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중 가장 강한 생명력을 지닌 계절이자, 이상하게도 추억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절, 단연 여름이다. 여름에 나무들이 높이 자라나듯, 영화 <보이 인 더 풀>의 주인공 ‘석영’과 ‘우주’도 여름을 지나며 부쩍 성장한다.
섬세한 감각으로 영화를 연출한 류연수 감독은 첫 장편 데뷔작으로 <보이 인 더 풀>을 선보였고, 전주국제영화제, 가오슝영화제, 헝가리한국영화제, 오키나와 범태평양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다.
주인공 ‘석영’은 댄스 크루팀 ‘훅’의
멤버인 효우 배우가 맡았으며, 무대에서 춤을 출 때 보여주던 매력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관객들과 만났다. 동시에 ‘일타 스캔들’, ‘전,란’ 등의 작품으로 얼굴을 알린 이민재 배우가 ‘우주’를 맡아 인상적인 호흡을 보여주었다.
두 배우는 섬세한 눈빛과 감정선으로 우주와 석영의 청춘과 성장, 그리고 멜로를 그려냈으며, 그들의 연기는 ‘물’이 가진 투명한 속성과 어우러져 찬란하게 빛나면서도 순수한 여름의 낭만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석영은 수영을 좋아하는 13살 소녀이다. 어릴 때 한없이 꿈이 크듯, 석영도 그러했다. 석영은 가장 수영을 잘하고 싶었고, 수영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2013년 여름, 석영은 12살 우주를 만난다. 우주에겐 ‘물갈퀴’라는 비밀이 있었다. 물갈퀴 덕분에 우주는 수영을 잘할 수 있었고, 그것은 훗날 우주의 무기이자 동시에 약점이 되기도 한다. 우주는
이 비밀을 오직 석영에게만 털어놓으며, 둘은 빠르게 가까워진다.
석영이 우주에게 말한다. “너는 내가 아는 초등학생 중에서 수영을 제일 잘해.”
때론 이런 말 한마디가 사람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듯, 우주는 정말로 수영 선수가 되어 한국 신기록을 세운다. 12살, 13살의 소녀는 더 이상 없고, 열일곱에서 열아홉 사이 어딘가 고등학생이
된 둘은 서로 다른 도시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석영이라는 캐릭터는 내면의 ‘어린 나’를 자극했다. 모두가 우주처럼 특별하게 꿈을 이룰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은 석영처럼 어린 시절의 꿈을 마음속에 묻어두고 살아가는 것 같다.
어린 시절, 우리는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성인에 가까워지고 또 성인이 된 이후에 마주한 현실은 더 이상
내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운다.
석영의 여동생마저 피아노에 재능을 보이며 음대에 진학한다. 그렇게 석영의 주변 인물들은 재능으로 빛나는 듯한데, 석영만이 자신이 사랑했던 것에 대한 특별함을 잃어버린 듯한 모습이 묘한 허무함을 안긴다.
영화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고등학생, 성인의 모습을 교차적으로 보여주며 과거의 기억을 향수하게 한다. 그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여름’이라는 계절 자체가, ‘바다’와 ‘물’의 투명한 속성 자체가 기억을 더듬게 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단순한 성장 서사를 넘어, 어떤 기억은 물처럼 흘러 삶에 스며들고, 어떤 만남은 과거의 계절처럼 영원히 추억하게 됨을 말한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구나 자신만의 여름 한 조각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어떤 이에게는 잊고 지냈던 꿈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처음 사랑을 느꼈던 순간일 수도 있겠다.
잊고 있었던 순수했던 어린 시절, 바닷물이 피부에 닿았을 때의 느낌, 대충 묶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스치던 순간, 고등학교 방학의 공기. 모든 감각이 영화 속에
담겨 있다.
우리는 어떻게 특별함을 잃고 또 되찾는지, 그리고 누가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였다.
끈적한 습도와 데일 듯한 열기 때문에 사실은 반갑지 않던 여름마저 아름답게 느껴지게 만든 영화.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의 여행, 성장통, 그리고 여름이 그리워질 때 찾아올 영화, <보이 인 더 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