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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비워내는 공간


 

땅 위아래를 수놓은 아래 두 건물의 형상을 비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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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공간은 파주 헤이리마을에 위치한 '카메라타'다. 이탈리아어로 '예술가집단'을 의미하며, 청음이라는 주제를 건축에 담았다. 이어 오른쪽 공간은 거제 가조도에 위치한 '지평집'으로, 땅 밑을 파낸 듯한 독특한 생김새로 예약이 아주 빠르게 마감되는 인기 숙소다.

 

두 공간은 모두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으로, 각기 다른 지역에 서로 다른 목적으로 지어졌지만 간결한 박스형 외관이라는 명확한 공통점을 지녔다. 건물만을 따로 떼놓고 보았을 때 자칫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형태는 이윽고 주변 환경과 어우러져 특별한 아우라를 뽐낸다. 모두 건축물을 직관적인 형태로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느껴지는 바를 섬세하게 형상화했다는 점이 물씬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조병수 건축가의 두 건물을 우리네 공간 속편으로 소개하는 이유는 이처럼 인상적인 두 공간을 기록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조 건축가가 건물에 담은 철학이 한국의 문화를 담뿍 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명 '절제의 미'다.


조 건축가 건축에 담긴 한국의 얼은 해외 유수한 건축가들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세계적인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은 자연물로부터 영감 받은 선을 표현해왔고, DDP로도 유명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는 곡선의 흐름에 집중했다. 모두 건물의 바깥을 타고 흐르는 '선'에 초점을 맞췄다는 특징을 보인다.


반면 카메라타와 지평집은 사뭇 다른 느낌으로 일상을 보듬는다. 카메라타는 음악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굴곡을 건물 외곽에 반영하는 대신, 끊임없이 음악을 들려주는 공간이라는 기능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안쪽을 가득 비워뒀다. 지평집은 땅이 주는 생명의 기운을 집에 불어넣어주기 위해 그 아래를 비워 거처를 마련했다.


조 건축가는 비교적 단조로운 모습의 건축물을 향해 건넨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변을 전하기도 했다. “단순한 박스지만 주변과 연계가 중요해요. 하늘과 땅과 주변 자연과 어울리게 하는 거죠.”

 

 

 

경험을 담는 공간


 

최근 국내에서 세간의 관심을 모은 건축물은 럭셔리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디자인된 경우가 많다.


서울도시건축상을 받은 갤러리아 명품관 재건축안은 토마스 헤더윅의 작품으로, 마치 날개가 펄럭이는 듯한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압구정 로데오를 거쳐 청담으로 이어지는 명품 거리와 자연스레 연결되는 이미지다. 또다른 헤더윅의 작품인 노들섬 개발 역시 기둥 위 전망대를 조성하는 데 중점을 뒀다.


다채로운 조형물이 지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거듭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때론 우리의 얼과 어우러지는 건축물이 그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날이 갈수록 한국만이 지닌 절제와 겸손의 미보다는 외적인 화려함이 주가 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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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집에 위치한 웰컴 카페 안에서 보이는 풍경. 아빠의 조식을 들고 이동하는 오빠와 나의 모습.

 

 

조병수 건축가의 건물은 쉬이 그 해답이 되어준다. 그의 건축물에는 내부에 집중할 수 있는 절제의 힘이 배어있다. 내면을 알아갈 수록 진국인 누군가처럼, 안에서의 경험이 쌓일 수록 공간의 아름다움이 배가되는 식이다.


"집이 땅 속으로 들어간다면 눈에 보이는 형태는 없겠죠. 그런데 들어가본 경험, 그 안에서의 경험은 존재해요."


그래서 종종 조병수 건축가의 건축물은 '사발의 기품'에 비유되기도 한다. 또 비평가들은 그의 건축을 두고 ‘거칢 속의 세련, 세련 속의 무심함’이라고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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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집은 땅을 깎고, 스스로를 낮추며 지평선 속으로 스며드는 겸손의 미학이 담겼다.


'ㄱ'부터 'ㅇ'까지 총 8개의 방으로 구성된 지평집에 방문하면, 먼저 투숙객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작은 카페에서 간식거리와 함께 웰컴티를 내어준다. 차를 마시며 주변을 둘러보면 바다와 풀, 흙을 머금은 숙소가 눈에 들어온다. 언뜻 땅 속에 파묻힌 듯 보이지만 구조를 살펴보면 그보다 '함께한다'는 설명이 더 걸맞는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2인이 머무는 ㄱ~ㄹ방은 바다를 마주하며, 그보다 큰 평수의 ㅁ~ㅇ방은 땅을 마주한다. 4인인 우리 가족은 'ㅇ'방을 선택했다. 방 안에 들어서면 땅 아래 돌과 흙을 형상화한 듯 큼직한 조형물과 여백으로 채워진 휴식 공간이 마련돼 있다. 침대에 앉은 뒤 가장 먼저 밀려드는 감정은 편안함이다. 싹싹한 인사와 화려한 장식 없이도 다분히 환영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제 이 공간을 채우는 것은 투숙객인 우리의 몫이다. 입구에 비치된 차를 끓여마시기도 하고, 이불에 누워 이야기 나누기도 한다. 해가 일찍 지는 가조도의 흐름에 맞춰 오후에는 방 밖을 나가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고, 저녁에는 마당에 모여 앉아 바비큐를 해먹는다. 추억을 하나둘씩 쌓다보면 어느 순간 공간이 함께 어우러진 채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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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파주 예술마을의 정신을 담은 카메라타 역시 공간을 비우고 음악을 채워넣었다. 카메라타에 입장한 사람들은 각자 끌리는 좌석에 착석해 스피커에서 끝없이 흘러나오는 음악에 시간을 맡긴다. 입장객은 음악을 감상하며 함께한 이들과 마음 편히 소통할 수 있지만, 어째선지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방해되지 않는다.

 

카메라타의 또 다른 매력은 명료한 박스 형태 안에 굽이굽이 자그마한 공간들을 함께 넣어두었다는 점이다. 카메라타의 주를 이루는 공간은 의심의 여지 없이 청음 공간이지만, 벽과 지붕 사이의 틈 / 구조물의 뒤쪽 공간 등 발길이 닫기 어려운 곳은 전시 등의 목적으로 쓰이고 있다. 그 공간을 들여다보면 청음 공간과는 또 다른 시각적인 경험을 해볼 수 있다. 해당 공간에는 청음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거의 들리지 않는다는 점도 이곳에서의 새로운 경험에 일조한다.


이처럼 조병수 건축가의 건물들은 천천히 비워낸 후 새로운 경험을 채워넣도록 돕는다. 두 공간을 방문하고 난 후, 건축가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 연결하기 위해 간결하지만 강한 힘을 가진 박스 형태를 자연스레 채택하게 됐음을 깨달았다. 이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리 정서를 담아낸 또 다른 모습의 건축물을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하며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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