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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이거 엄청 암울한 이야기인데, 알고 있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으로 걸어가는 길, 함께 연극을 보러 가는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연극에도, 영문학에도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인 나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이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극을 보러 가기 전에 그 어떤 사전 정보도 찾아보지 않는 게으름도 한몫했다. 나 같은 ‘과몰입러’에게 암울한 이야기라니, 큰일인걸. 암울한 작품 중에서도 대단히 암울하고 비극적이라는 친구의 작품 소개(?)를 들으며 반쯤 겁에 질린 채 공연장에 입장했다. 괜찮을까, 이 작품?


1막이 끝난 후 인터미션, 친구에게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물론 보다 보면 가슴을 치고 싶을 만큼 답답한 순간들이 있긴 했지만, 또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는 절대 아니지만 아직 슬프진 않았다. 친구는 2막을 보자고 했다. 휘몰아치는,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웠던 그 모든 것들이 처절하게 무너지고, 부서지는 2막을.


관객들이 많이 울었다. 흐느끼고 오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큰 소리로 눈물을 흘리는 극은 처음이었다. 나도 울었다. 그런데 극장을 나오는 길, 슬프지만은 않았다. 좋은 작품을 만났다는 생각에 내심 기뻤다. 문학 작품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 이야기가 떠오르는 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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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우리 사회를, 또 그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많은 개인들의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다. 사회가 선전하고 광고하는,‘나도 성공할 수 있다’,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소리치는 성공 신화를 굳게 믿으며 헛된 희망을 품는 사람, 그가 바로 우리의 주인공 세일즈맨 윌리 로먼이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현실은 그가 굳게 믿고, 또 바라는 현실과 멀어지기만 한다. 많은 기대를 걸었던 첫째 아들 비프 로먼은 몇 년째 변변찮은 직업도 구하지 못한 채 방황 중이고, 둘째 아들 해피 로먼 역시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비프 로먼은 모든 게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며 견뎌내는 윌리 로먼의 아내, 린다 로먼이 있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사회가 주입하는 성공 신화, 거대한 부를 거머쥐는 것만이 가장 가치 있는 일로 치부되는 사회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며 결국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하고야 마는 소시민들의 이야기다.


사회의 성공 신화에 갇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거대한 성공, 부를 거머쥐는 것에만 사로잡혀 삶의 작은 성취에는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삶에서 정말 소중하고, 또 가장 중요한 것도 외면해 버리고야 마는데, 그건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이다. 극 중 윌리가 불쌍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그가 자신의 곁에 머물면서 그와 오랜 시간 함께한 가족들, 자신을 도우려는 오랜 친구를 외면한 채 허황 믿음과 허풍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윌리 로먼의 장례식은 참 썰렁했다. 아내 린다와 두 아들들, 그리고 오랜 친구인 찰리와 그의 아들 버나드만이 참석한 장례식이었다. 생전 윌리는 자신의 장례식이 아주 대단할 것이라 허풍을 떨곤 했다. 하지만 윌리의 장례식엔 윌리가 잘 보이려고 노력했던 회사 사장과 바이어들, 또 한때 자신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달래 주던 여인은 없었다. 그들은 윌리를 기억하지 않았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의 죽음에 슬퍼했던 사람들은 그의 가족과 친구들이었다. 윌리는 너무 외롭고 공허했다고, 아들 비프에게 불륜의 이유를 털어놓았다. 윌리는 왜 외롭고 공허했을까. 그건 그가 자신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어찌 보면 그는 세일즈맨으로서 판매에 열중하며 인간 ‘윌리 로먼’에게는 전혀 관심도 없는 이들만을 바라보고, 떠받들고, 동경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로부터 비롯된 자신의 공허함과 외로움도 결코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위로하지 못했다. 그리고 끝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그를 ‘영웅’처럼 생각하던 아들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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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비호감(?)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주인공 윌리 로먼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더 눈길이 갔다.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미국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적’이라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았는데, 바로 윌리 로먼과 그의 첫째 아들 비프 로먼의 관계 때문이었다. 윌리는 어릴 적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어딘가 비범했던 아들 비프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어린 시절 비프 역시 그의 기대에 부응했고, 그 역시 아버지를 깊이 존경하고 사랑했다. 하지만 비프가 성인이 된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어긋나고, 비프는 그 무엇에도 열중하지 못한 채 방황하기만 한다. 문제는 윌리가 그러한 비프의 모습을 전혀 받아들이지도, 받아들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윌리는 비프가 큰 성공을 이뤄낼 수 있으리라고, 부자가 될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으면서 비프의 현실을 외면한다. 부자가 되는 것이 비프가 원하는 미래가 아님에도, 윌리는 비프가 그것을 이상으로 삼아 부와 성공을 으며 끝내 그것을 이뤄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비프가 윌리의 망상에 가까운 허황된 꿈을 깨고자 하는 순간마다 윌리의 상태는 더 심각해진다. 그래서 비프는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본인이 원하는 미래가 아닐지라도.


수많은 부모, 자식 관계가 떠오른다. 부모는 응당 자식에게 무언가를 기대한다. 그것이 대단한 것이 아닐지라도, 부모는 늘 자신이 기대하고, 규정해 내는 자식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자식이 그 기대에, 자신이 규정한 그 이미지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충격을 받곤 한다. 윌리 로먼도 그랬다. 윌리가 비프에게 기대했던 것, 그리고 비프의 모습이라고 규정했던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추종받으며 사회적 성공을 이뤄낸 모습이었다. 하지만 비프가 그러한 모습에서 점차 멀어지고, 그 사실을 자신에게 일깨워주려 할 때마다 윌리는 괴로워했다. 윌리가 괴로워했기 때문에 비프는 아버지에게 희망을 줘야 했다. 자신이 윌리가 기대한 비프라고 말이다. 그리고 기대와 다른 비프의 현실에 아버지가 실망할 때마다 그는 집안의 죄인이 되어야 했다. 비프는 알게 모르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왜 비프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가. 윌리를 괴롭게 하는 건 비프가 아니라, 윌리 자신이다. 더 나아가 윌리는 비프조차 괴롭고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비프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규정하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자 비프를 죄인으로 만든다. 그리고 괴로움의 원인을 모두 비프에게 돌려버린다. 자식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또 강요하는 부모들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자식을 괴롭히면서 이상하게도 본인이 더 괴로워한다. 그래서 자식은 늘 부모 앞에서 죄인이 되고 만다.


아내 린다 로먼에게도 눈길이 갔다. 그녀는 윌리가 좌절하고 또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며 괴로워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를 안심시킨다. 결코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가 아니었던 윌리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또 사랑하면서 그에게 헌신한다. 린다는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인내했을까. 내색하지 않을 뿐, 그는 얼마나 답답할까. 자신의 감정과 답답함을 표출해 내는 아들과는 다르게, 린다는 자신의 답답함과 힘겨움을 호소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은 그마저도 윌리를 위해서다. 늘 인내하는 현명하고 온순한 아내이자 어머니인 린다. 연극은 세일즈맨인 윌리와 그의 첫째 아들 비프의 서사가 주를 이루지만 그 모든 것들을 온전히 견뎌내고 감당해 왔을 린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문학 작품이 시대를 비추는 거울인 것 같다고, 공연장을 나오는 길에 친구에게 말했다. 자본주의가 도래하고, 물질적 가치가 모든 가치의 우위에 선 부조리한 시대를, 불행한 개인의 삶을 통해 통찰하고 있다. 모두가 주목하지 않는 평범한 소시민들 - 윌리, 비프, 린다- 의 삶을 주제로 그러한 시대를 반영해 낸 것도 놀랍다. 오늘날에도 크게 공감이 되는 걸 보면, 우리는 아직도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세일즈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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