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문화단지 '능사'
충청남도 부여에는 '백제문화단지'가 조성되어 많은 관광객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특히, '황후의 품격', '계백' 등의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유명합니다. 충남도는 관광 명소 발달을 위해 24년 10월에 '가을 백제의 밤'을 개최하여 야간 경관 조명을 설치하고, '백제 금동대향로 속 오악사 공연' 및 '낙화 놀이' 등의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또한, 지난 12월 제70회 백제문화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외부 관광객 비율을 80% 이상 늘리기도 하였습니다. 주차장 조성, 셔틀버스 운행, 롯데리조트 및 롯데아울렛과의 접근성, 백제문화의 훌륭한 보존 등이 관광객 유입 요건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백제문화단지 '정양문'과 '사비궁'
부여 백제문화제는 백제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국내외에 알리고,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크게 기여한 행사이며, 역사적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을 만하다.
- 이희성 단국대 교수 발언 中
그렇다면 '찬란한 문화유산'이라 평가받는 백제 유적에 대해 더 알아보겠습니다. 백제 역사 유적지구는 공주의 '공산성', 부여의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고분군, 나성', 익산의 '미륵사지 왕궁리유적' 등이 있습니다. 그 중 부여에 위치한 '백제문화단지'는 1993년부터 2010년 간 조성했으며, 꾸준한 관리와 확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주요 시설은 사비성, 능사, 생활문화마을, 위례성이 있습니다.
백제문화단지 지도
먼저 입구의 '정양문(正陽門)'의 이름은 근초고왕이 일본 왕에게 하사했던 ‘칠지도’의 문구에서 비롯된 ‘병오정양’과 관련 있습니다. 여담으로 ‘병오’에 대해 다양한 추측이 있었으나 대개 ‘병오’라는 문구는 길한 날 혹은 칼이나 거울 만들기 좋은 날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병오는 단순한 길상구‘라는 의견이 있고, 반면 병오일 한낮에 칠지도가 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쨌든 ’정양문‘의 ’정양‘은 해가 가장 높이 떠있을 때를 의미하므로 당시 백제의 위상을 드러내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양궁을 지나면 사비궁이 나타납니다. 이때 사비궁은 중심의 천정전, 동쪽의 문사전, 서쪽의 무덕전 등이 화랑으로 둘러싸인 형태입니다. 우리나라 삼국시대 모습을 최초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궁궐 기본배치 중 '치조'에 해당합니다. 건축 양식은 '하양 주심포양식'으로 웅장한 느낌이 든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양 주심포양식이란 건물 기둥 위에만 공포를 배치하고, 주간에는 창방 위에 화반 등을 놓아 주심도리를 받게 한 구조양식입니다.
이때 '천정전'은 궁궐 내 가장 으뜸이 되는 상징적 공간으로 신년하례식, 외국사신 접견 등 국가 및 왕실의 중요행사시에만 사용하는 공간입니다. 동궁은 왕이 집무를 보는 '문사전'과 신하들이 집무를 보는 '연영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문사전'은 왕이 집무를 보는 공간이자 동궁의 중심 건물로, 동쪽을 의미하는 '문'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연영전은 '천하의 인재를 맞이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궁은 무관에 관한 집무 공간으로, 왕이 집무를 보는 '무덕전'과 무관 신하들이 집무를 보는 '인덕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무덕전'은 국내 주요 회의를 하는 공간이며 서쪽을 의미하는 '무'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인덕전'은 '태평성대에 나타나는 기린의 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때 '기린'은 동물 기린이 아닌, 당시 신선사상과 관련된 성스러운 상상 속 동물을 의미합니다.
'능사'는 관산성에서 세상을 떠난 성왕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은 백제의 사찰입니다. 현재 백제문화단지에 있는 능사는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발굴된 유적의 원형과 매우 유사하게 재현한 것입니다. 가람배치 형태를 띠고 있는데, 가람배치란, '중문-탑-금당-강당'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웅장한 '능사 5층목탑'입니다. 이곳에서 국보288호인 '창왕명석조사리감'이 발굴되었으며, 1993년에는 백제 금동대향로가 출토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해당 능사는 백제 창왕(위덕왕) 13년인 567년에 지어졌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능사가 지어진 배경에는 한가지 일화가 있습니다. 당시 태자 신분이었던 창(훗날 '위덕왕')은 국가 원로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라를 공격하자고 주장했고, 아버지 성왕은 그를 북돋아주기 위해 전장에 나서게 됩니다. 관산성에서 전투를 하던 중 성왕은 죽게 됩니다. 위덕왕은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죄책감에, 왕위를 포기하고 출가하려고 하였으나, 귀족과 대신들의 반대로 출가는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100여명의 승려를 출가시켜 아버지의 명복을 빌도록 하였으며 '능사' 사찰을 세워 아버지를 위로하였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곳은 사비성이었습니다. 백제 문화단지에는 사비성 외에도 생활문화마을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이때 생활문화마을에서 계백 장군의 집을 재현한 곳도 존재합니다. 서기 660년 신라-당 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해오자 계백은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죽인 후 전쟁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백제 군 5천 명이 신라-당 군 5만 명을 상대로 다섯 번의 전투를 진행했습니다. 네 차례 승리를 거두었으며 마지막 전투에서 패하면서 계백 또한 전사했습니다. 이때 계백이 단 5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그 열 배 가량 되는 신라-당 군을 물리치기 위해 나섰던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그의 '충절'에 감동하여 지금까지 계백 장군의 일화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담으로 당시 계백의 아내는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기 위해 죽고, 사람은 이름을 남기기 위해 죽는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지며, 신라-당 군의 김유신 장군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집니다.
백제문화단지 '역사문화관'에서 볼 수 있는 보물
이처럼 백제문화단지는 백제 역사의 흔적을 곳곳에 담고 있었습니다.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고 전해지지만 백제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백제문화단지는 사비성, 생활문화마을 외에도 백제 역사문화 박물관에 무령왕릉 물건들을 보관하고 있으며, 역사적 흔적들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부여 여행 중 들르기 좋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