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과 2025년 5월은 달력이 똑같다고 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5.18, 4.3 등의 역사가 다시 주목받은 뒤 처음 돌아온 5월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광주라는 두 글자가 마음에 더 꾹꾹 새겨지곤 했다.
2004년부터 이어져 온 연극 <짬뽕>은 올해도 역시 공연되었다.
춘래원이라는 광주의 어느 중국집 사장 '신작로'와 그의 연인 '미란', 작로의 여동생 '지나'와 배달부로 일하는 '만식'까지, 넷은 가족 같은 사이다. 봄날의 소풍을 즐기고, 평범한 일상과 미래를 꿈꾸던 그들에게 닥친 비극을 담아낸 연극이다.
그 시절 중국집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무대와 배우들의 열연은 보는 이를 순식간에 과거로 데려가기에 충분했다.
"5.18이 짬뽕 한 그릇 때문에 일어났다고?!"
시선을 끄는 이 캐치프레이즈처럼, '배가 고프니 짬뽕을 내놓으라'라는 군인들의 요구에 만식이 저항한 것이 큰 사태로 이어졌다는 오해와 당혹감, 혼란이 극의 주를 이룬다.
특히 매력적이었던 것은 춘래원 식구들의 캐릭터성이다. 절름발이지만 씩씩한 지나, 흔히 말하는 '다방 레지'지만 도청의 시위대를 기꺼이 돕고 음료를 배달하던 미란, 고아 출신이지만 당차고 정의로운 성격의 만식까지, 모두 결핍을 안고도 멋지게 살아가는 인물들이었다.
반면 작로는 가장 평범한 인물인데, 그렇기에 가장 인간적인 갈등을 겪는 모습을 보여준다. 관객은 작로의 감정선 변화를 중점적으로 따라가며 웃음과 눈물이 뒤엉킨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었다.
이 연극은 올해로 무려 21주년을 맞이하며 대학로의 대표적 스테디셀러 연극임을 다시 알렸다.
최근 현대적인 연극이 많아졌지만, 이처럼 친근한 방식으로 웃음을 주고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이 그리운 관객이라면 더욱 찾아볼 만하다. 극 초반부에서 일부 관객을 직접 무대 위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거나, 마지막에 관객석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하는 등 관객 친화적인 진행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2004년의 극본이 2020년대에 계속 상연되고 관객들과 호흡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수정도 필요해 보인다.
후반부 미란을 향한 욕설 등 그 의도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불편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들이 존재했다. 물고문, 전기고문을 직접적으로 행하는 등 민감한 장면의 경우 사전 고지와 주의가 필요해 보이기도 했다.
역사극은 그 역사의 피해자가 관람한다고 가정했을 때 전혀 거리낌이 없는 수준인지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범하고 순진한 사람들이 어떻게 비극에 휘말리고 무고하게 희생되었는가'라는 접근 취지와 전개는 좋았지만, 더 깊고 섬세한 역사의식으로 나아가지 못한 점은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이렇듯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조명하는 극이 오랜 시간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이 극이 초연되었던 시기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실 규명과 인식 개선이 지금보다 미흡했던 만큼, 이런 소재와 내용이 더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2025년 현재는 소설 <소년이 온다>, 영화 <택시운전사>, 드라마 <오월의 청춘> 등 장르별 수작들도 많이 나와 역사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크기에, <짬뽕> 역시 앞으로 더욱 발전하고 주목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올해 5월의 끝에 서서, 45년 전 5월을 기억해 보자는 이 연극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