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 다시 초록이 돌아왔다.
여기저기 잔디들은 겨울잠에서 깨어나 자신의 색을 찾고 개나리는 노랗게 물들었다. 저 멀리 이팝 나무같이 생긴 나무는 하얀 팝콘처럼 우수수 모여 피어나있다. 또다시 겨울이 지나 봄이 온다.
처음 풀리는 따뜻한 날씨에 맞춰 다복한 장날이 열렸다. 온통 사람으로 북적거렸고 채소 장수의 한마디가, 생선 장수의 한마디가 봄을 알리는 듯 제철을 알린다. 장날은 제철을 보기에 좋다. 잠깐 걸었다 서기만 해도 요즘은 어떤 게 맛있는지 알려주신다.
토마토는 빨갛게 익어가고 딸기의 맛은 점점 겨울과 함께 지나가고 있으며, 달래가 여기저기 보인다.
고소한 참기름 짜는 향기가 가득 퍼진 넓은 골목길을 걷고, 개나리가 철장 사이로 피어있는 좁은 골목길을 사람들과 거닐며 좋아하는 것들을 샀다.
한 손에 막대 어묵을 들고 육회를 사러 정육점에 들렀다. 2만 원어치를 달라고 하니, 신선해 보이는 생고기를 숭덩숭덩 거침없이 손질하신다. 무게를 재니 2만 2천 원이라 2천 원을 더 준비했는데 2만 원만 가져가셨다.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좋은 봄이 되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좋은 봄이 될 준비를 건네받았다.
미역을 2천 원어치 샀는데 그렇게 긴 미역을 몇 바퀴를 가득 감아 넣어주셨다. 우엉은 어떻게 먹어야 가장 맛있는지 알려주셨고, 정신이 없으신지 8천 원의 값을 3천 원만 받으시면서 보내려고 하셨다. 시장 인심이 이 정돈가 싶어 할머님과 서로 웃으며 돈을 다 주고 물건을 건네받았다.
골목에서 단 내가 났다. 짭조름하고 달콤한 냄새 호떡이다. 긴 줄이 있었다.
한 개당 천 원. 맛에 비해 너무 저렴하다. 바로 구워서 주는 바삭하고 꿀이 가득 든 찹쌀 호떡이 천 원이라니 가지런히 선 긴 줄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열기가 엄청났다. 뜨거운 판에 계속 구워지는 많은 호떡들. 사장님들은 벌써 뜨거운 판 앞에서 여름을 맛보고 계셨다. 그 덕분에 나는 아주 뜨거운 여름의 맛을 호떡에서 맛봤다. 혓바닥이 녹아내릴 뻔했다. 딱 한입만 물고 봉지에 넣었다. 그렇게 이제 집에 가려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 가고 있는데, 묘하게 진한 향기가 났다.
골목에 민들레처럼 앉아계신 할머니는 돌아다녀도 잘 보이지 않던 쑥을 한가득 검은 봉지에 담아두고 계셨다. 3천 원이 남아 마지막으로 남은 돈을 다 썼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쑥 상태가 좋다며 더 주라 한마디를 건넸다. 주인 할머니는 더 줘야지 하면서 3천 원의 가치가 무색할 정도로 한가득 주셨다. 쑥이 참 많았다. 이 노동력의 가치는 몇 배일 것 같은데, 허리를 굽히고 앉아 열심히 딴 쑥이 봉지에 한가득, 정이 담겼다.
그렇게 저녁 밥상은 하루의 장날이 되었다.
오늘의 밥상은 유난히 떠오르는 얼굴과 여러 마음을 건넨 손들 이 기억에 남는다. 표정을 보며 마음을 주고받는 손길에 봄이 녹아들었나 보다.
쑥국을 한입 떴을 때 달큰한 봄의 맛이 향긋하게 다가왔다. 다시 봄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