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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바나나가 열렸다.

   

대표적인 열대 과일인 바나나는 고온다습한 기후에서 자란다. 최근 서울 기온은 35도를 웃돌고 있다. 한반도 내 일부 지역은 이미 아열대 기후권에 진입했다. 이어지는 무더위는 사람을 지치고, 예민하게 만든다. 따가운 햇볕 아래 얼굴을 찡그리고 불평을 하는 사람도 여럿. 그렇지만 나는 (환경 문제를 고민하게 만드는 기후 변화를 차치하고) 더워서 좋다!


나는 더위를 즐긴다. 여름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계절은 신기한 힘이 있다. 비물질적인 개념이지만, 형태를 가지고 있다. 나는 여러 감각을 통해 계절을 느낀다. 연상되는 감각들을 모아 하나의 어휘로 ‘여름맛’이라 표현하고 싶다. ‘여름맛’은 좋은 소재다.

 

누군가에게는 짭짤하고, 누군가에게는 끈적하고, 누군가에게는 싱그러운 그것. 오늘은 ‘여름맛’이 나는 문학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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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 시집 "여름 상설 공연"은 제목부터 여름이 들어가 있다. 표지는 여름하면 떠오르는 아쿠아블루(파랑과 하늘 사이 청량한) 색상이다. 작가가 여름을 특별히 좋아하는 걸까?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그렇다기보다는 나와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랑이 잦다. 사랑에 이르는 발화점의 온도가 낮다. 그래서 저절로 짜증을 불러내는 더운 날씨에도 덜컥 사랑이라는 것을 해버리고 만다.

 

 

그러니까 약간 죽은 체하고 있으면

괜찮아

숨 쉴 구멍이 생기고

월급도 나오고


조금 죽은 체하고 있어야 하지만

걸어갈 곳이 있고

가끔 둥글게 모여 밥을 먹고


얼음이 녹아 투명해진 아메리카노, 반만 올린 블라인드, 몇 알 남지 않은 비타민, 먼지와 먼지, 먼지와 먼지, 먼지…… 사실들


(……)


나 조금 길게 말해도 될까

늘 필요한 말만 해야 해서

지칠 때도 있었어


그러니까

퇴근 시간인데 창밖이 너무 밝은 거야


꽃이 지고 자라난 연둣빛

그 너머로 눈 내리고

초롯빛 발자국을 몰래 찍어 내며

언덕을 넘어가는 거지


(……)


지쳐 쓰러져야만

찾아오는 어둠


먼지는 및을 내고, 마치 별처럼 윤슬처럼


우리는 깊이 잠들어

우리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볼 수 없는데


(……)


잘 살자고

손을 꼭 잡고

그래도 잘 살아야 한다고

어깨에 쌓인 먼지를 털어 주며

조금 더

걸었고

 

'(   )에게' 부분

 

 

쉬운 일은 없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어릴적 꿈이나 놀이터에서 치는 장난이나 친한 친구와의 속삭임이나 이런 사소한 일들을 전부 잃어버린다. 어떤 사람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 모두가 ‘죽은 체 하고’ 살아가고 있다.


매달 날아오는 집세, 공과금, 보험료, 통신비... 현실 감각이 삶을 통째로 쥐고 흔든다. 돈을 벌기 위해 하루 평균 8시간 주 5일 조그만 책상 앞에서 시간을 보낸다. 살기 위해 죽은 척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얼마나 역설적인 일인가.


이런 연속적인 일상에 지쳐갈 때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살아 있’다. 죽지 않았기 때문에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사랑의 역치가 낮다면 기쁨은 쉽게 찾아온다. 날씨가 좋을 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산책을 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 그러니까 현실에 지치고 모순적으로 느껴지더라도 '잘 살자고'.


오늘밤도 어제와 같은 열대야가 예보되어 있다. 열대야를 견디는 방법은 다양하다. 최근에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라디오와 조명을 마련했다. 샤워를 하고 나와 은은한 주황빛 조명 아래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춘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온다. 카페트 위에 서서 음악을 즐긴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생각해보니 앞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위를 즐긴다. 당신만의 더위를 즐기는 방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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