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을 깨준 어떤 문장
책 제목에서 흠칫했던 기억이 있다. 설마 내가 아는 그 QWER일까, 하는 생각에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책을 처음 받았을 때 굉장히 낯선 감정이 올라왔다. [온 세상이 QWER이다]라는 책과 낯가리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QWER] 노래를 좋아하고 매일 듣고 있긴 하지만 그들이 가진 이미지와는 달리 중고등학교 교과서나 대학 전공 서적 같은 표지에 압도 당해 책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책 제목 아래 문구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느 40대 아재의 밴드 아이돌 덕질 일기]
좋아하는 데는 나이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건 알지만, '밴드 아이돌'을 덕질하는 사람이 '40대 아재'라는 건 아직 내겐 자연스럽지 않은 수식이었다보다.
선입견을 가졌던 책과 나의 첫만남과는 달리, 덕후 일기여서 그런지 글은 술술 읽혔고, 친구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처럼 괜히 주변을 힐끔거렸다. 나 또한 덕질을 하고 있는 사람이어서 나이를 불문하고 덕질을 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순수하게 [QWER]을 덕질하는 과정을 나열한 책이 아니다. 작가가 대학 교수라, 교수 바이브로 한국 아이돌 시스템과 QWER 멤버 특성 등을 분석하며 책을 썼다. 여러 챕터 중, 개인적으로 공감이 갔던 대목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사실 한국인들에게 아이돌 육성 시스템은 오직 '완성형 아이돌 시스템' 하나입니다. 그 시스템은 어린 나이의 연습생들을 뽑아서 승자독식의 무한경쟁 속에 밀어 넣은 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춤과 노래만큼은 완성에 가까운 완성형 상품으로 시장에 내놓습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의 아이돌 그룹은 처음부터 완벽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반면에 일본에서 시작된 '성장형 아이돌 시스템'은 말 그대로 노래와 춤의 기초가 부족한 아이돌을 처음부터 프로로 데뷔시켜 팬들 앞에 노출시킨 상태에서 키워나갑니다. 팬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아이돌이 어린 시절부터 성장하는 과정을 '부모와 삼촌의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응원합니다.
- '완성형 댄스 아이돌? 성장형 밴드 아이돌!' 43p
두 나라 시스템 중 어느 한 쪽이 낫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아이돌 육성, 선발 시스템 자체와 그 기간이 혹독하며 아이돌을 한 기업이 내놓는 상품으로서 여겨지고 있다는 것과 이를 덕질하는 팬들도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돌을 좋아하는 상황들이 안타깝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육각형 아이돌이 아니면 안 되는 시스템이 아니라 멤버별 확실한 포지션이 있다면 육각형이 아니더라도 괜찮은, 처음부터 완성되지는 않더라도 '성장' 가능성을 믿고 응원해주는 시스템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이와 별개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아이돌 연습생은 시간 자체를 통제받는다. 데뷔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오마이걸 효정의 쇼츠를 봤다. 차를 타고 스케줄 장소로 이동하고 시간을 통제받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당연히 사용하는 사회 시스템에 익숙하지 못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자기결정권이 떨어질 수 있고 본인의 스케줄이 아닌 다른 일상적인 경험들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이때 효정은 아이돌도 하나의 '직업'이기 때문에 직접 지하철도 타보고 혼자 스케줄을 하러 가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이돌은 아니지만 좋아하는 아이돌을 덕질하면서 보거나 알게 됐던 사실들이 있기에 매우 동감했다. 극히 상품화된 아이돌도 문제로 지적하고 싶지만, 이보다 어렸을 적부터 통제받으며 아이돌 생활을 하느라 정작 일상의 것들을 제대로 영위하거나 접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이 점을 더 큰 문제로 부각시키고 싶다.
물론 [온 세상이 QWER이다]는 아이돌 시장을 지적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작가가 어떻게 밴드 아이돌을 덕질하게 되었는가, 40대 이상의 사람들이 밴드 아이돌을 덕질하게 되면 좋은 점은 무엇인가 등 아이돌 덕질의 현실적인 부분들을 재미있게 서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아이돌'이라는 말이 나오면 꼭 위 문제를 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돌 본인 역시 '아이돌'이라는 본분을 잃지 않으면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하는가를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어떤 문제가 있든, 한 분야의 덕후는 위대하다. 이를 부정적으로 '빠순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좋아하는 아이돌(혹은 배우)이 있다는 것은 개인의 삶의 활력을 상승시켜주기도 하고, 꿈과 희망을 갖게 하기도 한다. 누군가 '너 OOO 빠순이지?'라고 비꼬듯 이야기한다고 해서 기죽지 마라. 혹시 아는가. 그 사람도 다른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하고 있는 덕후일지?