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재해석한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가 3월 30일 개막했다. 2016년 초연 이후 9년 만의 재연이다.
초연과 재연 사이 9년이라는 격차는 초연을 관람한 관객들로 하여금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초연에 비해 어떤 매력을 더했는지, 결점은 어떻게 보강했는지에 대한 관심이 쏠렸다. 또한 원캐스트로 진행되었던 초연보다 더욱 풍성해진 캐스팅으로 색다른 <도리안 그레이>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었다. ‘시대에 발맞추어 더욱 대담하고 솔직해진 아름다움에 대한 심연과 욕망’으로 다시 찾아온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의 첫 공연을 관람해 보았다.
아름답고 매혹적인 귀족 청년 도리안은 어느 날 촉망받는 화가 배질이 그린 자신의 초상화와 영혼이 바뀌어 영원한 아름다움을 갖게 된다. 영원한 아름다움이 가져올 타락과 몰락은, ‘도덕적 속박에서 벗어나 본능에 충실한 삶’을 목도하고자 한 학자 헨리에 의해 가속화된다.
필자는 초연을 보지 않고 재연으로 <도리안 그레이>를 처음 접해보았다. 소설 원작도 읽어보며 원작에 관한 공부도 충분한 상태로 <도리안 그레이>를 관람하였다.
그러나 <도리안 그레이>는 초반부터 난항을 겪었다. 극이 처음 오른 뒤 일주일간의 프리뷰 시기, 극의 흐름이 몇 번 뒤바뀐 것이다. 그 산만함을 방증하듯 극이 오르기 몇 시간 전에 수정된 대사나 빠진 넘버 또한 존재했다. 제작사는 여론을 의식한 듯 프리뷰 기간에 관람한 관람객들 한정으로 쿠폰을 증정하기도 했다. 결국 필자가 본 첫날의 공연은 다시 보지 못할 레어 회차(?)가 되기도 했다.
9년 만에 화려하게 돌아온 <도리안 그레이>는 어째서 초반부터 난항을 겪게 된 것일까?
시대에 발맞춘 작품의 새롭고 솔직한 변화: 캐릭터 활용의 문제
뮤지컬이란 장르에서 여성 캐릭터의 활용에 대해서는 꾸준히 비판의 목소리가 존재했다. 그러나 뮤지컬의 특성상 모든 조연을 비중 있게 다루는 것은 어렵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넘버는 대개 2~3곡 정도지만, 비중에 상관없이 극의 흐름을 위해서는 반드시 존재해야 할 인물들이다.
극 중 여성 배우가 맡는 ‘시빌 베인’과 ‘샬롯 베인’은 도리안에게 강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다. 극단의 배우인 시빌 베인은 도리안 그레이와 강렬한 사랑에 빠지지만, 그가 이별을 통보하자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그녀와 각별한 사이였던 동생 샬롯 베인은 시빌을 슬프게 하는 자라면 가만두지 않을 거라 엄포를 놓는다.
샬롯 배역은 재연으로 오면서 어린 샬롯과 성인이 된 샬롯, 두 명의 배우가 맡게 되었다. 이 역할은 사실 충분히 한 배우로 소화할 수 있는 분량이다. 언니와의 각별함을 보여주는 넘버로 어린 샬롯의 분량은 끝이 난다. 자매의 각별함을 보여주는 넘버의 호흡이 지나치게 긴 것도 있지만, 아역이 아닌 어린 샬롯의 존재는 오히려 성인이 된 샬롯 베인의 이미지와 잘 어우러지지 않는다.
한 배우가 소화할 수 있는 배역을 두 명의 배우로 나누니 발생하는 부작용은, 베인 자매에 관련된 서사의 중요성이 희석된다는 것이었다.
성인이 된 샬롯 베인은 언니와 마찬가지로 극단의 배우가 되어 원수인 도리안 그레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러나 샬롯 베인은 현재 도리안에 대해 어떤 복수심을 가졌는지 아무런 묘사 없이 그의 앞에서 매혹적인 춤을 춘다. 그녀의 심리는 오로지 가창으로만 전달되는데, 도리안에게 증오뿐만 아니라 매혹을 느낀다는 말이 스치듯 지나갈 뿐이다. 결국 도리안에게 칼을 들이민 샬롯은 도리어 도리안에게 반격을 당해 죽게 된다.
충분히 보강할 수 있는 캐릭터들을 허무하게 기용하고 퇴장시키는 모습은, 서사와 인물에 전혀 힘을 주지 않고 그저 오려 붙인 것 같은 감상을 주게 되었다. 이러한 여성 캐릭터들의 활용은 시대에 맞는 변화라고 보기에도 어렵다.
“온 세상을 가져도 영혼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조연뿐만 아니라 주연 캐릭터들의 중심 역시 줄거리 위에 부표처럼 둥둥 떠다닌다. 산만한 연출과 장황한 대사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극에게 어떤 매력을 느껴야 할지 의문을 남긴다.
도리안의 타락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성적인 타락’이다. 다양한 연출로 도리안의 타락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가 본래의 모습과 갈등하고 고뇌하는 장면 역시 연출로 대체하는 바람에 도리안이 자신의 타락에 대해 정확히 어떤 마음인지 알기 어렵다. 자신의 추악함을 초상화가 모조리 대속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주어진 아름다움을 취할 뿐 어떤 고뇌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예정대로 주어진 파멸을 맞이하지만, 주인공이 유혹과 탐욕에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리다 결국 파멸하는 이야기에선 그 어떤 울림도 느낄 수 없었다. 오스카 와일드가 전하고자 한 주제도, 도리안 그레이처럼 성적으로 타락하지 말라는 구시대 기독교적인 지침이 아니었을 테다. '솔직하고, 아름답고, 동시에 잔혹한' 도리안 그레이. 인간의 솔직함이란 추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만이 아닐 지 모른다.
도리안의 파멸 이유가 되는 헨리 역시 2막에 가서는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도리안의 타락을 관망한다. 금욕적인 삶을 살았던 학자 헨리가 도리안을 통해 욕망을 해방시키고 날뛰는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한 충분한 묘사 역시 부족했다. 도리안의 타락은 초상화와 직결되어 후반부에 가면 '저 초상화가 깨지겠구나' 하는 예상을 할 수 있었는데, 미디어 아트로 구현된 LED는 도리안이 자멸하는 순간에도 번쩍이며 그를 비출 뿐이었다.
흥미로운 점이라면, 뮤지컬이라면 말미에는 반드시 '웅장한 넘버로 끝낼 것'이란 (비공식적) 불문율의 법칙이 있는데, 도리안 그레이는 그러한 법칙에서 벗어나 관객들의 긴장감을 해제시킨 채로 1막과 2막이 끝난다. 박수 칠 타이밍을 알지 못해 커튼콜 음악이 들리고 나서야 박수가 터지는 광경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다행히 프리뷰 기간이 끝나며 연출의 결이 조금 다듬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난잡한 연출을 제하고 대사를 보강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초연의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고 각인된 만큼, 재연 역시 앞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나가길 하는 마음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관객에게 선보이기 전 충분히 고민하고 난 뒤 공연을 올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