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삶이 보잘것없고 나를 둘러싼 주변 모든 것들이 엉망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정도로 큰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고, 그리 대단한 실패를 겪은 것도 아닌데 인생이 순탄치 않을 때가 있다. 타인과 나의 모습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초라함을 느끼고, 가족, 친구, 동료와의 끊이지 않는 자잘한 갈등 때문에 매 순간이 지겹고, 외부와의 작은 충돌에도 쉽게 신경질이 나서 하루를 통째로 망치는 일을 반복하게 되는 그런 날들이 있다.
그럴 때는 별것 아닌 일에도 감정이 멋대로 휘둘린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어깨 위를 누른다. 행운보다는 불운이 깃드는 하루가 잦아지는 것 같아 매사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결국 불안정한 몸과 마음의 상태가 중요한 과업에까지 피해를 끼치는 지경에 이르면 나는 사방을 향해 날을 곤두세운다. 내게 주어진 몫이 너무 많다는, 내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가 아닌 것 같다는 마음에 못내 서러워진다. 그런데 이 과정을 수십 번 수백 번 거듭하다 보니, 이렇게 적당히 고통스러운 하루가 어쩌면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쇼잉 업’의 ‘리지’ 역시 이런 날들을 숱하게 반복하는 인물이다. 리지는 촉망 받는 조각가로서 새로운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전시회 준비에 한창 몰두해야 할 때지만 그녀의 신경을 거스르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염치없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아버지, 집 주인이자 학교 동기인 동료와의 미묘한 신경전, 그리고 며칠째 온수가 나오지 않는 집 욕실까지. 언뜻 보면 소소하지만 오래 지속되는 몇몇 문제들이 그녀를 방해한다. 이내 전시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고 리지는 조각 작업과 함께 이 모든 일들에 대처해야 한다.
영화는 리지의 일상을 그리며 그녀 주변 곳곳에 산재하는 갈등과 고충을 찬찬히 뒤따라간다. 보통 예술가의 삶을 그린 영화라고 하면 위대한 거장의 고뇌와 성취를 담은 작품들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세기의 예술 작품이 탄생하는 과정 속, 인물이 겪는 시행착오와 번뇌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한다. 그러나 쇼잉 업은 다소 다른 길을 걷는다. 예술가의 삶을 둘러싼 사소한 관계와 갈등, 지지부진한 작업과 노동을 살피며 줄곧 일상성에 골몰한다.
그중에서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살피는 것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선 동료 예술가이자 리지가 사는 집의 주인인 ‘조’와의 관계가 눈에 띈다. 며칠째 온수가 나오지 않는데도 보일러를 고쳐주지 않는 것부터, 항상 집에 손님들을 초대해 소란스럽게 구는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전도유망하나 현재는 무명일 뿐인 자신에 비해,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고 앞서가는 그녀에게 일말의 시기심도 느낀다. 조의 태도와 그녀를 향한 자신의 감정이 퍽 성가시긴 하지만, 오랜 기간 동안 우정을 나누고 교류해 온 친구로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도 하다.
정신 질환으로 인해 내내 불안정한 오빠 ‘션’도 리지의 마음을 복잡하게 한다. 션은 한때 천재 예술가라고 불렸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은둔 중이다. 종종 괴상한 일을 벌이기도 하는 션의 거취를 살피는 행위 역시 그녀의 몫이다. 전시회 준비로 바쁜 와중에 오빠의 상태까지 신경 써야 한다는 사실이 갑갑하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언제나 션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은 리지뿐이다.
크고 작은 사건들, 복잡한 관계들, 그리고 스트레스가 그녀의 작업을 꾸준히 방해한다. 조각 작업에만 몰두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그러다 결과물마저 기대를 빗나갈 때면 짜증이 솟구친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작품의 절반이 그을린 채 가마에서 나오자 리지는 실망을 감추지 못한다. 그럼에도 작업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그녀에게는 조각 앞에 앉으면 금세 다시 몰입할 수 있는 재능이 있다. 섬세한 손길로 역동적인 몸짓을 묘사하고, 성심껏 다채로운 색을 입히며 결국 조각들을 하나하나 완성해 낸다.
이렇게 영화는 날마다 반복되는 것 같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리지의 생활을 관조하며 예술가의 범상한 삶을 마주하게 한다. 작은 갈등과 고통을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관계든 노동이든 서투르더라도 그저 계속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나아가는 보통의 사람을 그린다. 이내 거창한 고뇌와 성취가 아닌, 사소한 일상과 작업의 굴레를 응시하게 된다. 삶과 예술은 예사로운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우면서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예술가의 평범한 일상과 작은 결실들을 담담하게 말하는 태도에서 위로 받는다.
러닝타임 내내 등장하는 비둘기는 리지가 겪는 일상의 변화와 병치된다. 영화 초반, 그녀는 자신이 키우는 반려묘의 공격으로 날개를 다친 비둘기를 못 본 체한다. 창밖으로 보내며 매정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조가 우연히 비둘기를 발견하게 되면서 다시 집으로 데려와 돌보게 된다. 리지는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된 존재를 성가시게 여긴다. 매일 신경 써야만 하는 일이 하나 더 늘었으니까. 다만 마냥 내버려 두기에는 작고 여린 존재가 자꾸만 눈에 밟힌다. 그렇게 점점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이고, 날개에 조심스레 붕대를 감아주고, 따뜻한 물과 먹이를 챙겨주기 시작한다.
비둘기의 회복은 리지가 자신의 내면과 주변을 보살피는 과정과도 같다. 관계의 상처와 균열을 마주하고, 작업에 몰두함으로써 마음을 다스리고, 다시 주변과 연결되는 과정을 통해 환부를 치료한다. 일상의 고통과 괴로움을 회피했다가도 직시하는 일, 온갖 상념과 번뇌를 짊어지고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 그렇게 삶의 균형을 도모하려는 노력을 통해 순간을 극복하고 서서히 나아간다.
션이 말했듯, 삶과 예술은 본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귀 기울이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관계와 갈등, 기분과 감정처럼 비가시적인 것들에게 영감을 얻고 영향을 받는다. 보이지 않는 것들과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을 통해 작은 변화를 거듭해 나간다. 그 과정이 미숙함과 불만족스러움의 연속일지라도 상처, 고통, 회복을 반복하며 계속 나아가는 것이 삶이라 전하는 태도가 달갑다.
영화의 후반부, 비둘기는 자신이 생활해야 할 곳을 향해 훨훨 날아가고 리지는 전시회를 무난히 끝마친다. 내일이면 또다시 지겨운 다툼이, 권태로운 일상이, 고단한 작업이, 비슷한 하루가 되풀이되겠지만 리지의 삶은 분명히 변화했다.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를 방해하는 모든 문제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고, 그녀를 괴롭히는 모든 스트레스가 없어진 것이 아님에도 리지의 삶은 계속된다. 나란히 걸어가며 대화를 나누는 리지와 조의 마지막 모습에서 평범하고 소박한 하루하루의 반복에 애틋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