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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오피니언은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1992)>은 20세기 초 미국 몬태나주 헬레나를 배경으로 한다. 노먼과 폴은 엄격한 목사인 아버지 아래서 자연을 통해 세상의 섭리를 배우며 성장한다.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두 사람은 너무나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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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River Runs Through It(1922)

 

 

형 노먼은 때때로 일탈을 즐기지만, 결국 원칙과 질서를 따라 조용한 삶을 살아간다. 반면, 동생인 폴은 반항심이 짙으며, 자유로운 성격 탓에 폭력과 도박이 점철된 삶에 빠지게 된다. 노먼은 그런 폴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에 대한 연민을 거두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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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River Runs Through It(1922)

 

 

이 영화에서 인물과 사건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배경’이다. 감정이 요동치는 중에도 서사는 조용하고, 고요히 흐르는 강과 광활한 자연이 이야기를 주도한다.

 

반전 없는 단조로운 구조에도 영화의 이름처럼 ‘흐르는 강물’은 인물들의 관계와 삶을 부드럽게 흘러간다. 이 작품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Best Cinematography)을 받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영화의 자연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 삶과 사랑을 관조하는 하나의 화자로 기능한다.

 

Why is it the people who need the most help won't take it?

- 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오히려 도움을 거절할까요?


제시가 자신의 오빠 닐을 두고 한 말이다. 닐은 겉으로는 멀끔하고 유쾌해 보이지만, 속은 문드러진 채로 살아간다. 늘 술과 여자를 달고 다니며 방탕한 삶을 산다. 가족들은 그런 닐에게 계속해서 도움의 손을 내밀지만, 그는 그 도움을 내칠 뿐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왜 도움을 거절할까.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모를 때도 많다. 그래서 그네를 걱정하는 마음은 더욱 타들어 간다. 이해하려 해도 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은 때때로 혐오의 방향으로 기울기도 한다. 혐오의 무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 즉 ‘잘못된 무언가’를 교정하고 싶다는 충동을 일으킨다. 모든 걱정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귀결되지는 않지만, 이해의 한계는 명확하다.

 

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영화는 끝내 이 말을 전하기 위해 흘러왔다.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 연인이라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 이해는 사랑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오히려 ‘완전히’ 이해되지 않아도, ‘온전하게’ 바라보는 것이 사랑일지도 모른다.

 

I am hunted by waters.

- 나는 강물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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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River Runs Through It(1922)

 

 

윤슬을 사랑한다. 영화 속 윤슬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다. 빠짐없이 그러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브래드 피트보다도 인상적이었다(물론, 리즈 시절의 브래드 피트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빛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반사되어 가는지, 왜 그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다.

 

그저 강가에 서서 그렇게 사랑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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