지시 말해준다. 이 대화를 통해서, 완전한 타인은 의미가 부여된다. 나카사고가 죽음에 이르게 한 여자, 혹은 그 이후의 감정착취적 치정극의 비유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감정착취적 비극은 멜로 드라마 장르의 중심 주제이다. 삼각관계는 비극을 만들기 위한 기초이며, 일종의 정해진 규칙과도 같다. 감정착취의 비유로도 사용되듯, 시각장애인들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끝없이 등장한다. 여관에서 구걸을 끝내도, 아오치가 떠나는 역 안에서도 그들은 감정착취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맨 앞에서 걷는 고령의 선도자가 아니면, 길을 걸을 수 없다. 하지만 이미 감정의 방향성이 모호해지고, 곧 한 명의 여자를 둔 결투를 벌인다. 여자는 바다의 지평선을 따라 사라진다. 나아가 아오치와 나카사고 사이의 여성들이 세 명의 걸립꾼이 이뤄놓은 평면 안에 존재하게 된다. 게이샤였던 코이네, 나카사고의 아내인 소고, 아오치의 아내까지.

 

 

[꾸미기]eee20240402212547_xbxomrtt[크기변환].jpg

 

 

물론 아오치가 나카사고라는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아오치를 외부의 시선 역할만이 부여되었다면, 쇼트 사이에 삽입되는 환상들은 공허해지고 만다. 대표적으로 나카사고의 아내인 소노다. 소노는 아오치와 나카사고의 사이에 낀 코이네와 똑 닮은 여성이다. 아오치는 나카사고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그의 집으로 찾아간다. 코이네와 똑같이 생긴 외모를 보고, 아오치는 흠칫 놀란다. 나아가 소노는 아오치에게 외로움을 표출한다. 마치 여우에 홀리는 듯한 환상성은 시각적으로 발현되어, 외부의 공간에서 걸립꾼 세 명의 모습을 갑작스레 보여준다.

 

이는 아오치와 나카사고의 관계가 대응 관계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타인의 개입으로 맺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소노가 죽은 뒤, 코이네를 유모로 채용하면서 삼각관계를 다시 형성한다. 다만 나카사고는 다시 집시의 선율을 따라 이동한다. 곧 타지에서 나카사고가 죽었다는 소식이 당도한다. 나카사고의 죽음으로 아오치와 나카사고가 맺던 삼각관계가 파괴된 듯 보인다. 하지만 나카사고의 관계 부재를 딸이 대신하게 된다.

 

관계가 파괴된 듯 보여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삼각형은 결국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관계를 메꾸었던 나카사고의 딸은 생전에 가지고 있던 유품을 요구하고, 코이네는 나카사고의 물건에 집착한다. 세이준의 장점인 장르의 파괴적 변주가 이때 탄생한다. 이제 삶과 죽음은 무의미하다. 오로지 맺어진 관계만 남게 된 것이다. 멜로드라마 내의 치정극은 결국 감정착취적 결말을 드러낸다. 파스빈더는 멜로드라마 장르 곳곳에 숨어 있는 사랑에 대해서 논한다. 사랑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보다 상위 관계에 있다. 이는 영화 내에서 비춰지는 삼각관계를 깨려는 여성들의 노력이다. 나카사고의 감정착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코이네와 소노는 아오치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