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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어른이 된 입장에서 어린이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온당치 못하다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처럼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에 대해서 말을 얹어야 할 때엔 특히 그렇다. 어른은 너무 쉽게 어린이의 세계를 단정해 버리곤 한다. 마치 어린이는 너무 미숙하기에 그의 삶 또한 그만큼의 깊이감이 없을 것이라는 듯이, 그 시기는 어른이 되기 위한 과도기일 뿐이라는 듯이.

 

하지만 어른의 쉬운 판단과는 다르게, 어린이의 세계는 어른의 세계보다 훨씬 굽이져 있다. 너무도 쉽게 자기 삶의 주도권을 빼앗으려 하는 외부로부터 이를 지켜내기 위해 그 어떤 시간대의 삶보다 치열해지는, 분투의 시기이기도 하다. 어린이의 세계를 이미 빠져나온 어른은 이것을 쉽게 까먹어버리곤 하지만, 어린이의 세계는 어른의 세계보다도 더 어렵고, 때로는 더 온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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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이 신지의 <이사>가 그려내는 어린이의 삶 또한 무지하게 치열하다. 이혼을 앞둔 부부와의 저녁 식사에서 아이는 중심에 앉아 모두를 살핀다. 관계의 종말을 눈치챈 아이는 식탁 위 적막을 멈추고자 쉬지 않고 떠들고, 어른은 곧장 아이의 수다스러움을 나무란다. 아이는 수다를 떨고 싶은 것이 아니다. 식탁 위의 적막에 담긴 여러 의미를 아이도 알고 있기에,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분투하고 있는 것. 아이의 수다스러움과 분주함에 담긴 맥락까지 이해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힘을 써버린 어른의 사정과, 어느 샌가 달라진 일상의 빈틈을 메우고자 분투하는 아이의 사정은 애석하게도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 안에서 끊임없이 부딪힌다.

 

당연한 내 몫인 줄로만 알았던 가족의 평화, 부모와의 유대, ‘우리’라는 공동체가 주는 안전한 감각은 렌에겐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위기에 처해있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자꾸만 달라지는 나의 세계를 지켜내기 위한 어린이의 분투, 그 혼란의 한 복판에 서 있는 렌은 언제나 달려 나간다. 렌의 달리기는 목적지가 정해진 뜀박질이 아닌, 어린이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납득할 수가 없는 부당한 상황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뜀박질이다.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의 세계와, 그들의 세계로 인해 송두리째 달라지는 나의 세계, 그 부당함에 맞서 행동해보지만 그 노력들은 타인의 세계에 가닿지 않는다는 억울함. 아이는 다만 계속해 달릴 뿐이다.

 

그렇게 달리던 렌은 부모의 상황이 변할 것 같지 않자, 가택 은신 계획을 세운다. 아빠 방에 틀어박힐 것, 길어지면 불리하니까 빨리 결론을 낼 것, 하지만 평생 나오지 않을 것처럼 보일 것, 요구 사항은 이웃에 들리게 큰 소리로 고함칠 것, 방송국에서 오면 가능한 인터뷰에 응할 것. 야심 찬 계획과는 달리 이번에도 렌의 시도는 부모에게 가닿지 않았고, 심지어는 부부간의 큰 싸움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계기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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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이 신지의 <이사>가 어린이의 세계를 공들여 존중하고 있다는 점이 느껴졌던 건 이런 부분에서였다. <이사>는 렌이 ‘어린이’로써 행동하는 것을 포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엄연한 삶의 주체로써,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고 싶어 하는 적극적 인물로 그려낸다. 특히 가족 관계 안에서 렌은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가정의 문제를 결론짓는 부모에 대해 솔직한 심경을 토로하고, 그 의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대해 렌이 느끼는 주도권의 박탈감을 계속하여 보여준다.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이 마주하게 되는, 그리고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전면으로 마주하며 부당함에 대해 온몸으로 달리는 것. ‘어린이’답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어린이’답다는 것도 아니다. 렌은 그저 렌 답다.

 

이후 가족 여행을 비밀리에 도모했다가 이에 실패하고 다시금 달아난 렌은 지방 축제에서 여러 경험을 하게 된다. 부모로부터 도망치다가 마주한 이름 모를 어른은 렌에게 손에 쥘 만큼의 기억만을 가져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려준다. 겨우 손에 쥘 만큼의 기억.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내가 가질 수 있는 것과 내 것이 아닌 것, 결국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닌 것을 파악해야만 나아갈 수 있다는 어른의 이야기를 렌은 귀담아듣는다.

 

익숙하지 않은 타인과의 만남에서 불현듯 깨달음을 얻은 렌은 짚을 태우는 거대한 불길을 보며 이에 다가간다. 이후 렌은 축제 현장을 빠져나와 홀로 한밤중 산길을 걸으며 자연과 감응하고, 마침내 다다른 바다에서 아까 본 축제 현장이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적 체험을 하게 된다. 한밤중의 하늘이 새파란 아침이 될 때까지, 렌은 아무도 없는 바다 위에서 가족과의 즐거웠던 한 때와 축제의 불길을 함께 목격한다.

 

아마도 추억을 불태우는 듯한 그 의식과 함께 바다 저편으로 사라지는 화목한 과거의 부모. 홀로 남은 렌은 그들을 바라볼 뿐이고, 지난 추억의 부모를 저 멀리 보내고 나서야 렌은 비로소 축하의 인사를 여러 번 외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그 축하 인사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던 렌이 자기 자신에게 보내는 몇 차례의 성인식이었을 수도, 과거를 비로소 보내줄 수 있게 된, 겨우 손에 쥘 만큼의 기억을 솎아 낼 수 있게 된 자신에 대한 축하일 수도 있을 것. 그게 어떤 의미이든 간에 중요한 것은, 이제 렌은 과거의 자신을 안아줄 수 있는 현재의 자신으로 무사히 ‘이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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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세계를 어른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온당치 않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내 어린이의 특수함을 생각하며 이야기한 것은 아닌지, 이제야 걱정이 된다. 아마 내가 이 영화를 와 닿게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이 시기를 지나온, 그러니까 이로부터 ‘이사’한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 테다. 영화가 말하는 이사는 성인식이 아니다. 과거의 나와 작별하고 미래의 나로 나아갈 수 있는, 겨우 손에 쥘 만큼의 기억을 계속하여 솎아 내는 그 모든 이별이 이사다. 나는 렌이 겪은 시기로부터 몇 번의 이사를 해온 걸까, 그리고 앞으로 몇 번의 이사가 더 있을까. 내가 솎아내지 못해 두 손 가득 넘치게 들고 있는 과거의 것들과, 앞으로 내가 작별할 손 안의 것들은 무엇일까. 그런 새삼스런 생각을 하게 된, 영화 <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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