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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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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지 ⏐ 자라나는 마음2 ⏐ 80x110cm ⏐ 천에 실 ⏐ 2024

 

 

알록달록한 터프팅 아트 소품들과 작은 식물들이 가득한 공간, 키코시 스튜디오에 들어서며 ‘키코시’의 뜻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깊은 의미가 있나 했는데 의외로 몽지(최지인) 작가는 함께하는 반려견이 웰시코기라 웰시코기를 거꾸로 해서 ‘기코시’, 그러다 ‘키코시’가 되었다는 답을 들려주었다. 그 대답은 몽지 작가가 터프팅 아트를 배우기 시작해 여기까지 온 이야기와 어쩐지 결이 비슷했다. 대단한 결심보다는 어쩌다 보니, 기회가 생겨서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한 결과가 지금이었으니까.


터프팅 아트를 포함해 실을 이용하는 공예는 한 땀씩 시간을 들여 같은 동작을 꾸준히 반복해야만 완성품을 손에 얻을 수 있다. 목적지에 다다르기까지 필요한 것은 비장한 마음이 아니라 계속하는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몽지 작가는 힘을 빼고, 가볍지만 단단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터프팅 건을 들고 마음에서 건져낸 조각들을 성실하게 실로 채워 나간다. 지난 5일, 직접 기획한 전시 <빛과 실> 개막을 앞둔 그를 만나 작업 세계와 터프팅 아트에 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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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우선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몽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 최지인입니다. 디지털 드로잉을 기반으로 스케치를 하고 그 스케치를 실로 표현해 3D 작업물로 만드는 터프팅 아트를 하고 있습니다. 인천 부평에서 터프팅 공방인 키코시 스튜디오도 운영하고 있어요.

 

 

오는 6월 26일부터 <빛과 실> 전시가 계양아트갤러리에서 열리는데요, 작가님이 직접 기획하셨다고 들었어요.


작년 가을 개인전을 하며 직접 전시를 기획해 보니 제 세계가 확장되는 느낌이라 즐거웠습니다. 전시 기획에 눈을 뜨게 되었달까요. 작년에 개인 작업에 열중하고 전시에 참여하며 작업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면, 올해는 한 단계 성장해 전시 자체를 개척한다는 목표가 생겼죠. <빛과 실>은 그렇게 기획한 전시로 총 31명의 터프팅 아티스트가 참여합니다. 저도 신작 1점, 기존 작품 1점 이렇게 두 점을 출품해요.

 

 

전시 주제는 무엇인가요?


컬러, ‘색’이에요. 부제목도 ‘다채로운 색의 물결’이고요. 터프팅 작품에서 컬러는 섬유의 텍스쳐와 함께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컬러를 공부하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이 빛이에요. 빛의 여러 작용에 따라 물체의 색이 다르게 보이거든요. 그래서 제목이 ‘빛과 실’이 되었습니다. 참여하는 작가님들께 각자 가장 좋아하는 색과 자주 사용하는 색에 대해 간단한 글도 부탁드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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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이 자주 사용하는 색은 무엇인가요?


뚜렷하고 화려한 색감을 좋아하는데, 검정색을 자주 사용합니다. 검정은 악의 색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지만, 모든 빛을 흡수하는 색이라는 점 때문에 저한테는 모든 걸 포용하는 색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검정색을 자주 쓰는 건 제 작업 방식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작업할 때 제 내면에 있는 모양들을 끄집어내는데, 그게 어떤 모양이든 모두 나에게서 나온 것이니 부정하지 말자는 의미가 검정에 담겨 있지요.

 

 

이번 전시에 갖고 가시는 신작도 소개해 주세요.


데이지꽃을 표현한 ‘태양의 눈’이라는 작품이에요. ‘데이즈 아이(Day’s eye)’가 변형되어 ‘데이지’가 되었다는 걸 알고 ‘태양의 눈’이라는 제목을 붙였죠. 보통 데이지꽃 하면 노란 암술과 하얀 꽃잎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저는 그게 데이지꽃의 진짜 색이 아니라 우리 머릿속에 굳어진, 일종의 왜곡된 색이라고 생각해요.


한번 그렇게 인식되고 나면 실제 색을 더 이상 살피려 하지 않는데, 여기에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터프팅 아트로 표현한 데이지꽃에는 아이보리, 상아색, 회색, 베이지 등 다양한 색의 실이 쓰였어요. 신기하게도 노란색과 하얀색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닌데도 이 형태로부터 우리는 데이지꽃을 떠올리지요. 왜곡된 지각에서 벗어나 현상의 실체를 보려는 의지를 담았습니다.

 

 

작가님 작품을 직접 보니 터프팅 아트가 이런 거구나 확실히 알겠어요. 그래도 아직은 터프팅 아트를 생소해하는 분이 많은 듯한데, 터프팅 아트란 무엇이고 어떤 매력이 있는지 좀 더 소개해 주세요.


터프팅에는 ‘실 다발을 심다’라는 뜻이 있어요. 터프팅 아트는 프레임에 천을 팽팽하게 걸어두고 터프팅 건이라는 전동 공구를 이용해 실을 ‘심는’ 방식으로 채워 나가는 공예죠. 그래서 여느 공예와 달리 역동적이라는 것이 매력적입니다. 작업하는 게 총 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 스트레스 해소가 된다는 분들도 계셨어요. 몸을 많이 써야 해서 잡생각이 사라지는 효과도 있고요.


다른 공예에 비해 넓은 면적을 빠르게 채울 수 있어서 성취감이 크고 완성작에 대한 만족도도 꽤 높은 편이에요. 표현 방법도 엄청나게 다양해서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실물로 만드는 걸 좋아하는 ‘실물 덕후’라면 즐겁게 하실 거예요. 일상생활에 나의 취향을 녹이기 좋은 취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보통 터프팅 아트라 하면 평평한 러그 형태를 많이 떠올리는데, 그 외에 다양한 표현법에 관해서도 들려주세요.

 

실로 하는 공예다 보니 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다양해져요. 도구를 바꿔가며 실의 길이를 조절해 입체감을 표현할 수 있고, 가위로 적절히 실을 다듬어 모양을 뚜렷하게, 또는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모양대로 깎아낸 스티로폼에 러그를 붙여 입체적인 소품도 만들 수 있습니다.


울사 나일론사 특수사… 실 종류에 따라 느낌이 다양해지는 것도 재미있어요. 여러 실을 합사해 쓰기도 해요. 실을 조합하는 재미가 있죠. 활용법이 정말 다양해서 공방을 운영하시는 다른 선생님들도 계속 연구하고 배워가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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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지 ⏐ 독 ⏐ 80x102cm ⏐ 천에 실, 비즈 ⏐ 2024

 

 

작가님은 보통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시는지도 들어보고 싶어요.

 

제일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탐구하는 분야는 저 자신입니다. 제 내면을 숲으로 여기고 그 안에서 작은 조각들을 찾아 패턴을 일굽니다. 주제를 정하면 일단 관련된 글을 써보고, 그러면서 떠오른 심상들을 그린 다음 그것을 섬유라는 소재로 표현하지요.

 

 

작가님만의 영감 얻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자연에서 영감을 많이 얻습니다. 그래서 많이 돌아다니려 노력해요. 멀리 가지 않고 동네 산책만 해도 얻는 것들이 있습니다. 자연을 관찰하며 노트와 펜을 가지고 내키는 대로 그리다 보면 저만의 ‘조각’들이 튀어나오죠. 관심이 가는 특정 주제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책을 읽으며 깊이 알아보기도 해요. 상상력이 지식을 바탕으로 세워진다고 생각하거든요. 버섯과 이끼, 양치식물은 그렇게 공부도 많이 했어요.

 

 

그러고 보니 작가님 작품에는 버섯이 자주 등장해요.


처음에는 독버섯의 화려하고 괴상한 모양에 눈길이 갔어요. 자연에서 화려함은 대부분 맹독을 의미하는데 저는 그게 자연의 배려처럼 느껴지더라고요. 단지 해치기 위한 독이라면 굳이 드러낼 필요도 경고할 필요도 없을 텐데 말이죠. 저도 어려운 일을 할 때 나를 지키기 위한 독을 품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버섯 관련된 다큐멘터리와 책을 보고 나서는 생태학적으로도 버섯이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버섯은 식물이 아니라 균류로, 땅속의 균사체가 본체이고 우리가 아는 버섯의 모양은 포자를 퍼뜨리기 위한 번식 기관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균사체는 땅속에 그물망처럼 넓게 퍼져 있어요. 이걸 ‘버섯 네트워크’라 불러요.


나무들은 이 버섯 네트워크를 통해 양분을 주고받는데, 그 덕분에 숲이 건강해진다고 해요. 버섯처럼, 저도 작은 존재이지만 큰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작품을 보는 분들도 그런 힘을 얻어 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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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지 ⏐ 나비가 되는 꿈: 호접몽1,2 ⏐ 80x117cm ⏐ 천에 실 ⏐ 2024

 

 

지금껏 작업하신 것 중 작가님의 대표작을 소개해 주세요.


초기작인 <호접몽: 나비가 되는 꿈>을 소개하고 싶어요. 버섯이 처음 등장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하니 주인공이 버섯 같지만 사실 주인공은 나비입니다. 당시 전시 주제가 ‘꿈’이어서 호접몽을 떠올렸거든요. 제 마음을 숲에 비유한다면, 나비가 되어 그곳을 날아다니는 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하며 작업했어요. 최근 작품에 비해 완성도는 좀 낮을지라도 전시장에 처음 출품했던 작품이라 애착이 갑니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작가님의 여정이 궁금해져요. 터프팅 아트를 배우신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인데, 그 전에는 무엇을 하셨나요?


어릴 때부터 미술 쪽에 관심이 많았지만 입시 미술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 대학에서는 광고홍보학을 전공했어요. 하지만 미술학과 수업을 많이 들었고, 졸업 후에는 디자인 직무로 일했죠. 첫 회사를 그만두고 도망치듯 떠난 3개월의 미국 여행에서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재미 삼아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단기간에 주목을 받으며 협업 제안도 받고 일러스트페어에도 나가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회사에 가셨어요.


정말 취미로 시작해 생각지 못한 관심을 받게 된 상황이라 나중에는 제가 뭘 그리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고, 그림이 점점 마음에 안 들게 되어 방황했거든요. 그래서 그만두고 회사에 갔죠. 하지만 계속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내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결국 다시 퇴사를 했습니다.

 

 

그 무렵 터프팅 아트를 시작하셨군요.

 

터프팅 아트는 2019년부터 제 위시리스트에 있을 정도로 늘 배우고 싶었는데, 시간과 비용 때문에 미루고만 있었어요. 퇴사 후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 진짜 해보자 마음먹었죠. 원데이 클래스로는 내가 이걸 진짜로 좋아하는지, 맞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 처음부터 전문가용 클래스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잘 맞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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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지 ⏐ 자라나는 마음1 ⏐ 80x80cm ⏐ 천에 실 ⏐ 2024

 

 

배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스튜디오까지 열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멋있게 말하고 싶은데, 대단한 결심은 없었어요. 아주 예전부터 언젠가는 내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터프팅 아트를 배웠고, 잘 맞았죠, 그럼 터프팅 아트로 인테리어 소품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이 나더라고요. 작업실을 알아보던 중 평소 자주 놀러 오던 이 동네에 마침 매물이 있었고, 갑자기 놓치면 안 되겠다는 느낌이 확 왔습니다. 전문가용 클래스를 들은 지 3개월 지난 시점이었어요.

 

 

속전속결이었네요.


지금 생각하면 좀 무모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때 그 결단이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그만큼 내 브랜드를 만들겠다 마음먹은 기간이 길었기에 오히려 기회가 왔을 때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다음에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아요.


공방을 꾸려가기 위한 일이 생각보다 많아서 제 개인 작업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런 문제는 마감일이 필요한 일을 일부러 벌이는 방식으로 해결해 나가고 있어요. 임의로 바꿀 수 없는 전시 일정 등을 연초에 미리 정해두는 거죠. 강제성이 있으니 작업을 어떻게든 하게 됩니다. (웃음)

 

 

회사에 다닐 때와는 다르게 수입 등 불안정한 부분이 많아서 힘들 때도 있을 것 같아요.


불안하죠. 다시 회사 갈 수도 있냐고 물어보는 분도 많은데, 저는 그때마다 갈 수도 있다고 대답해요.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다른 수입이 필요하다면 그 일을 하는 거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둘러 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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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지 ⏐ 그럼에도 불구하고 ⏐ 91x117cm ⏐ 천에 실 ⏐ 2024

 

 

반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도 클 것 같아요.


나의 자아실현이 곧 사업과 연결된다는 것이 장점 중 하나예요. 작가 활동과 공방 운영을 별개로 구분할 수 없고, 둘을 병행할 때 시너지가 납니다. 제가 작가로 활동한다는 게 강사로서 매력적인 차별점이 될 수 있고, 수업을 하며 작업의 의지가 생기거나 작품의 영감을 얻기도 하죠. 다르게 말하면, 저는 모든 일을 할 때 작가로서 임하고 있어요. 작가로서 내 영향력이 무엇인지, 어디까지인지를 계속 고민하고, 그것을 사업과 작품에 녹이려 합니다.

 

 

말씀을 듣다 보니 작가님의 하반기 계획도 궁금해지는데요.


인테리어 소품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서 시작한 터프팅 아트인데 아직 고민이 많고 방향성 잡기도 어려워서 섣불리 시작을 못 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키코시의 방향성과 최종목표는 거기에 있기에 이번 12월에 열릴 서울일러스트페어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제품을 출시해보려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쭙고 싶어요. 모양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야 하는 것이 터프팅 아트고, "공예는 손재주보다 인내심"이라고 블로그에 쓰신 적이 있어요. 하지만 완성하기 전까지는 전체 그림을 보기가 힘든 상황이잖아요. 그럴 때 내가 똑바로 가고 있다는 걸 어떻게 확인하시는지 궁금해요.


굳이 똑바로 갈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게다가 지금 가는 길이 똑바른지 아닌지는 나를 포함해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잠깐 잘된다고 해서 그게 꼭 똑바른 길이라는 법은 없죠. 가장 빠른 길로 가면 좋겠지만 그건 로또 당첨 확률에 가까운 것 같고요. 그래서 저는 어떤 일이든 기회가 주어지면 ‘칼춤을 춘다’라는 마음으로 임하려 해요. 일단 무대에 오르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죠.


공예 분야를 보면 손을 더 잘 쓰고 못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시도해 본 사람이 더 잘하는 사람이 되더라고요. 저도 여기까지 뱅글뱅글 둘러 왔다고 생각하는데, 쓸모없는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지금 와서는 전부 도움이 된다는 걸 느껴요.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으니 나를 믿고 한 걸음 더 가보는 수밖에요. 그게 제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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