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다 바빠. 평일 오후,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다 보면 걸음이 굉장히 빠르다. 무엇이 그렇게도 사람들의 발걸음을 채근하는 것일까? 집에서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반려견? 곧 집에 도착할 배달음식? 아니면 단순히 습관?
사실 내가 그렇다.
굳이 바쁘지 않은데도 최대한 휘적휘적 큰 걸음을 하면서 바삐 걷는 게 습관이다. 지역 경보 대회를 개최한다면 최소한 입상은 할 만큼 엄청난 실력이랄까. 그런데 어느 날은 문득, 걸으면서 숨이 차고 피곤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당혹스러웠다. 나는 원래 이 정도 속도로 걷는 사람인데. 갑자기 왜 힘이 들지?
‘원래’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가 않았다. 내가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보폭은 정해져 있었고, 이미 그걸 한참이나 넘어서 무리를 해왔던 셈이다. 곰곰이 왜 이렇게 빠른 걸음을 하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항상 무언가 조급한 마음과 작은 욕심이 그렇게도 나를 채근해 왔던 것 같다.
목적지까지 지도에 표시된 ‘도보’의 시간보다는 3분 일찍 도착하겠다는 욕심. 이번에 오는 지하철을 꼭 타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조급함. 그런 것들이 나도 모르는 새 큰 보폭과 빠른 속도의 걸음을 만들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자동차만큼의 엄청난 속력을 낼 수 없기 때문에, 바삐 걷지 않는다고 해도 그리 엄청난 차이는 없을지도 모른다. 목적지까지 도보로 12분이 걸린다는 안내가 있다면, 12분 만에 가면 된다. 9분 만에 도착하겠다는 타이트한 목표를 세우진 않아도 된다.
이런 바쁜 걸음을 직시하게 된 후로부터는 나는 조금 더 천천히 걸었다. 걸음마를 시작하고부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적정한 ‘나의 속도’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 여유롭게 걷다 보니 발걸음을 채근하는 다른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영락없는 나의 모습이었다.
그러다 보니 궁금해진 것이다. 나는 이렇고, 다른 사람들의 발걸음을 채근하는 것은 그렇다면 무엇일지. 혹시 나와 비슷한 연유에서 일지.
비록 우리의 출퇴근이, 일상이 언제나 여유로운 산책로 위 같을 순 없지만 적어도 모두가 각자의 ‘편한 걸음’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우리 모두 약간의 여유를 누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내 옆의 일행이 빠른 걸음으로 겅중겅중 앞서가려 한다면 나도 자연스럽게 걸음이 빨라지고, 또 다른 누군가 천천히 걷는다면 자연스럽게 나도 그에 맞춰 발걸음을 늦추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걸음에 지대한 영향을 받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