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디 사발(Jordi Savall)의 연주를 들을 때면, 소리라는 것이 단지 공기를 울리는 파동 이상의 무엇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가 연주하는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의 소리는 마치 사람의 목소리가 숨을 고르듯, 어떠한 강요도 없이, 말을 걸며 공간을 조용히 물들인다. 이 목소리에는 내 기억에 없지만 내 삶에 있었다고 여겨지는 과거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고 아마 경험했을지도 모르는 감정들을 느끼게 하는 신기한 힘이 있다.
‘비올라 다 감바’는 이름 그대로 ‘다리(Gamba) 사이에서 연주하는 비올’을 뜻한다. 르네상스 시대 스페인에서 시작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의 궁정과 살롱에서 연주되던 이 악기는 언뜻 보면 첼로나 비올라처럼 보이지만, 이 둘과는 전혀 다른 악기다.
감바는 양의 창자로 만든 6-7개의 거트 현으로 이루어져 있고 기타처럼 플렛(frets)이 있다. 그리고 활을 손바닥 아래로 잡는 방식(언더핸드 그립)을 사용해 소리를 세밀하게 조절한다.
특유의 고요하면서도 인간의 목소리를 닮은 음색은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의 내밀한 세계를 표현하는데 자주 쓰였는데 대표적으로 마랭 마레(Marin Marais)와 생트 콜롱브(Sainte-Colombe)는 이 악기의 표현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작곡가라고 할 수 있다.
마렝 마래 (Marin Marais)
마렝 마레는 프랑스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디올라 다 감바 연주자로 그의 음악은 섬세하면서도 감성적이고, 매우 우아한 프랑스 궁정의 취향을 담고 있다.
성가대원으로 음악을 시작한 그는 열아홉 살에 루이 14세의 궁정 악단에서 활동했으며 이후에는 프랑스 오페라로 넘어가 지휘자로 활동했다. 그는 오랫동안 교회와 궁정에서 일하면서 음악 교육에 힘썼고 이 시기에 많은 곡들을 작곡했다.
특히 다섯 권의 ‘감바와 통주저음을 위한 작품집’은 프랑스적인 우아함, 섬세한 장식음, 춤곡 스타일이 잘 살아있어 그의 예술 세계가 응축된 작품집이라 할 수 있다. 그중 < Le Badinage >는 겉으로는 경쾌하고 산뜻한 선율을 띄고 있지만, 삶을 바라보는 깊은 여유와 고요한 사색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 Le Badinage >
프랑스어로 '농담' 또는 '장난'을 뜻하는 이 곡의 리듬은 가볍고, 선율이 마치 장난꾸러기 아이처럼 이리저리 움직인다. 감바가 고운 장식음과 함께 빠르게 흘러가다가도 어느 순간 느려지고, 또다시 뛰어오르듯이 움직이는 그 과정이 마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처럼 느껴지는데(농담이란 본래 진지한 것과 가벼운 것 사이를 넘나드는 언어적 춤이기도 하니까.) 마랭 마레는 이러한 리듬을 음악으로 옮겨 놓았다.
무엇보다 이 곡은 감바가 가진 섬세한 발음, 숨결 같은 소리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낸다. 활이 현 위를 미끄러지듯이 흘러가며 만들어내는 울림은 마음을 가볍게 간질이기도 하고 잠시 멈춰 생각하게도 한다.
마치 마레는 우리에게 조용히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삶은 너무도 진지해서 가끔 장난처럼 다뤄야 한다···.”
생트 콜롱브 (Sainte-Colombe)
생트 콜롱브는 마렝 마래가 존경했던 스승이지만 제자인 마렝 마레와 달리 평생 동안 궁정 밖에서 독립적으로 음악을 연구하고 작곡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은 꾸밈없이 솔직하고 사적이고, 내면을 향한 음악이라 느껴진다.
그는 비올라 다 감바의 7번째 현을 추가한 사람이라 알려져 있지만 이것 외에는 그에 대한 명확한 정보가 없다. 그의 실제 이름조차도.
그가 남긴 것은 음악뿐이지만, 이 음악에서 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 Les Pleurs >
'Pleurs'는 눈물, 울음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이 음악은 제목 그대로 '눈물'을 노래하는 곡이다. 하지만 그 눈물은 단순히 비극적이거나 드라마틱하지 않다.
이 곡에서 감바의 소리는 낮고 부드럽게 시작한다. 마치 숨을 들이쉬는 것처럼 조용한 시작은 이미 공간 안에 슬픔이 가라앉아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곧 감바의 소리가 인간의 속삭임처럼 공간을 가득 채우는데 선율은 단조롭고 장식은 최소화되어 있다. 음 사이의 긴 여백은 마치 말을 멈춘 누군가의 말을 기다리는 것처럼 집중하게 만든다.
음악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슬픔보다는 그 상실을 자체를 바라보듯이, 그리고 품위를 지키듯 감정의 침전을 전달한다. 곡이 끝날 때쯤, 우리는 콜롱브가 말하려던 음악의 본질을 아주 잘 알 수 있다. 슬픔조차도 소리가 되면 이렇게 고요하며, 세상과 화해하는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