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세르주 블로크의 전시회에 마음이 이끌렸던 이유는, 다름이 아닌 전시의 제목 때문이다.
'작은 선의 위대한 여행'.
무언가를 감상하고 와야 한다는 무게감 대신, '여행'이라는 단어가 주는 가벼움과 설렘이 먼저 다가왔다. '작은 선'이 어떤 '위대한' 여정을 떠나게 될지 호기심이 생겼다. 상쾌한 기대감을 안고 전시장으로 들어섰다.
전시의 입구에서 가장 먼저 반겨주는 그림, <모자를 쓴 고양이>는 무해한 미소를 짓고 있다. 세르주 블로크의 작품은 왠지 친근하다. 흡사 서점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팬시 브랜드 '아트박스'의 캐릭터들이 떠오른다. 영국의 '미스터 맨(Mr. Men)과 '리틀 미스(Little Miss)' 시리즈도 연상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선'으로 이루어진 손그림이 갖는 특유의 순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세르주 블로크는 선 하나, 붓 터치 하나로도 우리에게 친근함을 전할 수 있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세계 주요 언론 그리고 브랜드들과 협업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작가들과의 특별 콜라보레이션까지 다채롭게 펼쳐졌다. 한국어가 새겨진 작품들도 다수 있고, 한국 관객들을 위해 제작한 달 항아리와 조형물들도 눈에 띈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자유, 웃음, 용기, 협력'이다.
이 단어들은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기에 논쟁거리도 많은 주제들이다. 블로크가 생각하는 자유란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상태이다. 그에게 용기란 떠들썩한 행동이 아닌, 말 없는 실천이다. 협력도 용기와 마찬가지로 조용하지만 묵직한 연대이다.
이 주제들은 결국 '사랑', '인류애'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연인을 그린 작품이 많지 않음에도 어딘가 로맨틱하게 느껴진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블로크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지만, 그의 과거 기억 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되살리는 마음으로 성경을 재해석한 <바이블>이라는 작품이 그러하다. 작가 프레데릭 부아예와 함께 작업한 이 작품은 성경에 대한 것이 아니다. 다만 성경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서사와 해석에 집중한 작품이다.
거창한 정답을 지향하지 않는 작가의 태도는 그의 작품 전반에 녹아 있다. 이번 전시는 그가 그려온 상징적 캐릭터들, 라이브 페인팅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종이 조각, 작은 오브제, 냄비 등 소재를 막론하고 벽과 캔버스 위에 붙여 한데 어우르는 콜라주 방식을 통해 블로크는 우리 일상 속 단편들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평범한 일상이 자유로움과 즉흥성으로 새롭게 예술로 탄생하는 걸 볼 수 있다.
일부 작품은 미디어 아트와 함께한다. 프랑스어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은 은은하게 로맨틱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프랑스 동화 '꼬마 니꼴라'를 떠올리게 하는 영상을 감상하고 있으면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낙서를 닮은 그의 자유로운 그림은 그렇게 '무심코 그리는 마음'의 특별함을 상기시켜준다. 블로크는 "나는 머리로 그림을 그리고, 손으로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표현하기보다 선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다줄지 기대하는 것, 이것이 전시의 제목인 '작은 선의 위대한 여행'의 의미인듯하다.
그가 쓴 책 <어느 날 길에서 작은 선을 주웠어요>는 이러한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영감을 주는 모든 예술가들에게 바치는 헌사다. 그리고 그 헌사처럼, 이 작품 또한 작가를 꿈꾸는 누군가에게 용기를 준다.
그의 또 다른 책 <나는 기다립니다.> 또한 예술에 대한 아름다운 은유다. 이야기의 실(thread)를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하다가 말 그대로 이야기를 '실로 직조'한다는 상징으로 완성한 이야기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앤서니 브라운 전시와 마찬가지로, 블로크 전시에도 다른 작가들을 소규모로 소개하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작은 선의 위대한 여행' 중 우연히 만난 또 다른 여행자 같을 것이다.
전시를 다 감상한 뒤에는 기념품 숍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는데, 숍에서도 '미니 전시'를 체험할 수 있다. 숍에서의 미니 전시회에서야 작가의 소개가 비로소 등장하는데, 덕분에 본 전시장에서는 작품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세르주 블로크展, 작은 선의 위대한 여행>은 선 하나를 따라 걷다가 전시장의 로비로 나올 때쯤엔 미소를 걸치게 되는 따뜻한 전시이다.
전시는 2025년 5월 29일부터 8월 17일까지 예술의전당 제7갤러리와 1101 라운지에서 열린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입장 마감 오후 6시 20분),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관람료는 성인 15,000원, 청소년 및 어린이는 10,000원이며, 단체 및 할인 대상자에게는 별도 요금이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