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다. 공은 투수와 포수 사이에서 갇힌 채 돈다. 또 볼넷. 이번 회에 몇 번째인지 세는 것도 지친다. 배트를 어깨에 대충 걸친 상대는 비웃으며 1루로 향하고 루상의 주자들은 타자 주자에 밀려 한 칸씩 이동한다. 계속 돈다. 하염없이. 대한민국 8월의 한 낮. 냄비에 고구마를 찌듯 작열하는 태양은 나와 팀원들의 온 몸을 찌고 있다. 돌아버리겠네. 당장 마운드에 올라가 공을 뺏어 한 가운데로만 던져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얻어맞더라도 스트라이크를 던지다보면, 한 번쯤은 방망이에 빗맞아 뜬공도 나오고 땅볼도 나오고. 그래야 게임이 끝날 것 아닌가. 지금처럼 볼넷만 남발하면 이게 무슨 야구인가. 고문이지. 스물한 살, 재수의 터널을 갓 탈출한 신입생은 원망 어린 눈빛으로 덕아웃의 감독을 바라본다. 그는 묵묵부답. 수심에 빠진 얼굴로 그라운드의 어딘가를 응시한 채 서 있다. 나는 목구멍 끝까지 올라온 말들을 참으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을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정규 교육 과정과 약간의 야구부 생활을 착실히 밟아온 나에게 선배에게 대든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누군가 한 명은 탈수로 쓰러져야 끝나겠구나. 차라리 먼저 누워볼까. 라는 생각을 할 때. 드디어 경쾌한 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어디야. 어디냐고. 어딘진 모르겠지만 아무나 잡아. 제발.
- 떴다! 숏! 숏이야!
* 숏: 유격수를 칭하는 영어단어 ‘숏스탑’ (shortstop)의 준말
숏? 잠깐만. 나잖아? 나는 공이 떠있어야 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나 구름 한 점 없이 청량했다. 빠르게 회전하는 하얀 공이 눈앞에 보여야만 했으나, 온데간데 없었다. 내가 하늘에서 본 것은 대부분의 푸르름과 강렬한 빛뿐이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녀석인지 야구공이 태양 아래 숨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광선이 눈을 쪼아댔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지 않았다. 끝까지 글러브를 펼치고 기다린다면, 어쩌면 녀석이 내 마음을 알아주어 저절로 글러브에 폭 하고 안기지 않을까하는 마음이었다. 이런 얄팍한 마음을 요행이라고 하던가.
주자들은 신나게 돌았다. 투아웃이었기에 본래의 루로 돌아 가야할 일이 없었던지라 공이 뜨자마자 내달린 것이었다. 기대를 저버린 채 바닥을 굴러다니는 공이 원망스러웠다. 타자 주자는 어느새 2루에서 환히 웃고 있었다. 나는 숨을 곳이 필요해 모자로 얼굴을 가렸다. 상대편에게도, 우리편 선수들과 매니저들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깜냥도 되지 않으면서 감독과 투수의 탓을 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괴롭게 했다. 그날은 내 데뷔전이었고, 나는 첫 경기에 안타를 친 희귀한 신인이 되었으나, 전혀 기쁘지 않았다. 패배했기 때문은 물론이거니와 나의 오만함이 만천하에 드러난 날이기 때문이었다.
이 날 이후, 전력을 지탱하던 선배들이 졸업하면서 나는 점점 패배와 실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부족한 점을 극복하고 더 좋은 선수가 되었기 때문이라면... 무척이나 좋았겠지만. 이는 나와, 우리 팀. 나이너스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다. 어느샌가 나이너스는 패배가 친숙한 팀으로 전락했기에 익숙한 절망 따위로는 더 이상 수치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승리를 통해서는 작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패배로부터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You can learn a little from victory, you can learn everything from defeat)
- 크리스티 메튜슨
주변 사람이 중요한 경기에서 졌거나 난관에 맞닥뜨렸을 때, 이 명언을 전하며 위로를 건네곤 한다. 챙겨주는 정성은 고맙지만 패배의 쓴맛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스스로 수십 번씩 되새겼을 때 비로소 무뎌지고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야 자산이 된다. 그리고 이 명언. 승리가 패배보다 값지다는 뜻은 아니다. 배울 점이 많다고 했을 뿐, 승리의 가치가 패배보다 상위의 것임은 전혀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의 인식을 공고히 했을 정도다.
명언의 주인공이자 명예의 전당 최초의 5인* 중 한명인 크리스티 메튜슨은 당대 최고의 인기팀, 뉴욕 자이언츠 –지금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뛰며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고, 188패를 기록하는 동안 373승을 올려 메이저리그 다승 공동 3위에 자리 잡은 전설적인 투수다. 기인열전에 나올 법한 그의 기록을 찾아볼수록 명언의 감동이 옅어졌다. 패배에 관한 명언의 주인공이기에 패전처리를 전전하며 고난 끝에 1승을 올린,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의 감사용 같은 선수일 줄 알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초의 5인 -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창설과 동시에 입회한 5명의 선수를 일컫는 말. 호성적을 올린 메이저리거들은 은퇴 후 기자단의 투표를 통해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를 평가받는다.
당연한 이치긴 하다. 감사용도 영화의 주인공으로 다뤄지고 나서야 관심을 받았지, 이전에는 성씨가 특이한 선수 중 한 명일뿐이었다. 마찬가지로 메튜슨이 평범하게 야구를 하다 그저 그런 선수 중 한명으로 잊혔다면, 패배에 관한 그의 철학도 동시에 세상에서 지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메튜슨은 세기의 슈퍼스타였고 기자들을 구름같이 몰고 다녔다. 그들은 메튜슨의 말을 받아 적으며 기록했다. 그 결과 승리를 부르는 에이스가 언제 남겼을지도 모르는 그 한마디는 쓰임새를 인정받아 후대에 전해져 명언이 되었다. 토너먼트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 ‘Winner takes all’ 직역하면 승자독식. 패배한 팀은 짐을 싸고 승리한 팀이 모든 것을 가져간다는 뜻이다. 잔인하지만 스포츠이기에 허용되는 다툼의 결말. 그러나 경기가 끝난 후에도 이 논리는 유효하다. 패배를 위로하는 영역도 결국은 승리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승리만을 좇는 냉혈한이기에 이런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패배. 그 후유증으로 밀려오는 무력감에 팀이 망가지는 과정을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40여개의 팀이 참가하는 전국대학아마야구리그(AUBL). 5개의 팀이 한 조가 되어 펼치는 풀 리그에서 나이너스는 2021년과 2022년. 2시즌을 통틀어 1승을 거두는 데 그쳤다. 심지어 2022년에는 전패를 당하며 꼴찌만 면해도 진출하는 버금 토너먼트*에도 오르지 못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했다고, 연습을 꾸준히 하면 언젠가는 이길 수 있다며 서로를 다독여도 패배에서 기인한 우울은 극복할 수 없었다. 침체된 분위기는 분열을 자아냈다. 경기 안에서도, 밖에서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이러한 일련의 갈등이 극에 달할 때 팀의 감독이 되었다. 감독직을 수락하는 모습은 어느 정도 그리고 있었지만, 팀이 이정도로 망가졌을 때 맡게 되는 것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난 미래였다.
*버금 토너먼트 - 한 조, 5개의 팀 중 3등과 4등이 향하는 하위 토너먼트. 1등과 2등은 상위 토너먼트인 으뜸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감독직을 맡기 전, 내가 리더가 되었던 기억을 떠올려보았다. 개그맨을 잘 따라한다고 반장으로 뽑아줬던 초등학교 6학년때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차출되어 분대장을 달았던 군 시절뿐이었다. 적당히 중간이 좋은 삶이었다. 결정을 떠안는 것도 싫었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도 노래방에 가자면 노래방에 가고, 피시방에 가자면 피시방에 가곤 했다. 그런데 내가 왜 감독을 해야겠다고, 스스로 진흙탕에 뛰어 들겠다고 다짐했을까. 복잡한 고민으로 머릿속이 뜨거워질 때 즈음, 최초의 기억이 머릿속에 선명해졌다.
나의 데뷔전, 숨이 턱턱 멎는 무더위에 팀원들은 지쳐만 가고, 꽉 들어찬 상대 주자들이 하염없이 홈으로 들어가 점수를 빼앗는다. 대놓고 표현하거나 속으로 삭히거나. 팀원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 채 모두 짜증을 낸다. 당시 감독이었던 그의 심정을 헤아려본다. 그라고 이런 경기를 치르고 싶었겠나. 분명 불가피했다. 아무도 감독을 탓할 수 없다. 그러나 그날의 기억. 어지러움과 불쾌함과 부끄러움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따라다닌다. 그리고 기약 없이 운동장에 서 있으면서 느꼈던 감정. 이런 경기를, 야구 경기라고 할 수 없는 공놀이를 두 번 다시 경험하기 싫다는 열패감.
얼른 운동장에서 빠져나와 냉탕에 몸을 던지고 싶었던 그날의 기억, 짧은 야구 인생에서 겪은 최악의 경기는 내가 감독이 된 합당하고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감독이 되기를 결심하니 이루고 싶은 소망들이 물밀 듯이 떠올랐다. 팀원들에게 야구 경기가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었다. 재밌고 짜릿한 건 당연지사.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펼칠 수 있는, 살아가며 좀체 느끼기 힘든 순간을 그라운드에서 마음껏 누리기를. 최종적으로는 직업 선수가 아니더라도 평생 야구공을 내려놓지 않고 꾸준히 즐기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부푼 꿈을 비웃듯, 내게 주어진 현실은 처참했다. 공사를 막 마친 운동장은 전혀 관리가 되지 않아 모래사장을 연상케 했고, 선수단은 전패를 달성했던 구성원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머리를 열심히 굴려야했다. 무려 동네 공놀이에서 이기기 위해. 그리고 나에게 한 시즌을 맡긴 수십 명의 선수와 매니저들을 위해.
- 2편에 계속
나이너스 NO.17 이수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