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까이에서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버트 카파의 말은 4년 전, 내가 매그넘 포토스 Magnum Photos를 처음 접했던 순간을 관통하는 한 문장이다. 부산 문화회관에서 열렸던 전시, <매그넘 인 파리 Magnum in Paris>는 사진이란 장르를 잘 몰랐던 나조차도 그들의 주 무대였던 아름다운 도시의 역사와 정서를 감각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낭만과 혁명이 공존하는 20세기, 미식과 패션으로 가득한 오늘날의 파리를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포착했던 사진가들의 시선은 매그넘이라는 집단을 내 기억 속에 “기록을 예술의 단계로 끌어올린 그룹”으로 각인 시켰다.
그리고 지난달, 삼청의 뮤지엄 한미에서 다시 만난 매그넘은 내게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깊은 인상을 남겨주었다.
전시 <포토북 속의 매그넘 1943 – 2025>는 세계와 사진가, 이미지와 텍스트, 미학과 정치성이 어떻게 뒤섞이고, 배열되어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개별 사진들을 감상하는 기존의 많은 사진전과 달리, ‘포토북’이라는 사진가의 시선과 내러티브가 편집된 형식 자체에 주목하는 실험적이고도 타당한 시도를 선보인 것이다.
전시가 열린 뮤지엄 한미는 2003년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이다. 2022년 삼청으로의 이관 이후에도 국내 사진 작가의 활동 지원, 국내 사진사 정리와 자료 연구 등 꾸준히 사진이라는 매체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실험을 해오고 있다. 매그넘 포토스와 함께 한 이번 전시는 포토북의 내용적 깊이와 물성을 조명함과 동시에 저널 매체로서의 문화적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기획되었다.
“매그넘은 사고의 공동체이자, 인간 공통의 특성,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호기심, 그것에 대한 존중, 그리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기록하려는 열망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토록 매그넘을 잘 설명하는 문장이 있을까? 매그넘의 창립 멤버이자 근현대 최고의 사진가로 평가받는 앙리 까르띠에-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이 남긴 말이다.
매그넘은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이 지나간 1947년, 언론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들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포착하고자 하는 창작자들에 의해 결성되었다. 이 협동 조합은 오늘날까지도 그 권위와 명성에 걸맞는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전시는 20세기 포토/그래프 저널리즘의 선봉장에 섰던 이들의 사진 작업과 포토북부터 - 오늘날 담론을 만들어가는 예술가들의 인터뷰와 포토북까지 총망라한다.
“사진가에게 있어 책은 최고의 표현 방식이다.”
해당 전시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역시나 포토북이다. 포토북은 2000년대에 들어, 단순한 기록을 넘어 동시대 예술의 생동감 있는 선언으로 자리매김했다. (전시 캡션 인용) 3부 ‘마틴 파와 2000년대 이후 포토북’ 섹션에서 현대 최고의 사진가로 불리는 매그넘의 마틴 파가 뮤지엄 한미와 나눈 인터뷰를 감상해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진가에게 있어 포토북은 정말 궁극적인 표현 방식이라고 이야기한다. 짧게는 수 달, 길게는 수 년간 자신이 포착해온 사회와 삶의 순간들을 하나의 내러티브 속에 엮는다.
인쇄 매체라는 특성상, 누군가는 그 복제성을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포토북은 예술적 편집 행위와 작가의 의도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유일성을 획득한다. 단순한 사진의 집합이 아니라, 작가가 명확한 개념과 미학적 구조 안에 장면을 배열하는 엄연한 예술적 행위인 것이다.
오늘날 활발히 활동중인 사진가들의 대표 포토북과 함께 그들이 마틴 파와 나눈 인터뷰 영상을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그 중에 가장 기억이 남았던 것은 어느 작가가 “매그넘에서 제의가 왔을 때, ‘하지만 저는 종군기자가 아닌데요?’라고 했죠.”라는 대목이었다.
물론 이들은 제3세계를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회정치적 사건의 현장을 시각적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매그넘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매체 이전의 작가 개별의 창작성이다. 그 세계 속에 살아 숨쉬는 사회를 기록할 수 있다면, 누구나 매그넘 포토스의 사진가가 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가장 어렵지만.
프렌치 디스패치 스틸컷, c.월트디즈니컴퍼니
전시를 보며 매그넘 소속 작가들의 사진과 포토북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니, 마치 저마다의 세계관을 지닌 창작자들이 한데 모인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때 떠오른 것이 바로 웨스 앤더슨의 영화 <프렌치 디스패치>였다. 영화는 전세계의 저명한 저널리스트들이 모여 1년에 단 한 권의 뉴스레터를 발간하는 (편집장이 아닌) 창작자 중심의 옴니버스 저널리즘을 보여준다. 편집국도, 통신사도, 기자도 아닌 사진가가 중심인 독립적인 집단, 매그넘 역시 저마다 다른 이야기의 개별의 포토북들이 하나의 이름, 테두리 아래 모여 있지 않은가. <프렌치 디스패치>가 저널리즘을 통해 개성적 시선을 보여주듯, 매그넘도 사진이라는 예술 장르를 통해 작가 개개인의 미학과 정치성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의 말미에는 감상자들이 직접 전시에 소개된 매그넘 포토스의 포토북들의 책장을 넘겨보고, 읽어보고, 살펴볼 수 있는 아카이브 공간이 있었다. 자유롭게 책을 살펴보고, 비치된 QR코드를 통해 홈페이지에 접속해 책의 구매까지 이어질 수 있는, 전시 감상의 확장이었다. 이 경험은 다른 예술 전시와는 사뭇 다른 감각을 남겼다.
회화, 설치, 퍼포먼스와 달리 포토북은 복제가 가능하고 누구나 출판 유통망을 통해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 된다. 이처럼 사진은 미술과 저널리즘, 상업성과 예술성, 복제성과 개별성 그 사이를 점한다. 가장 단순한 형태를 띠면서도, 그 경계가 결코 뚜렷하지 않기에 사진이 어쩌면 가장 매력적인 예술 장르가 아닐까? 실제로 손에 쥘 수 있는 예술 경험을 제공하면서도 단순한 인쇄물 이상의 가치와 미학을 지니기에. 포토북은 그 중에서도 미학과 정치성을 한 권에 담은 산물이자 의도된 이야기의 정수일 것이다.
나는 동시대의 기록이 예술의 경지에 오르는 그 이상의 층위로 가는 것이 포토북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전시를 감상하고 나와서, 이 아카이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기를 권한다. 새로운 층위의 예술을 체험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꼭 당신의 감각을 넓혀줄 한 권의 포토북을 발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