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항상 새로운 것이 있다면 외로움인 것 같다. 이 정도 살았으면 외로움으로부터 자유로울 법도 한데 타고나길 인간이라 자유로울 수는 없나 보다. 잊을 때쯤이면 또 몰려온다. 더 솔직히 말하면 잊은 적은 없다. 잊으려고 할 뿐이지.
“30대를 마무리하며 느낀 점을 솔직히 말해 본다면, 감정 중에서 ‘희로애락은 희미해지지만, 외로움은 뚜렷해진다’는 거예요. 신나고 즐겁고 슬프고 그런 몽글몽글한 감정들은 퇴색되는데, 외로움은 이상하게 선명해지는 것 같네요. 맛하고 비슷한 것 같아요. 단맛, 신맛, 짠맛은 먹을수록 익숙해지고 무뎌지지만, 매운맛은 매번 새롭고 매번 놀랍잖아요? 그 이유는 다른 맛은 혓바닥으로 느끼는 ‘맛’이지만, 매운맛은 사실은 맛이 아니라 ‘통증’이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외로움이 익숙해지지 않고 꾸준히 아픈 이유가 사실은 외로움도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어쩌면 통증의 영역이 아닐까… 잘 모르겠네요.”
기안84의 영상을 보며 어떻게 외로움을 이렇게 잘 표현했을까 싶다. 외로움은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통증의 영역이 아닐까. 듣고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친구가 있어도 가족이 있어도 배우자가 있어도 자녀가 있어도 외로운 건 똑같다. 상대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알아주길 기대하는 것부터가 이상하다. 내 마음 네 마음 애초에 다른걸. 저기 누워있는 갓난아기에게 물어봐도 같을 거다. 응애응애를 우리가 알아듣지 못할 뿐.
내 한 몸 건사하기에도 버거워서인지, 언젠가는 알겠지 기다리다 지쳐서인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부여잡던 인연들을 떠나보내게 된다. 더는 안부도 생일도 그들이 궁금하지 않다. 희망과 기대도 내려놓으니 좀 가볍다. 입도 굳게 다문다. 많은 말들을 삼킨다. 나뿐만 아니라 상대도 말하는 법을 잊은 것 같다. 각자 외로움을 삼킨다. 한걸음 물러선다.
꾸준히 아파도 그래도 심장만큼은 차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심지만은 시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든 타오를 수 있게 하나쯤은 남겨두고 싶다. 안아줄 수 있게 하나쯤은 남아있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단맛 신맛 짠맛처럼 매운맛도 물로 씻기면 좋겠다. 매운맛을 씻을 순 없어도 감사함으로 적실 수는 있으니 매일 두 손을 모은다. 두 손을 모으면 언제 매웠냐는 듯 지나가는 나비 한 마리에 잠시 미소 짓게 된다. 심장이 연하게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