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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포스터_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5.16~8.31).jpg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키워드는 다름 아닌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였다. 서양 미술사 400년이 어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도심 요하네스버그에서 모이게 되었을까? 물론 유명한 화가들의 작품은 국경을 가뿐히 넘어 여기저기 퍼져있기 마련이지만, 특정 미술관이 타국에서 이어진 미술사의 흐름을 400년 치나 탐구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고 있는 「아르누보의 꽃: 알폰스 무하 원화전」은 무하의 고향인 체코의 '체코 아트 아르누보 프로덕션(ART NOUVEAU PRODUCTION SRL PRAGUE)'을 통해 이루어졌고, 작년 여름의 「새벽부터 황혼까지: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은 애초에 스웨덴국립미술관과 공동 기획했다.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서양 미술사 400년의 기록을 제공해 주었다는 장소는 바로 남아공의 한 아트 갤러리였다.

 

바로 그 점이 종로의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으로 발길을 이끌었다. 포스터의 모네도, 앤디 워홀도 아닌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가 흥미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예술의 힘을 믿었던 필립스 부인


 

도시의 골드러시(gold rush)* 초기, 적절한 타이밍에 요하네스버그에 자리를 잡은 부부가 있다. 바로 플로렌스 필립스 부인과 라이오넬 필립스다.

 

*새로운 금 산지의 발견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드는 일 (출처: Oxford Languages)

 

남편이 남아프리카 금광의 권위자이자 광산업의 명실상부한 지도자로 올라서는 동안, 필립스 부인은 다른 포부를 갖게 되었다. 바로 런던에서 살 때 자주 방문했던 미술관들과 비슷한 미술관을 고국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도 만들고 싶어진 것이다. 단순한 예술의 향유를 넘어서 교육프로그램의 제공이나 지역사회 봉사 등을 활발히 하던 런던의 '빅토리아 & 앨버트' 같은 미술관이 그녀의 지향점이었다.


 

예술은 유용할 수 있으며,

특히 취약 계층을 위한 사회적인 도구가 될 것이다!

 

 

그렇게 확신한 필립스 부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광산 재벌의 아내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남아공과 영국의 금융계 거물들에게서 보조금을 얻어냈을 뿐만 아니라 정성껏 모아온 자신의 소장품을 기증하기도 했다. 런던에서 구매했던 윌리엄 오펜, 윌리엄 로텐슈타인, 카미유 피사로, 클로드 모네, 알프레드 시슬리 등의 작품들을 요하네스버그 미술관에 기증하며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남편인 라이오넬 필립스 역시 그런 아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기금과 로댕 조각품을 함께 기부하였다.

 

 

필립스 부인.jpg

 

 

위의 그림은 바로 안토니오 만치니가 그린 「필립스 부인(1909)」이다. 그녀가 만치니에게 직접 초상화를 주문했다는 점에서 안목을 눈여겨볼 수 있다. 안토니오 만치니는 19세기 이탈리아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로, 12세부터 천재성을 인정받았으며 친구인 존 싱어 사전트가 "당대 최고의 화가"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만치니가 그린 필립스 부인의 초상화가 지금 서울의 한복판에 와 있다. 그녀는 사후에 자신의 모습이 한국을 순회하게 될 줄 알았을까? 그녀가 모든 것을 총동원하여 설립한 '요하네스버그 미술관'은 국제적으로 명성을 이어가며 필립스 부부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한눈에


 

무려 143점의 명화가 한국의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으로 찾아왔다.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400년의 방대한 역사를 담기 위해서는 지하 전시 공간까지 활용해야 했다.

 

클로드 모네,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등 서양 미술사에서 굵직한 화가들을 포함하여 총 89인의 거장들이 이번 전시에서 조명된다. 총 9개의 섹션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서양 미술사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향유하고 습득할 수 있다.

 

 

Ⅰ.필립스 부부

Ⅱ. 네덜란드 회화의 "황금기"

Ⅲ.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미술

Ⅳ. 인상주의 이전,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 혁명으로

Ⅴ. 인상주의를 중심으로

Ⅵ. 인상주의 이후

Ⅶ.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

Ⅷ. 20세기 컨템포러리 아트

Ⅸ. 20세기부터 오늘날까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예술 현장

 

 

2시간이 넘도록 전시장에 머물렀다. 무려 9개나 되는 섹션을 돌았지만 지루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 공간으로 넘어갈 때마다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미술에서 낭만주의로, 인상주의에서 그 이후로. 넘어가는 순간마다 돋보였던 것은 바로 '화가들의 저항'이다.

 

 

Seghers, Daniel, Flower in a vase, oil on oak panel, pre-1661, Johannesburg Art Gallery, Republic of South Africa (1).jpg

다니엘 세이거스, 「꽃병에 꽂힌 꽃(1661년 이전)」

 

 

17세기 초, 네덜란드에서는 혁신적인 바람이 불고 있었다.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항구가 유럽에서 가장 번성하는 사업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면서 생겨난 변화였다. 귀족 계급과 교회의 특권이 사라지고 부르주아 계급의 기업가, 상인 및 금융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서양미술에서는 '신'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들이 주로 붓질을 당했다. 그리하여 작품들은 신성하고, 장엄하고, 고고할수록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새로 생겨난 부유층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보다 먹음직스러운 과일 그림을 더 좋아했다. 자신들의 부르주아 저택에 걸어두기 예쁘면 그만이었다. 곧이어 풍경, 초상, 정물, 동물이 있는 그림이 돈이 되기 시작했고, 화가들은 짤랑이는 소리를 따라 붓을 움직이게 되었다.

 

물론 진심으로 정물화를 사랑한 화가들도 많다. 다니엘 세이거스가 그렇다. 그는 평생 꽃 그림을 그리며 왕실에 이름을 알린 작가로, 위의 작품이 바로 다니엘 세이거스가 그린 것이다. 「꽃병에 꽂힌 꽃」은 어두운 배경에 화려한 꽃들이 대조를 이루며 고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때 주목할 점은, 그림을 바라보고 있자면 허구의 꽃향기가 느껴질 정도로 붓질이 섬세하고 디테일하다는 것이다. 위대한 신에서 연약한 꽃송이로 주제가 변화하기는 했지만 본질은 여전히 '대상의 재현'에 있었다. 그것은 절대적이고도 마땅한 불문율이었다.

 

 

 

누가 틀을 깨트리고 이단아가 될 것인가?


 

1800년대 초기에서 중기까지 유럽에서는 낭만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들은 이성을 중시하는 신고전주의에 반대하며 개인의 감성과 직관을 중시했다. 특히 '라파엘 전파'는 아카데미 미술의 엄격함과 제도권 회화의 신파적 감상을 비판하며 예술적 쇄신을 추구했다. 「Ⅲ.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 미술」 섹션에서 그들이 저항한 흔적과 아쉬운 마무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1854년, 로세티가 죽고 에버렛 밀레이는 상업적인 방향으로 스타일을 바꾸며 라파엘전파는 와해된다.

 

하지만 그들의 저항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낭만주의 운동에 영향을 받은 '바르비종파 화가들'이 탄생하게 된다. 이전까지만 해도 풍경화는 역사나 신화를 다룬 작품들의 배경일 뿐이었다. 그런데 바르비종파가 풍경화를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발전시켜 나갔다. 어떻게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풍경'을 주제로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신고전주의의 이성적 세계관을 반대하면서 동시에 낭만주의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아름다움도 반대했다. 그들의 목적은 조금 남달랐다. 19세기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내려 했다. 그리하여 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풍경'인 것이다. 사실주의의 탄생이었다.

 

회화의 심지가 점점 이성이 아닌 개인에게로 집중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며 화가의 절대적인 실력보다는 '개인이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개인이 느끼는 풍경이 어떤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마침내 인상주의가 폭죽처럼 쏘아 올라지게 된다.

 

 

Boudin, Louis Eugéne, Trouville Port, oil on canvas, 1893, Johannesburg Art Gallery, Republic of South Africa (2).jpg

외젠 부댕, 「트루빌 항구(1893)」

 

 

화가들은 더 이상 대상을 재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대신에 새로운 방식으로 대상을 그려내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바로 인상을 포착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순간의 빛을 빠른 속도로 포착하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그림을 만들어냈다. 가상의 빛을 세워놓고 논리적으로 그리는 기존의 재현주의와는 정 반대였다.

 

인상주의를 방법론적으로 가장 완벽하게 구현해낸 작가는 바로 모네다. 이번 전시에서 모네의 「봄(1875)」을 직접 감상할 수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소개만 하고 그의 스승에 대해서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 바로 외젠 부댕이다.

 

항해사의 아들로 태어난 부댕은 주로 바다와 관련된 작품을 많이 그렸다. 비평가인 샤를 보들레르는 부댕만큼은 크게 칭송하였고,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는 그를 '하늘의 왕'이라고 불렀다. 이번 전시에서 외젠 부댕이 그려낸 환상적인 하늘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위의 작품은 외젠 부댕의 작품 중 「트루빌 항구(1893)」이다. 그림을 그린 날에는 하늘이 화창하고, 수온이 미지근하고, 살랑이는 바람이 적당히 불었을 것이다. 부댕이 바라보는 항구가 이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웠음을 깊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부댕의 「아르장퇴유의 보트들(1866)」과 「트루빌 부두(1893)」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

 

인상주의 이후로 작가들의 개성은 더욱 커지기 시작한다. 폴 시냑은 아예 점을 찍어서 자신의 시선을 표현하였고, 시간이 더 지나서는 기존의 관념과 통념을 거부해버리는 아방가르드 미술까지 나타난다. 마침 1차 세계대전이 터지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들에 대한 불신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은 계속해서 추가되고 조금씩 변화하여 남성용 소변기를 가져와서 작품이라고 이르는 현상까지 발생하게 된다. 바로 마르셀 뒤샹의 「샘」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뒤샹의 레디메이드(Ready-made)*에 큰 영향을 받은 앤디 워홀의 작품인 「요셉 보이스(1928-1987)」를 직접 감상할 수 있다.

 

*이미 존재하는 기성품을 예술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일종의 창작이 되는 것

 

그리고 앤디 워홀 옆에 있는 클래스 올덴버그의 「아치형 소포트 스크류 형태의 건축물(1976)」까지 감상하고 나면 400년의 미술사를 모두 살펴본 셈이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이번 전시의 핵심이나 다름없는 마지막 섹션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흑인 예술가의 작품을 구매한 최초의 남아프리카 미술관


 

필립스 부인은 처음부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미술과 문화를 발전하고 보호하고자 했지만 인종차별 등의 현실적인 제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미술관은 수십 년 동안이나 아프리카 작가의 작품을 소장할 수 없었다. 미술관장들은 '남부 아프리카에 유럽 예술가들과 견줄만한 작가가 없다'고 생각하며 고지식하고 차별적인 편견에 매몰되어 있었다.

 

하지만 1940년, 편견을 깨트리고 떠오른 작가가 있었다. 흑인 예술가인 제라드 세코토(Gerard Sekoto)의 「오렌지와 소녀(연도 미상)」가 가치를 인정받고 전시되었다. 작품성과 의의를 함께 가진 작품을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전시에서 직접 감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파란 음울감이 그대로 어깨에 내려앉는 「물에 잠긴 소호(1999)」나, 흑인들이 얼굴만 댕강 잘린 채로 박스 안에서 구겨져 있는 「사랑이 충만한 캐스피어」가 이번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다. 앞선 400년의 서양 미술사보다 마지막 섹션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작품들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

 

필립스 부인이 요하네스버그에서 만들고자 했던 것은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라 '인종을 넘어선 이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을 손수 가져와 남아프리카의 사람들과 나누고자 하였고, 현재는 필립스 부인이 남긴 '요하네스버그 아트 갤러리'에서 남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2025년에 이르러서는 그녀가 남긴 정신과 400년의 기록, 남아프리카 예술가들의 자산이 하늘을 날고 바다를 건너서 동양의 한 나라로 왔다. 이번 전시는 경주, 부산, 제주를 거치며 2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기록하였고 서울에서 그 마지막을 선보인다.

 

「모네부터 앤디워홀까지」는 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부터 20세기 현대미술까지 400년에 걸친 미술사의 주요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김찬용, 심성아 등 스타 도슨트가 진행하는 무료 오디오 가이드, 전시 작품 목록을 담은 자료집 들을 통해 누구나 쉽게 서양 미술사를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명화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미술사의 흐름을 깊이 이해하고, 서양 미술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17세기부터의 서양 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 남아프리카 예술가들이 고통을 예술로 승화해낸 작품이 궁금하다면, 인종이라는 키워드를 '구분 짓는 선'이 아닌 '연결하는 선'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면. 이 글에서 소개하는 전시를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전시는 5월 16일부터 8월 31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진행된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로, 입장 마감은 오후 6시다. 전시 기간 중 1일 3회(11:00/14:00/16:00시) 도슨트 프로그램을 무료로 운영하며 현장에서 신청 가능하다.

 

 

 

컬쳐리스트 이지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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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SARANGZO
진짜 재미엄는거 보고왁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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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13 00:04:4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