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듐의 어머니이자 여성 과학자, 그의 일생을 담아낸 국내 창작 뮤지컬 ‘마리 퀴리’가 2025년 7월 12일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펼쳐졌다. 올해로 네 번째 막을 올린 마리 퀴리는 제5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대상, 프로듀서상, 극본상, 작곡상, 연출상까지 총 5개의 수상을 기록해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해당 작품은 국경을 넘어 주인공 마리 퀴리의 고국인 폴란드에서 특별 콘서트 및 실황 상영회를 열었으며, ‘바르샤바 뮤직 가든스 페스티벌’에서 ‘황금물뿌리개상’을 받기도 했다.

뮤지컬 ‘마리 퀴리’는 총 2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1막에서는 마리가 라듐을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을, 2막에서는 라듐으로 인해 초래된 부정적 상황에 대해 다룬다. 이야기는 노년의 마리가 딸 아렌에게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한 회고를 전하며 막을 올린다.
여성이자 폴란드 출신,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으며, 국내에서 여성의 교육권은 철저히 제한되어 있는 현실이었다. 때문에 마리는 프랑스의 소르본 대학에 입학하여 꿈을 이루고자 한다. 그리고 파리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같은 폴란드인 여성 안느 코발스카를 만난다.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연대, 그 순간 흘러나오는 넘버 ‘모든 것들의 지도’. 한계를 초월하여 주기율표에 스스로의 흔적을 남기고 싶다고 노래하는 마리의 목소리를, 찬란히 일렁이는 눈빛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자 하는 마리, 대학에 입학해 갖은 차별을 받지만 그럼에도 꿈꾸는 자를 꺾을 수 없다. 새로운 원소는 분명 존재한다는 믿음 하나로 몇 번이고 실패하며, 다시 일어선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험하는 그, 실험실에 연신 울려 퍼지는 딸깍 소리가 관객석에 울려 퍼질 때 나는 보이지 않는 마리의 진심을 마주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그는 폴로늄에 이어 원소 ‘라듐’을 발견한다. 밝게 빛나는 라듐은 마리의 또 다른 이름과도 같다. 노벨상을 받을 때 마리보다도 그의 남편 피에르 퀴리가 먼저 호명되는 시대에서 그럼에도 마리는 고개 숙이지 않고 라듐을 남겼다. 드넓은 세상에, 주기율표라는 지도에. “나는 라듐”이라 외치는 그의 형상이 비추어지며 1막은 끝을 맺는다.
하지만 이러한 희망적인 분위기와 사뭇 다르게 2부에서는 고뇌하는 마리의 모습이 주를 이룬다. 퀴리 부부는 인간의 악함보다 선함을 믿으려 하며 라듐을 독점하지 않고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그로 인해 라듐은 라듐 립스틱과 라듐 치약 등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러한 열풍 너머에도 그늘은 존재했다. 라듐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이들이 방사능으로 인해 하나둘 사망에 이른 것이다. 안느가 근무하게 된 라듐 시계 공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족과도 같던 공장의 노동자들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공장 측은 병원에 부검을 의뢰한 결과 그들의 사인이 모두 매독이라 말한다. 이상함을 느낀 안느는 그 진실을 추적해 나간다.
이는 1920년 라듐 시계 공장 인부들이 사망한 통칭 ‘라듐 걸즈’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 공장은 페인트를 칠하는 붓끝을 뾰족하게 만들기 위해 붓을 핥을 것을 권장했다. 그렇게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라듐을 지속적으로 섭취하게 되었고, 그들은 끝내 암과 턱이나 치아의 괴사를 겪어야 했다. 실제로 공장은 이러한 죽음을 은폐하고자 이들의 사인을 모두 매독으로 지목했다.

안느는 극을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로, 그를 통해 라듐의 양면성과 마리의 내적 갈등은 관객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와닿는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유해함을 지니는 라듐. 그런 라듐을 발견한 마리는 이러한 사실 사이에서 고뇌한다. 무엇이 옳은 것인가.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 작품은 혼란한 갈림길 속에서 마리의 선택, 그리고 그 지난한 과정을 드러낸다.
“당신은 과학을 왜 하십니까?” 남편 피에르의 질문에 과거 마리는 이렇게 답한다.
“궁금하니까. 궁금한 건 참을 수가 없어서요. 그런데 그걸 실험이라고, 과학이라고 부르더군요. 그 안에선 내가 누구인지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합니다.”
약소국이었던 폴란드의, 하물며 여성이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곳. 그 어떤 수식도 필요 없이 자신의 이름이 온전히 남을 수 있는 곳이 마리에겐 과학이었다. 한때 마리 퀴리가 제 이름이 아닌 퀴리 부인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도 말이다. 여성의 이름이 단지 누군가의 부인으로 명명되던 시대 앞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던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그런 여성을 조명하는 뮤지컬 ‘마리 퀴리’의 존재 자체가 내게는 소중하게 다가왔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방사능에 장기간 노출된 자신의 시체를 부검해달라는 유언을 남기며 과학자로서 사유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덧붙이지도, 빼지도 말 것”
마리, 당신의 삶을 살필 수 있었음에 감사를 전한다. 무대의 조명이 모두 사라진 뒤에도 마리의 이름을 하염없이 되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