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힙 열풍 덕분에 마치 온 국민이 책 좀 읽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2023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1년에 종이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성인이 10명 중 7명이라고 한다. 가끔 특정도서가 입소문을 타며 많은 이들이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책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꾸준히 독서하는 사람을 찾기는 힘든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약 2년 전까지만 해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지금도 "책을 좋아한다"라고 당당히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다독 호소인이었다. 책을 읽고 싶다는 의지도 있었고, 자주 도서관을 방문하는 편이었다. 그때마다 늘 5권 정도의 책을 빌렸지만, 책을 모두 읽지는 않았다.
읽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책을 빌린 이유는, 이번에는 꼭 읽을 것이라는 나의 의지가 도서관에만 들어서면 불타올랐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몇 년 간 불치병에 걸린 것 같았다. 읽지도 않으면서 매번 도서관에 가서 5권씩 책을 빌렸다니. 심지어 우리 집에서 동네 도서관은 그래도 꽤 거리가 있는 편이다. 이쯤 되면 책을 좋아했다기보다는 도서관이라는 공간과 책을 고르는 재미에 빠졌던 게 아닐까 싶다.
이 상황이 몇 번이나 반복된다면 도서관을 안 갈 법도 할 텐데. 다독 호소인의 고집은 얼마나 센지. 반납할 시기가 오면 또다시 도서관으로 향해, 새로운 책을 빌려왔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은 늘 내게 친숙했던 공간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한 학년 언니의 추천으로 위인전을 처음 읽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위인전에 빠져 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위인전 시리즈를 모두 읽었다. 그 시절의 기억 때문일까. 내가 도서관으로 계속 향했던 건 책과 멀어지지 않기 위해, 책과 다시 가까워지기 위한 연습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꾸준히 읽기 시작한 건 어느 순간부터였다. 그 이유는 복합적이다. 모든 이유를 다 열거할 순 없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에디터 활동이었다. 글을 기고하면 기고할수록 나의 표현력과 문장력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다.
좋은 공연, 좋은 영화를 보고 느낀 감정과 생각을 글로 적어내고 싶은데. 말하는 것보다 글쓰기가 더 어렵다는 말처럼 나의 느낌을 '너무 좋다'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게 답답하고, 민망했다. 가끔 에디터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글을 보면 '너무 좋다'라는 표현밖에 못 하는 사람이 리뷰를 쓰겠다고 얼마나 머리를 쥐어짜냈는지가 보여서 웃기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결심은 결심일 뿐. 그렇다고 해서 책이 바로 재미있게 술술 읽히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나름대로 나와의 약속을 만들었다.
첫째, 도서관에서 책 2권만 빌리기
둘째, 너무 두꺼운 책은 빌리지 않기
셋째, 쉽게 읽히는 책이나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책 읽기
두 번째, 세 번째 약속은 지키기 쉬웠지만, 오랜 기간 다독 호소인으로 살아온 나는 첫 번째 약속을 지키는 게 제일 어려웠다. 도서관까지 왔는데 2권의 책밖에 빌리지 않는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이번에는 욕심 부리지 말자고 다짐하며 2권만 빌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는 2권의 책을 완독했고, 이후 서서히 독서와 친해질 수 있었다. 과유불급이라는 말처럼, 책을 엄청 좋아하지 않으면서 괜히 5권씩 빌리려 했던 고집이 문제였던 것 같다.
이제는 책을 여러 권 빌려와도 그 분량을 다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매번 책을 읽을 때마다 재미있게 술술 읽히는 건 아니지만.
확실한 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사고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다. 사고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바로 책의 매력인 것 같다. 책을 읽는 과정이 늘 재밌고 흥미롭다고 할 순 없지만, 책을 읽고 나서는 새로 알게 된 것들에 대한 뿌듯함이 남고, 그게 또 다른 재미가 된다.
끝을 좋게 마무리하면,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고 하던데. 책을 덮는 순간이 좋다 보니 또다시 책을 읽게 되는 것 같다. 이제 겨우 다독 호소인에서 책을 조금씩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지만, 먼 미래에는 다독 호소인이 아닌 진짜 다독인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그렇게 또 스스로와의 약속을 되새기며 도서관으로 향한다.
과유불급. 생각했던 것보다 한 권 덜 빌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