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곳곳에서 고양미술축제가 열렸다. 아람누리에서는 <겹의 도시, 틈의 공간, 결의 예술>이, 일산호수공원에서는 <도시 속 조각 조각> 전시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국립암센터와 동국대학교 일산병원에서는 <도시 속 오늘의 흐름>이 열렸다.
오늘 소개할 전시는 ‘병원’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공간에서 펼쳐진다. ‘병원에서 전시가 가능할까?’ 처음에는 의문이 들었지만, 기획부터 운영까지 직접 참여하며 그 의미를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도시 속 오늘의 흐름>의 기획 배경과 공간, 작품과 작가, 그리고 준비 과정의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상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병원에서 예술을 만나다
병원은 누구나 방문할 수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예술을 향유하기는 가장 어려운 공간 중 하나다. 고양문화재단은 더 많은 이들에게 예술의 가치를 전하고자, 병원이라는 일상의 공간에 현대미술을 들여왔다. 병원은 회복의 공간인 동시에 기다림의 장소다. 환자들은 거동이 불편하고, 보호자들은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특히 색감이 거의 없는 무채색의 공간은 정서적 피로감을 더하기도 한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번 전시는 ‘색채와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정서적 안정과 위로를 전하고자 기획되었다. 이는 병원이 단순히 치료를 위한 장소를 넘어 사회와 예술이 만나는 열린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작품과 주제, 작가 소개
<도시 속 오늘의 흐름>은 고양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고양미술협회 소속 작가 17인이 참여한 현대미술 전시다. 참여 작가들은 도시의 흐름, 인간과 자연, 사적 공간의 교차에 대한 각자의 시선을 다양한 매체와 감각적인 색감으로 풀어냈다. 참여 작가 고현희, 김정란, 김현경, 김혜영, 김혜옥, 문인환, 안태이, 예애숙, 윤익한, 이선호, 이희상, 전경호, 조상근, 조영임, 주도양, 천진규, 한상영 작가에 대한 정보는 고양문화재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양미술협회란?
1990년 설립된 고양미술협회는 고양시의 대표적인 예술 단체다. 고양군 시절부터 지금의 고양시로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해온, 지역 미술계의 산증인과도 같은 존재다. 이번 전시에는 서울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등에 작품이 소장된 작가들을 비롯하여, 과거 아람누리, 어울림누리에서 전시를 개최했던 원로 및 중견 작가들의 귀중한 작품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전시 제목인 “오늘의 흐름”은 과거 고양미술협회가 고양시에서 처음 열었던 전시의 이름이기도 하다. 이번 고양미술축제의 흐름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기획자의 깊은 의도가 엿보이는 선택이었다.
전시의 또 다른 주인공, 종이 가벽
이번 전시의 특징 중 하나는 가벽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재활용 가능한 종이 파티션을 사용하여 자연스럽고 나무처럼 따뜻한 색감을 연출했다. 벽 사이의 틈으로 자연광과 병원의 풍경이 스며들어, 그림과 공간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전시를 완성했다. 이는 “병원의 백색 공간에 나무와 자연 같은 다채로운 색감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다”는 큐레이터의 기획 의도가 담겨있다.
(설치 비하인드) 이 종이 가벽은 병원 관계자로부터 “병원에 두고 가달라”는 요청을 받을 만큼 공간과 성공적인 조화를 이루었다. 담당 큐레이터님이 타 전시에서 영감을 받아 직접 발품을 팔아 공수한 것으로, 어느 공간에나 잘 어울리면서 설치가 용이하고 재활용까지 가능한, 친환경 팝업 전시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국립암센터 vs 동국대학교 일산병원
두 병원은 병원 내부에 전시 공간이 마련되었지만, 장소와 작품의 콘셉트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국립암센터는 본관-신관 3층 연결통로에 9점의 작품을, 동국대학교 일산병원은 1층 로비에 8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각 병원별 작품 구성 콘셉트는 다음과 같다.
국립암센터는 햇빛이 잘 드는 연결통로라는 공간 특성을 고려해 자연과 풍경화 중심의 작품들로 구성했다. 감상 동선을 따라 구상에서 추상으로 이어지는 흐름으로 관람에 몰입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동국대학교 일산병원은 한의학이라는 전통을 지켜온 공간이기에, 전통성을 담은 한국화 계열 작품을 배치했다. 한국의 정서를 담은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참여하며 작품 확정부터 설치까지, 작품이 급히 변경되고 설치가 지연되는 등 예상치 못한 변수들을 경험하며 현장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동국대 일산병원 작품 설치 당일의 기억은 생생하다. 사전에 구성한 대로 작품을 걸어보니 공간의 흐름과 작품의 분위기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즉석에서 선임 큐레이터와 긴밀하게 협의하여 작품 위치와 배열을 조정했다. 직접 작품을 옮기고 다시 걸어보며 눈으로 흐름을 확인해가는 과정을 통해 공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구성을 찾아 나갔다.
또한 함께한 협회원들과의 소통도 큰 힘이 되었다. 작품 출품작 선정부터 디스플레이, 안전에 관한 의견 교환까지, 함께 전시를 완성해나갔다. 이러한 작은 시행착오와 현장 조율을 거치며, 단순한 설치를 넘어 ‘진짜 전시’를 만들어가는 값진 경험을 했다.
시립미술관 큐레이터로 처음 일하며, "큐레이터는 반은 사무직, 반은 현장직이구나" 하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양쪽 병원의 가벽과 작품 설치를 모두 당일에 진행해야 했기에 시간이 무척 빠듯했다. 비 오는 날 선임 큐레이터와 함께 발에 불이 나게 뛰어다녔던 기억, 그리고 모든 설치가 완료된 뒤 서로의 노고를 격려하며 감격했던 순간은 잊을 수 없다. 완성된 전시가 주는 뿌듯함, 그리고 작품을 관심 있게 바라보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모습에서 오는 감동은 직업에 대한 만족감을 100% 채워주었다.
전시 속 작은 질문
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넘어 잠시나마 자신의 이야기를 그 안에 담아볼 수 있기를 바랐다. 동시에, 이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닿기를 소망했다.
고민 끝에 "지금, 당신의 흐름은?"이라는 질문을 던지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질문 아래 포스트잇을 붙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관람객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적고 다른 이의 흐름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참여의 장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포스트잇이 하나둘 붙어가는 모습 자체가 전시의 일부가 되리라는 기대가 컸다. 다행히 이 아이디어는 선임 큐레이터의 적극적인 지지로 실현될 수 있었다. 공간 여건상 동국대 일산병원에서만 진행되었는데, ‘과연 사람들이 써줄까?’ 싶었던 걱정이 무색하게 전시 시작 일주일 만에 포스트잇 판이 가득 채워졌다.
다양한 사람들의 흐름, 기억, 감정이 붙어있는 그 판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번 전시가 많은 사람에게 여운을 남기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빠가 빨리 건강하게 퇴원하길"이라는 짧은 한 줄에 마음이 울컥했다.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공간 앞에서 하나하나의 메모를 유심히 읽는 분도 계셨다. 내가 만든 작은 공간이 누군가에게 위로로 닿았다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느끼자,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나는 작품에 대한 정보가 많을수록 깊이 이해할 수 있고, 그 감동 역시 배가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관람객들이 작품의 메시지를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각 그림 옆에 설명 캡션을 별도로 제작했다. 디자인부터 출력, 부착까지 전 과정을 직접 맡으며 ‘이 문장이 휠체어를 탄 분들에게도 잘 보일까?’, ‘글자 크기는 괜찮을까?’ 같은 세심한 고민을 담아 정성스럽게 작업했다. 고양미술협회와 소통하며 작품을 선정 및 배치하고, 참여 이벤트를 기획하고, 캡션과 작품 해설, 전시 상세 페이지까지 모든 요소에 진심을 담아 준비한 전시다.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서 처음 참여한 <도시 속 오늘의 흐름>이 분주한 도시의 삶에 따뜻한 쉼표가 되고, 잠시나마 스스로를 돌아보는 사유의 시간이 되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