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 3년 연속 퍼스트 어워드 수상작’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에 이끌려 찾은 공연장.
‘세계가 극찬한 연극’이라는 수식어는 종종 과장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번 공연은 어떨지 걱정과 기대가 절반씩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보는 연극이라 연극의 문법이 어색하게 다가오진 않을까 내심 걱정되기도 했다.
좁은 소극장 지하로 들어서자 무대에는 하나의 타이어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단 두 명의 배우가 타이어 하나만 가지고 60분 동안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까?
막이 오르고 클로이와 나타샤, 두 배우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빠른 속도로 쏟아지는 대사와 거침없는 움직임에 정신을 빼앗겼다. 직접 연주하는 하모니카 소리에 맞춰 장면이 전환되고, 소년들은 웃고 울며 구르고 뛰었다. 단순한 2인극을 넘어, 말 그대로 신체극이었다.
다양한 감각을 활용한 총체적인 극적 경험이었다. 연기뿐만 아니라 무용 동작에 가까운 격한 움직임들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두 배우의 합이 굉장했다. 아마도 애드리브가 거의 허락되지 않을 듯할 만큼 빠르고 타이트한 호흡이었다. 얼마나 철저히 계산된 연극인지 느껴졌고, 두 배우의 엄청난 연습량이 체감되었다.
특히 텅 빈 무대를 오직 하모니카, 타이어, 음향 효과, 배우들의 움직임만으로 가득 채운 게 인상적이었다.
독창적이면서도 실감나는 장면들이 많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단연 물속 장면과 모기를 쫓는 장면이다. 물속 장면에서는 조명과 음향, 배우들의 움직임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정말로 인물들이 물에 빠졌다가 올라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모기를 쫓는 장면에서는 하모니카로 만들어낸 모기 소리와 두 배우의 절묘한 동작이 어우러져, 실제 모기는 보이지 않는데도 어디선가 윙윙거리며 날아다니는 모기가 눈앞에 있는 듯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작품의 핵심을 관통하는 것은 '유해한 남성성'에 대한 씁쓸한 풍자다.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잘못된 성인 남성상을 좇는 소년들의 이야기는 시대와 국가를 초월한 공감을 자아낸다.
전쟁으로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남자아이들은 롤모델 삼을 만한 어른이 없다. 린든 B. 존슨이나 미국의 베트남 전쟁 맥락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한국 관객이라면 작품의 모든 레이어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 어딘가에서 전쟁이 치뤄지고 있는 한, 전쟁과 남성성에 대한 담론은 언제나 시의적절하다.
특히 혐오적 언어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재 한국 사회의 소년들에게도 '건강한 남성성의 부재'는 충분한 시사성을 가진다. 연약함을 곧 취약점이자 단점이라 여기고, 오직 거칠고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팽배하는 우리 사회에 적절한 질문을 남기는 작품이다.
영어로 진행되는 공연이지만 한글 자막이 제공되었다. 맨 처음에 나온 안내 멘트처럼 대사량이 무척 많아 모든 대사를 충분히 한국어로 담아내지 못한 점은 아쉬웠지만, 극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한 시간밖에 안 되는, 비교적 짧은 공연이었지만 두 배우가 워낙 열정적인 에너지로 빈 무대를 가득 채웠기 때문에 짧게 느껴지진 않았다.
연극을 ‘보았다’기보다는 ‘경험했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오감을 자극했던 공연. ‘유해한 남성성’이라는 주제가 아니더라도, ‘신체극’이라는 독특한 장르의 연극을 접해보고 싶다면, 오감을 활용한 연극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한 번쯤 경험하면 좋을 공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